낯선 곳에서 새삼 느끼는 감사함

18개월 아기와 첫 해외여행 도전기

by 하나우마

12월은 조금 바빴다. 특별한 일들이 많았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연말이다 보니 그동안 정신없이 지내온 1년을 한번 회고하게 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하게 급성 축농증에 걸려 무척 고생하다가 한 달 전 결정된 베트남 가족 여행을 준비하느라 마음이 무척 바빴다. 18개월 된 아기와 비행기를 처음 타는 것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일뿐더러 기후와 환경이 무척 다른 동남아 국가에 열흘이나 체류해야 하는 게 무척 도전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물론 주위에 더 어린 아기와도 거뜬히 해외여행 다녀오는 사례를 많이 보긴 했지만, 그들의 무탈했던 여행이 우리의 경우를 완전히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닐 테니 크고 작은 잔 걱정들이 여행에 대한 설렘을 많이 누그러뜨렸다.


다행히도 아기는 무척이나 해외여행 스타일이었다. 기압 상승 때문에 귀가 아파하거나 힘들어하진 않을까 물병이랑 떡뻥도 챙기고 칭얼거릴까 봐 스티커북이랑 애착인형도 챙기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함께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이 모든 준비들이 기우로 느껴질 만큼 너무나 잘 있어 주었다. 아빠랑 비행기 창문에 뽀로로 스티커를 붙이느라 정신없이 놀고 얌전히 낄낄거리다가 어느새 방전이 되었는지 엄마 품에서 스르륵 잠이 들어버렸다. 사실 우리가 비즈니스석을 예매한 것도 아니고 24개월 미만인 아기인지라 별도 좌석을 구매하지도 않아, 내 다리 위에 앉혀놓고 안아서 비행을 했기 때문에 무척 불편했을 수도 있는데 기저귀 때문에 불편했을 때 한번 빼고는 칭얼거림 한번 없이 너무나 잘 있어 주었다.


깜란 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현지 시각으로 거의 새벽 한 시에 가까웠는데 통잠 중간에 깨어 짜증 내고 한번 울 법도 한데, 그런 기색 하나 없이 금세 말똥말똥한 눈으로 입국 심사를 함께 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이 감정. "맞아. 내 딸은 유니콘 중에서도 정말 특별한 유니콘이었지." 새벽 비행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짐을 던져두다시피 하고 침대에 쓰러졌는데, 옆에서 쌔근쌔근 자는 천사를 보고 있자니 새삼 감사함과 뭉클함이 끌어 올라왔다.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기의 엄마가 된 걸까. 그동안 행운과 불운이 있다면 아슬아슬하게 후자 쪽에 기우는, 소위 '운 빨 없는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자조했었는데, 시아는 그런 나의 기존의 태도를 뒤흔들 만큼 많은 면에서 과분하게 고마운 아기였다.


한동안 아기에게 감사함을 느낄 새 없이 일상에 많이 치이고 또 지쳐 있었는데, 여행이라는 새로운 도전의 시작에서 문득 놓쳤던 감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번 여행, 왠지 너무 즐거울 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넓고 푹신한 침대에 세 사람이 나란히 누워 부대끼고 있으니 이 보다 충만한 상태란 게 더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시작된 이번 여행이 벌써부터 감사하게 느껴졌다. 낯선 곳에서 새삼 느끼는 감사함. 연말에 신께서 주신 마지막 선물인가 라는 거창한 생각까지 떠올리며 기분 좋게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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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기내 창문에 뽀로로 스티커를 붙이며 시간을 보내던 딸과 숙소에 널브러 자던 우리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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