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타임을 힘겨워하던 아기, 조바심에 힘겨웠던 엄마
“너는 머리가 크고 무거워서 앉혀 놓으면 매번 뒤로 쾅, 뒤통수를 바닥에 찧는 바람에 한시도 눈을 떼기가 어려웠어.”
엄마는 새로운 가족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위 앞에서 어린 시절부터 귀에 딱지 앉게 들었던 나의 뒤통수에 관한 얘기를 참 여러 번 반복했다. 그래서 내 뒤통수가 납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매 순간 내가 다칠세라, 혹은 못난이 뒤통수가 될까 봐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타고나길 무겁고 큰 머리통인지라 예쁜 두상을 갖긴 쉽지 않았다는 원망 섞인 항변.
그래서일까. 뽀얗고 하얀 피부에 새까만 구슬 같은 눈동자를 갖고 태어난 시아를 사랑스럽게 보면서도, 나는 내심 불안한 구석이 있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 자던 아기가 정면을 향해 잠들기 시작하면서 둥글고 볼록했던 두상이 자꾸 납작해지는 것 같은 불안감이 피어올랐던 것. 나를 향한 핀잔처럼 자기 방어를 열심히 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오버랩되면서 왠지 내 딸은 기필코 납작한 두상으로 키우지 않겠다는 집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맘카페와 육아 정보 유튜브, 각종 육아 글을 거치면서 나의 결론은 한 곳으로 모아졌다. “답은 터미타임이다!”
해결책이 생긴 후로 나는 틈만 나면 아기의 터미타임을 시도했다. 신생아 50일쯤부터 거의 매일, 수유 후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아이를 뒤집어보고 자기 힘으로 상체를 들어 올리길 기다렸다. 하지만 배고플 때 빼고는 우는 목소리 한번 듣기 쉽지 않던 순둥이 딸은 자신을 엎어 놓을 때마다 통곡하듯 울기 시작했고, 고개를 들기는커녕 바닥에 얼굴을 박고 호흡이 힘들어 보이는 괴로운 상황만이 반복됐다. 지난한 시도에도 딸아이는 누워서 천장만 보고 노는 게 너무 편안한 아기였고 터미타임에 대한 거부감이 극심했다. 비슷한 월령의 아이들 평균보다 큰 머리둘레, 한눈에 보아도 무거워 보이는 두상을 보면 시아의 터미타임이 괴로울 법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했다.
'아직 어리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여유 있게 넘기던 나의 마음은 생후 70일을 넘기면서 점차 조바심으로 바뀌어 갔다. 혹시 아이 발달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우리 아이는 왜 이렇게 못하는 거지? 아기들이 엄마보다 좋아한다는 꼬꼬맘에 요즘 육아에서 핫하다는 아기 병풍, 오색 찬란한 불빛과 동요들로 아기들의 관심을 끄는 튤립에 갖가지 장난감들을 아기 얼굴 앞에 들이대도 도통 진전이 없어 보였다. 휘청거리는 고개는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지기 일쑤고, 엄마의 고단한 시도가 힘겨웠던 아기는 매번 침을 흘리다 못해 짜증 내듯 자기 손을 주먹째로 입에 가져가며 저항하는 듯 보였다. 패기 있게 시작했던 마음은 답답함으로 바뀌고 답답함은 근심과 초조함으로 바뀌어갔다. 태어나면서부터 터미타임을 시작했다는 아기들, 50일이 되자 거뜬히 고개를 들어 올리는 조그만 두상의 아기들, 머리가 커도 다부진 체형과 몸매를 가진 아기들이 거뜬히 고개를 들어 올리는 사례 등 온라인에 널리 퍼진 수많은 육아 정보는 ‘우리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부채질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시아를 보는 게 익숙했던 생후 89일째. 그날 역시 별 기대 없이 아이를 뒤집어주던 참에 맥없이 주저앉던 시아의 얼굴이 갑자기 환하게 빛났다. 거뜬하게 고개를 들어 올리면서 제 눈앞에 있는 꼬꼬맘을 보고 여유 있는 미소마저 지으며 터미타임을 갖고 있던 것. 어제만 해도 역류방지쿠션의 커버를 침으로 잔뜩 적시고 고개를 떨구던 아이가 무려 5분 동안 고개를 들며 호기심 넘치는 얼굴로 새로운 각도에서 보이는 풍경을 만끽하고 있는 게 아닌가. 믿어지지 않았던 나는 혹시라도 이 순간을 놓칠 세라 허겁지겁 카메라로 영상을 담았다. ‘100일의 기적이 오긴 오나’라며 자조하던 엄마에게 아기는 보란 듯이 자신의 성장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때였던 것 같다. ‘아기의 성장이 조바심과 성급함으로 미성숙해 있던 엄마의 마음을 바로 마주할 수 있게 하는 거울이 되어 주었구나’라고 깨닫게 되었던 순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듯했던 매일의 시도 동안 아이는 성장하고 있었다. 내가 남의 아기들을 보며 비교하고 걱정하며 못난 마음을 품기도 하는 동안, 아기는 끙끙거리고 칭얼거리면서도 꾸준히 시도하고 제 나름의 시계에 맞춰 크고 있었다. 지체되고 있었던 것은 아이의 발달이 아니라 개인마다 다를 수 있는 아기들의 성장을 넉넉한 마음으로 지켜보지 못했던 엄마의 미성숙한 마음뿐이었다는 사실이 깨달음처럼 다가왔다.
납작 두상으로 인한 콤플렉스인지 아기에 대한 집착과 같은 마음이었는지 아직도 그 원인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신생아 시기에 아기의 성장을 통해 나의 마음 변화를 마주한 후로 지금은 훨씬 여유롭게 아이를 바라보며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아기는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하고 눈부시게 성장하는 존재라는 믿음이 생긴 후로 오히려 나의 마음을 돌아보며 새로운 것을 배운다.
이번 연재는 기존에 작성했던 글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육아에 관한 에세이를 쓰자고 다짐하게 됐던 계기와도 같았던 글인데요. 육아 젖병 브랜드 <더블하트> 공모전에 당선돼서 틈틈이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준 소중한 글이기도 합니다. 지금 보니 벌써 한참 과거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불과 일 년 전의 마음이 담긴 글이네요. 그때보다 조금은 성숙한 엄마가 됐길 바랍니다. 해당 글은 더블하트 공식 사이트에도 함께 게재된 바 있습니다.
* URL: https://www.doubleheart.co.kr/board/gallery/read.html?no=8157&board_no=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