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by 오행시

‘○○○ 필수요원으로 정함’

심장이 갑자기 쿵하고 내려앉았다.


늘 그렇듯 눈은 모니터에 두고 마우스 스크롤을 쭉 내리는데 낯익은 이름이다. 찬찬히 공문을 읽고 그 이름을 가진 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나이도 1년, 학교도 1년, 공무원 임용도 1년 차이가 나는 친한 후배였다. ‘필수요원 지정’은 5급 승진을 포기하는 대신 퇴직 전까지 매달 십만 원의 수당을 받는 제도다. 물론 대상자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8년 이상의 6급 경력과 별다른 비위 사건이 없는 사람에 한하여 신청을 받고 심사로 선정되었다. 어떤 자리에서 그니가 은연중 말은 비추었지만 이렇게 정말로 현실로 다가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왜? 무엇 때문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전화를 걸었다. “언니?”

어느 조직에서나 친밀한 관계에서도 언니니 오빠니 하는 호칭은 남사스럽지만 시간의 흔적은 오래전 예스러움을 훌쩍 뛰어넘었다. “잘 결정한 거겠지?” 물어볼 말은 많았지만 정작 입에서 나온 말은 간단했다.

“과장님이 결재를 안 해 주셔서 힘들었어요. 아직도 기회가 있는데 뭐하러 포기하냐고. 좋으신 말씀이지만 내 인생이라고 했죠 뭐.”


옆에서 본 것은 아니지만 과정이 그려졌다. 내가 부서장이었더라도 그랬을 거다. 앞날이 창창한 직원이 승진을 포기한다는데 어떤 상관이 ‘오냐, 그래 잘 생각했다.’면서 추천 도장을 콱 찍어주겠는가? 후배는 정기인사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필수요원 지정신청서를 제출할 뜻을 비쳤는데 과장은 좀 더 생각해 보라고 되돌려 보냈다고 했다. 그 시간 동안 과장은 후배의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고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후배는 과장의 입장을 헤아리겠다는 뜻으로 두어 달의 시간을 양보했다. 하지만 그건 부하직원을 아끼는 상사에 대한 예우일 뿐 단순한 기다림이었다. 이미 오래전 후배는 상황 정리를 했고 가장 적정한 타이밍에 의사를 노출한 것뿐이었다. 삼 개월 후 다시 추천서를 내밀었고 과장은 헛헛한 웃음과 함께 도장을 찍더란다.


창 밖으로 까치 한 마리가 맞바람 속에 힘차게 날아오른다. 자유를 향한 거침없는 날갯짓.


내부망 알림 창에 승진자 명단에 내 이름이 턱 찍혀있던 다음 날 그니를 포함해 몇몇과 밥을 먹었다. 승진턱이었다. 모인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얼굴을 보고 지낸 공직 내 지인들이었다. 다만 어느 조직이나 그렇듯 비슷한 나이지만 직렬이나 근속연수 등 차이가 있었다. 그중 내가 가장 먼저 승진한 경우였다.


과분한 축하와 부러움이 섞인 말들이 오갔다.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몸을 낮추려고 했지만 그건 겸손을 가장한 위선도 섞여 있었다.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어쭙잖은 업무실적, 오래전에 담아두었던 인사 불만까지 대동하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험한 길을 걸어왔는지 엄살을 떨었다. 자네들도 쉽지 않을 거야. 나니까 그걸 견디고 해낸 거라고 과장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대화 중 ‘나는 언제 하나’라는 각자의 푸념과 ‘잘 될 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이 오고 가는 끝에 후배는 짧은 한마디를 내뱉었었다.

“저는 오래 다니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저 당장은 가망이 없는 승진에 억압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각이려니 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소극적인 리엑션과 담담한 표정이 내심 신경이 쓰였는데 말까지 밉상이었다. 회사든 조직이든 무리 속에 섞여 나의 노력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경로가 ‘승진’이다. 말로는 ‘뭐 승진이 대수겠어’ 하면서 마음으로는 ‘승진만 하면 참 좋겠다’가 솔직한 표현이지 않은가. 그런데 뭐야, 후배는 달랐다. 그게 꼭 이 년 전이었다.


후배와 통화를 끊고 멀거니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그리 되었구나. 이제 퇴직을 생각할 나이, 어쩌면 승진보다 남은 시간, 퇴직 이후 삶을 걱정하는 것이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후배의 결정은 당연히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래전 그니의 남편과 이야기를 했고 차근차근 자신이 정한 방향으로 옮겨가는 중이었다. 많이 아프기도 했고 뛰어나지는 않지만 쉬지 않고 부단히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자신의 삶에 안온함을 주고 싶었다고. 그 안온함은 내려놓음에서 오는 것이라고 후배는 판단했다. 타인에게는 갑작스러운 결정이지만 본인에게는 오랜 침잠의 결과였다.


유시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나이를 먹어도 삶은 똑같이 귀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결정권’이라고 했다. 자기 힘으로 삶을 꾸려가야 존엄과 품위를 지킬 수 있다는 요지였다. 모두가 ‘승진’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향해 몸을 비틀고 있을 때 후배는 다른 삶, 자신이 결정한 삶의 가치에 집중하고 있다.


요즘 후배는 전에 없이 편안한 얼굴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배움에 빠져들었고 깊은 사색과 너그러움이 일상인 모습이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놓치고 사는 것들이 많은 세상, 후배는 일일이 챙겨보고 싶다고 했다. 옆은 고사하고 뒤조차 돌아보지 않는 질주의 세계, 후배는 느릿하게 걸어가다 남이 가지 않은 길로 접어들었다.


대부분 비슷한 연배나 경력자들은 ‘승진에 목숨 걸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 내밀한 바닥에는 승진에 대한 욕구가 껌딱지처럼 붙어있음을 알 수 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한때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5급 승진 기회가 풍년이었다. 오죽하면 대과(大過)만 없으면 줍는다고 했을까. 그 시절이 또 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후배처럼 결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이한 선택에 뒷말이 오가고 뭔가 큰 오점이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들을 별 것 아닌 일로 받아들이는 일, 자기 결정에 대한 확신, 선택한 결과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다 하더라고 너그럽게 받아들이기를 시도하는 후배는 큰 사람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