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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우마 Oct 03. 2024

찰나여서 소중한 순간들, 애틋한 우리

지난 여행이 고작 한 달 전 일이라고?

 휴대폰 사진첩을 만지작거린다. 아기를 키우면서 눈에 띄게 잦아진 행동이 있다면 내 사진첩이 온통 아기 사진으로 도배가 된 것과 습관처럼 수시로 아기 사진을 찾아 휴대폰을 뒤적거리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그다지 사진 찍는 것을 즐겨하는 편이 아니었다. 행복하거나 특별한 순간이 있다면 눈앞에서 즐기기도 벅차지 무언가 기록으로 남길 생각을 항상 뒤늦게 하는 편이었다. 한 김 식은 음식을 뒤늦게 먹듯이 김 빠진 순간을 담아 사진의 퀄리티가 떨어지기 부지기수였다. 아기가 생긴 후로는 달라졌다. 매일매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기다 보니 매 순간 기록할 필요가 생겼다. 여차하면 어제의 시아와 오늘의 시아는 확연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제는 기어 다니던 아기가 오늘은 서서 걷는 순간처럼 말이다.


 오늘 역시 우연히 사진첩을 보다가 마음이 뭉클해졌다. 아기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장거리 여행을 함께 했던 날들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강원도 속초를 2박 3일로 다녀왔던 일정. 감사하게도 엄마가 함께 동행해 주셔서 여행 중 육아의 걱정을 좀 덜 수 있었다. 아기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보자니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질 것 같았다. 지금은 방 곳곳을 뛰어다니는 수준으로 휘젓고 있는 아기.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걸음마가 어설퍼 엄마, 아빠 손을 양손에 꼭 쥐어야 자신 있게 걸을 수 있었구나 싶었다. 이때만 해도 엄마, 아빠에 대한 애착이 지금처럼 크지 않아서 할머니 품에 안긴 사진도 적지 않았다. 키가 이쯤이었는데 지금은 일어서서 손 잡아도 내가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될 정도로 커버렸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며칠만 지나 과거를 돌아보면, 지난한 듯 느껴진 과거는 금세 찰나가 되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아기들의 성장은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의 진리를 어느 때보다 자주 느끼게 해 준다.


 그러다 보니 육아를 하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게 있다면 아마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는 점일 것이다. 아기와 지지고 볶는 하루하루의 일상은 무척 더딘 것 같고 때로는 지루하게도 느껴지는데,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찰나 같고 너무 빠르게 휘발되어 버리는 느낌이다. 어제와 오늘이 그냥 비슷하게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아기는 늘 어제와 뚜렷하게 다른 오늘을 살고 있는 느낌이다. 그토록 끙끙거리던 뒤집기를 다음 날이면 해내고,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배밀이가 가능한 날이 오더니 금세 기어 다니기 시작하고,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성큼성큼 걷고 있다. 기적같이 느껴지는 눈부신 성장이 고작 일 년 안에 모두 이루어졌다. 그 일 년을 채우는 찰나의 순간들은 얼마나 꽉 차고 다채로웠던가. 


 그래서 어느 때보다 자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의 의미와 그래서 더 애틋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존재를 전보다 더 의식적으로 사랑하게 됐다. 그리고 사랑하게 되니 역설적으로 더 잘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막연히 든다. 지금 현재 최선을 다해 사랑한 만큼 후회 없이 보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모든 양육의 최종 목표는 결국 성인 된 아기의 온전한 독립일 텐데 언젠가 내가 준 사랑을 머금고 아기도 자신만의 인생을 찾아 훨훨 날아가겠지라는 생각을 막연히 하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마음 한편이 휑 하고 바람이 빠져버리는 것처럼 벌써 헛헛하고 쓸쓸해지는 기분이 들다가도 그게 아이의 참된 행복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거대로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고작 15개월짜리 아기를 키우는 부모로서 너어무 앞서가는 생각이겠지만 말이다.


 속초 사진들을 보면서 다시금 시간을 떠올린다. 고작 한 달이 좀 지난 과거일 뿐인데, 남편과 나는 그대로인데 아기는 왜 이리 달라져 있단 말인가. 내친김에 출산했던 순간부터 조리원에서 지냈던 사진들까지 쭉 내려가 본다. 이전의 나의 일상은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조금 단조롭고 재미없었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비슷한 일을 모나지 않게 해 나가면 그대로 좋은, 그저 비슷한 하루들이었던 것 같다. 아기가 등장하면서 예상치 못한 고통과 체력의 한계를 무척 느끼고 있지만 그래도 매일이 다른 무지개 같은 일상들을 보내게 된 것 같다. 이토록 눈에 띄게 빨리 성장하고 뚜렷한 아웃풋을 내는 존재가 세상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어제는 '엄마' 밖에 못하던 아기가 오늘은 '아빠'를 내뱉고, 낱말카드 하나 제대로 쥐고 흔드는 게 버겁던 아기가 그 속의 그림이 어떤 동물을 뜻하는지 알고 반응할 정도로 성장했다. 아기의 성장은 빠르고 눈에 확연히 보인다. 


 어쩌면 인생의 아름다움은 모든 것이 찰나이기 때문 아닐까.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지금 이대로의 우리들과 그리고 이 순간이 애틋하고 소중해진다. 오늘도 땅굴 파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다신 없을 아기의 어린 시절,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하나하나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마음을 고쳐 먹어본다. 불과 일 년 전 신생아 시절의 네가 손에 잡힐 듯 먼 과거가 되어버린 것처럼. 일 년 뒤에 나는 또 지금의 시아를 추억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아마도 분명히. 그래서 오늘도 무한히 최선을 다해서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셋이서 손을 맞잡고 걷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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