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태기 딸과의 신경전
"안멍(을거야)!"
엄마, 아빠 말고는 몇 단어 외칠 줄 모르는 딸이 단호하게 의사 표현할 줄 아는 몇 가지 언어 중 하나다. 밥상 위에 놓여있는 음식이나 숟가락에 퍼주는 반찬들을 보고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먹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소리치는 단어. 태어난 직후보다 대부분 몸무게가 빠져서 퇴원한다는 신생아실에서도 뱃구레가 커 되려 몸무게를 찌워 나오고, 이유식을 시작한 후로도 먹는 걸로 고생시킨 적 한번 없던 아기였다. 15개월 본격 유아식이 시작된 후로는 입에 들어간 음식을 수시로 뱉어내고, 목전에 다가오는 숟가락만 봐도 뿌리치기 시작했다. 어설픈 의사표현이 시작되면서부터 성격도 단호해졌다. 안 먹겠다고 뿌리치면 아무리 달래고 설득해도 자기 의사를 끝끝내 관철시키고 말았다.
그날 역시 불안했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소고기와 새우볶음으로 맛깔스럽게 차린 식판 앞에서도 요지부동이었다. 반찬을 먹으면서 '아이고, 맛있다'를 연발하고 온갖 신나는 먹방 연기를 펼쳐도 고개를 휘저었다. 밥 다 먹고 나면 정말 재밌는 놀이 할 거라고 설득도 하고, 시아가 좋아하는 분수도 시작할 거라고 근거 없는 조건부 단서를 걸어도 단호하게 밥 먹기를 거부했다. 한 술 더 떠서 앉아있던 아기 의자에서 내려달라고 조르기까지 시작됐다. 밥 안 먹으면 내려올 수 없다고 나 역시 단호하게 나가자, 얼굴은 시뻘건 토마토처럼 빨개지기 시작하더니 눈물 폭탄과 악쓰기가 시작됐다. 결국 몇 숟가락 못 먹이고 아기를 의자에서 내려주고 다른 자리에 옮겨 또 몇 숟가락이라도 먹이고자 애썼으나 큰 소득 없이 신경전만 지속됐다.
"너 정말 이럴 거야!"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목소리가 커졌다. 아기는 세상 억울하단 표정으로 나를 원망스레 보면서 더 목청을 키워 울었다. 밥 한번 먹이기가 이렇게 힘들 일이란 말인가. 유치하게도 말 못 하는 아이를 앞에 두고 속사포 같은 원망을 토해냈다. 밥 안 먹으면 밖에 나가서 놀지도 못한다는 협박도 함께. 아기는 서러운 입을 조금씩 벌리며 억지로 몇 숟가락 떠먹고는 짜증 내듯 포크를 집어던져 버렸다. 나는 화가 나서 식판을 휙 빼고는 주방으로 성큼성큼 가버렸다. 울먹거리는 아이를 뒤로 하고. 그리고는 속상함과 울화에 답답한 것도 잠시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양육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라는 자기반성에 또 빠져 버렸다.
가끔 육아가 서럽고 억울한 싸움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육아의 과정 자체가 수도 없이 반복되는 딜레마에 놓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인간다워지는 아기를 너무나 사랑하게 되지만 아기가 성장할수록 충돌도 늘어난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엄마의 말을 이해하며 엄마와 교감하는 아기를 볼 때마다 더할 나위 없이 사랑은 커지지만, 작은 아기의 자아는 엄마의 완고한 육아의 틀을 수시로 깨려고 하며, 논리도 설득도 없는 세상 속에서 오로지 떼씀과 귀여움 하나로 모든 것을 제멋대로 하고자 한다. 이런 갈등의 상황에 놓일 때마다 모든 것이 처음인 엄마는 자신의 육아에 문제가 있나 수시로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내가 아기를 잘못 키우고 있나, 아기의 의사를 예민하게 캐치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갈등만 키우고 있진 않은가, 왜 우리 아기는 순하질 않고 이토록 고집스럽고 짜증이 넘치는 건가, 내가 뭘 잘못해 줬길래. 수없이 자기검열하고 자책하는 회로에 빠지게 된다.
끝없이 몰려드는 자기 회의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본질적으로 딱히 없다. 수많은 육아서와 육아팁들이 난무하지만 서로 다른 상황과 개인의 문제로 적용될 때는 늘 다른 지점이 발생하기 마련이며, 서로 다른 가치관과 경험을 지닌 가정에 모두 공통적으로 적용될 만한 지침이란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의 경우 지금까지 경험상 필요한 덕목은 아기가 좀 더 성장하여 한 단계 성숙해지길 기다리는 인내심뿐이었다. 뒤집기가 어렵다고 머리털을 쥐어 뜯고 울어대던 아기가 거뜬하게 몸을 뒤집고 여유 넘치게 웃을 수 있는 상태로 성장하도록 기다려주는 시간, 아직 어금니도 나지 않은 잇몸으로 오도독 거리는 식감의 반찬을 꾸역꾸역 먹다가 천천히 여유롭게 씹고 음미할 단계가 될 때까지 소화기관과 구강구조가 발달할 시간. 결국 많은 것은 시간에 의해 자연스럽게 해결돼 왔다.
오늘도 나는 백 점짜리 엄마였나 돌아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완벽한 엄마란 도달하기 어려운 허상 같기만 하다. 이제는 다르게 질문해보려고 한다. 오늘 나는 얼마나 아기를 사랑하고 인내했던가. 수많은 갈등과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아기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수용해 주기 위해 노력했나라는 질문으로. 이 또한 쉬운 목표는 아닐지라도 이 관점에서 생각하면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것도 같다. 우여곡절도 있고 이런저런 문제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아기는 편안히 잠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 고단한 하루를 끝내고 나만의 시간을 누리고 있다. 이것 하나면 어찌 됐든 오늘 하루를 잘 인내한 것 아니겠는가. 육아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을 일상에 불필요한 정신적 고충을 더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잠들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