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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우마 Nov 05. 2024

안 그래도 내 탓 같다는 말이에요

육아에선 수시로 움츠러드는 엄마들의 마음

 동생은 밖에 잘 나가질 않는다. 훤칠한 외모에 개구쟁이 미소로 사람들의 호감을 쉬이 사던 동생은 군대에 다녀온 후로 어딘가 이상해졌다. 움츠러들듯 집안에 있기만을 고집하기도 하고, 군대 선후임이나 친구들의 번호가 뜨는 연락이 올 때면 받지 않고 조용히 침묵했다. 가족에게만 마음의 문을 열고 한참을 칩거하더니 결심한 듯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선언하고 홀연히 필리핀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리고는 약 3년간 호주와 뉴질랜드 워홀을 마치고 돌아왔다. 다부지게 외국 생활을 잘 해낸 듯 보여 국내에서도 무슨 일이든 잘 해낼 거라 믿었다. 예상과는 달랐다. 주변 지인과 친구들과의 연락은 여전히 거부했으며, 제대 후보다 더 길고 알 수 없는 침묵이 지속됐다. 어느 순간부터 동생은 집 밖에 잘 나오지 않았다. 가족과 동행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혼자 외출을 꺼렸고, 취업이나 학업 등 사회생활의 의지를 단념했다. 그렇게 시계를 멈추고 살기로 결심한 듯 보이는 서른 중후반의 아들을 보며 부모님의 심정은 타들어갔다.


 동생을 보며 엄마는 내게 말했다. 동생이 한참 어리던 유치원, 초등생 무렵 소심하고 여성스러운 성격의 동생을 맞벌이로 키우느라 집을 비우는 바람에 가까이에서 케어해주지 못했다고. 집을 비우고 의지와 달리 방임하듯 키우는 바람에 동생이 저렇게 된 것만 같다고. 동생은 엄마의 손길과 꾸준한 보육이 필요한 아이였음에도 그에 맞는 돌봄이 없어 지금의 결핍이 생겨난 것 같다고 말했다. 십수 년도 훨씬 지난 과거를 되짚으며 본인의 잘못인 것만 같다고 스스로를 나무랐다. 나는 20년도 한참 전의 일을 지금의 원인으로 돌리는 게 말이 되냐며, 그동안 잘 지내던 시절도 있는데 그건 엄마의 과한 자기 질책이라고 위로했다. 오죽 답답하면 본인의 한참 과거의 일까지 끄집어와서 아들의 방황을 설명하려 할까 싶어서 안타까웠다. 답답한 현재를 이해하고 싶어 원인을 찾다 찾다 본인의 아픈 손가락을 떠올리게 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요즘 나의 마음을 보면 엄마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돌이 지난 이후 기동력이 생긴 딸은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이곳저곳을 탐색하고 저돌적으로 들이박기도 한다. 때문에 몸 구석구석에 멍이 생기는 건 기본이요 입술이 터져 피를 보기도 하고 장난감에 긁혀 얼굴에 생채기가 나기도 부지기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모든 게 내 탓 같아지기도 한다. 내가 좀만 더 잘 잡아줬더라면. 움직일 때 주변 정리를 좀만 해뒀으면 저렇게 다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잠시 핸드폰에 한눈을 판 사이 이렇게 됐구나 싶어 자괴감이 드는 것이다.


  어제는 이런 마음이 최고조에 달했다. 아기를 재울 때마다 틀어주는 그림자 극장 팩을 교체하다가 손에서 팩이 떨어졌고, 얄궂게도 떨어진 팩이 남편의 얼굴을 맞고 튕겨 딸의 눈에 떨어졌다. 아기는 숨이 멎을 것처럼 울어댔다. 어찌나 아파하던지 보는 내내 내가 손이 다 떨릴 정도였다.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내가 자초한 일은 맞았다. 왼쪽 눈 흰자를 맞은 건지 아기 눈이 충혈되어 빨개졌다. 숨이 턱 막힐 것처럼 괴로웠다. 내가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일에서도 자책감이 드는데, 이번 일은 분명 내 실수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무엇보다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부위인 아기 눈 쪽에 저런 상처가 생기다니 너무 걱정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안과 검진 결과 시력에는 이상이 없고 가벼운 경막하출혈로 보인다는 소견을 들었다. 하지만 오늘 하루 종일 보육하는 내내 빨갛게 상처 난 아기의 눈이 마음을 후비고 들어왔다. 얼마나 아팠을까. 저 조그만 아기의 조그만 눈을 가격한 갑작스러운 통증이라니. 의사는 괜찮다고 했지만 내 마음은 괜찮지 않았다. 큰 부상은 아니라 다행이지만 아기를 볼 때마다 내 잘못이 떠올라 괴로워졌다. 빨간 눈을 하고 웃을 때마다 속이 쓰려왔다. 


 "혹시 안약이 눈에 닿은 거 아니야?"

 "아니라고!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내가 제대로 봤다고!"


 속상함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버렸다. 안과에서 처방받은 항생제 안약을 아기 눈에 넣어주려던 참이었다. 아기가 자꾸 눈을 감으려 했기 때문에 남편이 아기의 얼굴을 바로 잡고 내가 안약을 한 방울 떨어뜨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 찰나였다. 기를 쓰고 눈을 감으려는 아기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려가며 겨우 한 방울 넣기에 성공했는데 남편의 무심한 한 마디가 나의 약한 곳을 건드렸다. 평상시라면 건조하게 대답했을 한 마디에 감정이 실리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남편은 무척 무안해했다.


 동생의 요즘 모습을 보면 아빠 역시 속상해 하시지만, 일절 엄마 앞에서 과거 일을 언급하거나 엄마와 연관하여 얘기하지 않으신다. 수시로 자책하는 엄마를 배려해서다. 남편 역시 평소 나를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지만, 오늘 같은 날은 그 한마디가 왜 이렇게 서럽고 서운했을까. 안약 사건 후로 어색하게 저녁식사를 마친 우리 부부는 결국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밤잠에 들게 됐다. 나는 그 서운함을 그냥 글로써 해소해 본다. 아기를 돌보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그리고 육아가 처음인 엄마들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가장 소중한 대상을 상대로 마주하는 24시간의 양육 시간 속에서 수시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무너지는 마음을 겪기도 한다. 배우자들이여, 최선을 다해 돌보고 있는 이들을 조금만 배려해 주자.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조금만 사려 깊은 마음을 담아주면 안 그래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듯한 양육자에게 최소한 원망의 소리는 듣지 않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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