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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우마 Sep 29. 2024

아무리 포장해도 결국 희생이 따르긴 해

악쓰는 아기와의 잠 투쟁 일기

"장난감들아, 안녕. 내일 보자."

아기의 저녁잠을 재우기 전에 하는 의식은 주변에 인사하기다. 또래보다 그다지 잠이 많지 않은 편이라 늘 밤잠 자기 전에 아기의 저항을 맞닥뜨리는 편인데, 그때마다 자연스럽게 아기의 손을 잡고 거실에 나와 베이비룸에 널브러진 인형과 장난감들에게 인사를 하고 주방의 식기와 가전에게도 인사를 한다. 인사성 밝은 아기는 이런 의식에는 거부감이 없이 자연스럽게 참여한다. 주변에 잘 자라고 손을 흔들고 거실과 주방의 불을 끈다. 자연스럽게 방으로 손을 이끈다. 그때까지도 별다른 저항은 없다. 관건은 침대에 눕히는 순간부터다. 악을 쓰고 울면서 자지 않겠다고 저항하거나, 침대에 뒹굴거리며 감기는 눈을 비벼가며 스르르 잠을 청하거나. 이 순간의 결과에 따라 나의 밤이 평안해지는가 괴로워지는가가 결정 난다.


 오늘은 안타깝게도 전자였다. 어젯밤 열대야로 더웠는지 목에 살짝 땀띠가 붉게 올라와 있었는데, 아기는 이 부위를 사납게 긁어가며 울어댔다. 마치 포효하는 한 마리 짐승처럼.. 시아가 막무가내로 울기 시작하면 정말 온몸에 힘이 죽 빠진다. 돌 전까지만 해도 순하디 순한 아이였지만, 돌 이후부터 급변했다. 자기 맘에 안 드는 상황이나 양육자의 리드를 잘 참아내지 못한다. 목을 긁는 울음소리를 내며 악을 쓰고 그 자리에 그냥 털썩 주저앉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줄 때까지 매섭게 울어댄다. 가끔은 어디가 아파서 우는 게 아닌가 걱정될 수준이다. 이번에도 역시 목을 긁어가며 악을 쓰는 통에, 불을 켜고 아기를 달랬다. 땀범벅이 돼서 우는 아기를 안아서 달래주고 아기가 좋아하는 베이비룸으로 옮겨 토닥였더니 금세 태도가 바뀐다. 내가 언제 울었냐는 듯 눈을 말똥거리면서 가족사진을 보면서 아는 체를 하고 익숙한 아이스크림 카트로 가서 평온하게 아이스크림을 푼다. 꺄르르 웃기까지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게 한 시간을 아이와 놀아주고 다시 침대로 갔다. 이제 아기는 순순히 반응한다. 손에 익숙한 인형을 쥐고 바로 잠자는 자세로 눕더니 금세 코를 골고 잔다. 그 사이 나는 녹초가 되었다. 젖은 미역처럼 침대에 눌어붙어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해 생각한다. 언제까지 이 잠 투쟁이 지속될 것인가. 아기가 예쁘게 말하기 시작한다는 18개월부터는 좀 나아질까, 아니면 지적 능력이 훨씬 발달하여 상호작용이 눈에 띄게 증가한다는 두 돌 무렵에는 스스로의 감정을 다독이고 잠들까 생각한다. 아기가 성장할수록 기존의 문제가 나아지는가 싶으면 생각지 못한 다른 문제를 또 새로 접하고 힘들어지는데, 이 과정의 반복이겠지 싶으면 그다지 미래를 긍정하기 어려워진다.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보았을 때 나의 경우 육아의 난이도는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사실 수많은 힘듦에도 불구하고 더 큰 가치를 가진다고 육아를 긍정해 오는 사람이지만, 오늘 같은 밤이면 나 역시 헤어 나올 수 없는 맨홀 뚜껑 아래로 빠져버린 기분에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된다. "아무리 포장해도 결국 육아란 희생이 따르긴 해. 부모의 희생. 곧 나의 희생.." 그리고 생각한다. 아기를 기르는 일처럼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은 또 없다는 것을. 당장 아기를 재우는 눈앞의 일뿐만 아니라 아무리 조심을 해도 당연하게 다가와버린 아기의 수족구라든지, 온갖 신선한 식재료를 가미해 화려한 이유식을 만들어도 밥상 앞에서 도리도리 고개만 세차게 흔들어대는 아기는 말 그대로 통제 불가다. 그리고 나는 이 전복할 수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대상 앞에서 늘 약자다. 아기의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 살피고 의사를 헤아리고 맞춰주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욕구와 의지는 눌러둔 채로 아기를 우선시한다. 희생은 필연적이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 상황에 끌려다니고 타인에게 순응했던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본다. 고집 세고 완강하기로 둘째라면 서러운 내가 이렇게 무력하게 꼬리 내린 대상은 아기가 유일했다. 그리고 어느새 체념과 받아들이기에 익숙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냥 받아들이자, 이 또한 지나가리.." '아기는 대체 왜 이럴까, 어떻게 해야 이 아기를 바꿀까' 생각하면 더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돼서 이제는 많은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성장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겪는 일들이니까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그리고 일단 눈앞의 일들을 최대한 수습하고 이겨내 보자고. 


 자는 아기의 모습을 다시 바라본다. 잘 때만큼은 이런 천사가 또 없다. 보드라운 피부와 가느다랗게 내려감은 눈. 세상 귀여운 입술. 아주 잠시 아까의 고통이 눈 녹듯이 잊히는 것을 확인한다. 그렇다. 모든 부모는 아마도 분명히, 자식과의 사랑에서 필연적인 약자일 것이다. 육아에서 부모의 희생은 필연적인 것이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악을 쓰고 놀다가 잠든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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