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모두 만나기로 했다.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A와 전혀 그럴 뜻은 없었는데 사태가 이렇게 되고 나니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는 B, 그리고 이래 저래 사건과 관련한 주변인을 한 자리에 모았다.
먼저 B가 만나자는 연락이 왔을 때도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사건의 중심에 있었고 사건의 해결도 그가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총괄관리자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틀어졌는지 알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갑자기 정한 일이라 모임 장소도 마땅치 않았지만 간신히 한쪽 빈 회의실을 이용하기로 하고 시간을 맞췄다.
B가 큰 소리로 말을 꺼냈다. 흥분을 해서 그런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밖에 있던 소음까지 뭐가 궁금한지 공간을 차지하고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긴 말에 호흡이 가빠지고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답답한 공기를 바꿀 필요가 있어 조용한 장소로 옮기기로 했다.
자리를 옮기는 사이,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일까?’라고 생각해보았다. 보통 갑질이나 성희롱사건이 발생하면 서로 부딪히는 일이 없도록 하고 충분한 시간을 통해 성찰의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들은 것 같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갈등관리 측면에서는 상황이 더 번지기 전에 초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한 매뉴얼을 숙지하지 못한 채 사태를 수습하고 나선 게 맞나 하는 생각인 들었던 거다.
이미 그들은 저벅저벅 자신들의 걸음으로 여기까지 왔다. 뒷걸음질을 친다고 과거로 갈 수 없다. 일단 시작되었으니 이 일이 두 사람의 단순한 오해에서 왔는지 정말로 뭐가 크게 잘못된 부분이 있는지는 알아볼 필요는 있었다. 자리를 옮겼음에도 역시 B는 대단했다. A가 주장하는 시점보다 훨씬 오래전부터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언행을 조목조목 짚어갔다. 장장 6개월간의 두 사람의 통화목록과 대화 요지가 줄줄이 나왔다. 어제 있었던 일도 기억나지 않는 백지 수준의 내 머릿속 상태와는 너무도 다른 뇌의 소유자였다.
이에 비해 A는 조용하다. 하지만 B의 일설이 끝나자 A도 준비한 A4용지를 가지고 왔다. 자신의 이름을 넣고 탄원서를 적듯이 그간에 겪었던 마음의 상처를 15포인트 휴먼명조의 반듯한 글자체 속에 가지런히 담아 놓았다. 10장이나 되는 그의 글에는 아픔이 곳곳에 여지없이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B는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이런 걸 가지고 서운하다고 한 거니?”
A가 밤새도록 가슴을 치며 구구절절 써 내려간 10장의 상흔을 단숨에 훑어보던 B의 반응이었다. 뭐 대단한 잘못이라도 한 줄 알았는데 별거 아니라는 듯, 그 특유의 안도감마저 공기 중에 흩뿌렸다. 당황한 A가 자신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고. 스트레스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눈동자가 흔들이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B가 다시 A의 문장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두 가지를 짚어냈다.
“내가 휴일에 한번, 퇴근 후 8시 32분에 전화한 거는 사과할게, 미안하다. 그런데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끝이었다. B는 잘못을 숫자 세듯 손으로 꼽았고 사과도 그만큼만 했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A와 B가 그간의 오해와 앙금들을 비로소 풀어내어 서로 얼싸안고 용서를 구하는 훈훈한 장면 따위는 없었다. 기욤 뮈소가 <인생은 소설이다>라고 했지만 소설 같은 일상은 있을 수 없었다.
