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올해는 바로 다음날이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있어 관심이 예년보다 못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게다가 코로나 변이바이러스까지.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개인적으로 한 가지 좋은 게 있다면 미루고 미루었던 책을 읽는 일이다. 박경리의 『토지』도 그 중 하나다. 단행본은 좀 부담이 덜하겠지만 매 권마다 사오백 페이지가 넘는 대하소설, 총20권을 끊어내지 않고 읽어내기란 쉽지가 않다. 한권씩 털어낼 때마다 엄두도 내지 못했던 높은 산의 정상을 향해 조금씩 오르는 기분이었다.
11권 초반에 ‘자살’이라는 부제로 사건이 나온다. 복동네라는 나이많은 과부가 평생 수절하며 살다 양자를 들여 며느리까지 얻었는데 난데없는 헛소문에 목을 매는 사태가 일어난다. 사건의 진상은 근처 사는 봉기노인이 젊어서 복동네를 마음에 두어 월장을 했는데 복동네가 식칼을 들이대는 바람에 좇겨나온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이 일을 아는 자가 또 있어 자기 식구를 보호하기 위해 봉기노인이 소문을 퍼뜨리게 된 것이다. 하지도 않은 일로 오해를 받던 복동네가 봉기노인을 찾아가 결백을 밝혀달라고 했지만 오히려 큰소리로 내치는 바람에 반쯤 초주검이 되어 돌아오는데 이를 빌미로 며느리의 홀대가 있었다. 참다 참다 분통을 이기지 못해 복동네는 스스로 목을 맨다.
사건이 여기서 끝났다면 그저 흔한 소설 속 일화였겠지만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한동네 비슷한 처지의 마당쇠댁과 야무네가 죽은 복동네의 누명을 벗겨야 한다는 신념을 갖는다. 여자들과의 연대는 들어먹히지 않을 게 뻔하니 젊은 남자선생을 찾아가 일을 의논하게 되고 결국 봉기노인은 상여가 나가는 날 마을사람 앞에서 자신이 헛소문을 냈다는 자백을 한다.
사실 매 권마다 불편한 사건들이 있었다. 사람 사는 일들을 다루었으니 그렇겠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성폭력을 일삼고 아무 거리낌 없이 우스개로 여기는 여성에 대한 하대, 시대가 그랬으려니 하지만 요즘 세상이라는 그늘에 살다보니 한숨이 나오기도 했었는데 이 부분만큼은 예외였다.
마당쇠댁과 야무네, 남편도 없고 재산도 없이 그저 소작농으로 살아가는 늙고 힘없는 두 여인이 이미 죽어 관 속에 누운 영혼, 알 턱도 없는 일인데 굳이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해 나선 그 용기는 무엇일까? 시골 촌아낙들의 연대, 가슴 한 켠이 짠해 지는 것이다.
3월 8일은 1908년 미국 여성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일을 기념하기 위해 지정되었다. 한국에서도 1920년 3월 8일을 여성의 날로 지정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1985년 비로소 여성문제를 해결하자는 차원에서 사회적 이유가 되었다. 주요한 활동으로 ‘여대생 성추생 대응활동’, ‘결혼퇴직제 반대운동’ 등 여성의 사회참여와 관련한 차별요소를 배제하자는 의도였고 수년간 시대에 맞게 바꿔가며 명맥을 유지해왔다.
2018년 양성평등기본법 일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통과되면서 3월 8일을 법정기념일로 공식인정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적지 않은 시간동안 부단히 여성운동을 벌여온 셈이다.
『토지』의 첫 배경이 1897년인데 위 봉기노인 사건은 30년이 지난 후 발생되니 거의 1920년 후반 언저리다. 한국에서도 여성의 날이 있었다는 게 생소할 따름인데 묘하게 시골 늙은 아낙들의 연대로 사건이 마무리된 시점이 20년대 후반이다. 단순히 우연의 일치였을까? 지금은 만날 수 없는 故 박경리 선생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명쾌한 결론을 내어주었는지 묻고 싶다.
미래 어느 날은 이러한 일들이 일상에 다반사로 일어날 것이고 그럴 때마다 누가 누구와 어떻게 도움의 끈을 이어가는지 길을 안내하는 것인가. 소설 속 이야기지만 약자에 대한 연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중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 다가왔다. 단순히 ‘약한 자여 그대이름은 여자’라는 말로 위안을 받고 싶은 게 아니다. 관 속에 누운 영혼이지만 죽어서도 억울하지 않도록 누명을 벗기고자 연대한 그들을 닮고 싶은 거다. 그 깊은 연대와 공감을 함께 나눠볼 수 있다면 살만한 세상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