B는 수강 프로그램 반장이었다. A는 단순 시설관리 직원이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안면이 있었고 A가 이쪽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초반에는 아주 살가웠다. 문제가 생긴 건 두 달 전 수강신청을 받으면서였다. 옆 동네가 코로나를 이유로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바람에 유례없이 우리 쪽 프로그램 수강생 접수창구가 마비되었다. 보통 미달되던 수강 정원이 차고 넘치면서 원래 수강생이었던 두 사람이 누락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투철한 사명감과 책임감에 B는 A에게 누락된 두 명에 대한 구제 방안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이미 수강생 모집공고에는 대기자 접수는 없고 결원을 보충하겠다는 내용이 없었다. 정원의 80퍼센트 이상 등록되면 바로 수업에 들어갔고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추가 없이 수업을 진행해왔다. 그 전에도 그래 왔고, 더구나 공고에도 없는 수강생 추가 인정은 자신의 권한 밖이었다. A는 단호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3일 전 신규로 들어왔던 수강생 두 명이 사정이 생겼다며 그만두겠다고 나온 것이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세라 B는 누락된 사람을 받아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A는 자신의 권한 밖이라며 담당 팀장과 상의했고 나도 별생각 없이 받아주면 어떻겠냐고 했다. 솔직히 B는 공직 대선배이기도 하고 같은 부서에 여러 번 근무한 적이 있었다. B의 성격은 너무 잘 알았지만 그간 A와 있었던 껄끄러웠던 일은 잘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 A는 그만두겠다는 C에게 부러 전화를 넣어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고 했다. 순수한 노파심으로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으면 좋았을 것을 C는 다시 B에게 전화를 걸어 A와 통화한 내용에 이상한 뉘앙스까지 얹어 놓았다. B의 예민한 뇌 회로에 갑자기 열선이 가동되었다. 바로 사무실로 달려와 A를 붙잡아 놓고 따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신규 수강생의 등을 떠다미는 장본인으로 그렸다는 이유였고 그러는 중간에 A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이다. 119를 불러 응급실로 실려 가고 놀란 B도 따라갔다.
문제는 A가 예전에도 쓰러진 적이 있었기에 B는 자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 몸이 약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A는 불면증과 영양결핍 등 그동안 스트레스로 몸 상태가 약화된 것이라는 진단을 받고 퇴원했지만 이틀 정도 더 쉬었다.
그리고 만난 자리였다. A는 자신이 약한 것도 있지만 지속적인 B의 강압에 더 힘들어졌음을 말하고 싶어 했다. 준비한 A4용지에는 그동안 자신이 느낀 수모와 굴욕을 생생하게 기록해 놓았지만 언뜻 보면 그저 여과 없이 내뱉는 무의미한 단어들이었다. 논리적인 B는 이해할 수 없었다. A의 비논리적인 상황설명은 B의 비웃음만 끄집어내고 말았다.
지켜보는 나도 답답해졌다. 두 사람에게 차례로 항변의 기회를 주고 차분히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도록 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B는 업무 총괄자로서 직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나에 대한 공격으로 방향을 틀었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탓하고 있었다.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다음 날, B가 찾아왔다. 밤새 잠을 뒤척여 푸석해진 얼굴로 명예훼손을 들어 고소고발을 준비한다고 했다. 우리 기관까지 들먹이며 업무처리가 미숙한 거라고 따지고 들었다. 나는 B가 정말로 경찰서로 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래도 선배 공직자에 대한 예우로 따뜻한 도라지차를 내주고 이쪽 사정 이야기를 했다. B가 주장하는 대로 수강생 모집공고에 불합리한 요소들은 빼기로 했다. 긴 시간을 보냈음에도 B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오후에는 A와 차 한 잔을 나눴다. A는 과거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음을 솔직하게 말해줬다. 그러나 아직도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혀있는 자신을 꺼낼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람마다 감정을 통제하는 방식이 다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A는 기관에 누를 끼쳤음에 미안함을 말했지만 B의 진정한 사과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보내고 오래도록 창 밖을 내다보았다. 가을도 저물어 겨울이 달려올 기세다. 당분간 A와 B의 가슴에도 황량한 바람이 불겠구나. 그렇게 거칠게 쏟아내던 울분 속에 서로에게 공통된 문장이 튀어나왔다. ‘안 보고 살지’. 가장 지키고 싶었던 자존심에 생채기를 냈으니 보고 싶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움직이는 시간을 달리한다 해도 작은 소도시에서 서로를 마주할 기회가 전혀 없을까? 그럴 확률이 너무 낮기에 조금씩 물러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시간이 지나면 부러 피하지 않고 눈인사 정도의 마음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중간에서 서로에게 다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 중간에 내가 서있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사건은 커지지 않겠지만 ‘안 보고 산다’보다 ‘그저 그렇게 보고 살지’라는 마음으로 서로를 연민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