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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행시 Oct 30. 2022

30대 남자, 다섯 번째 팀원

옹졸한 팀장과는 빠이 빠이

 그는 가는 날까지 후임자에게 업무를 인계하고 있었다. 업무를 담당했던 기간이 그리 많지 않아 전해줄 것도 없었다. 그도 나처럼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함께 왔지만 그가 먼저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는 상급기관으로 전출을 가게 되었다. 참 살뜰하고 영민한 친구였다. 거의 대부분 열심히 일하지만 그처럼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가지고 책임감 있게 추진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그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한 달 전 그가 상의할 게 있다면서 대화를 요구했다. 단순한 업무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 구내매점으로 내려갔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한참 뜸을 들이던 그가 상급기관 전출 얘기를 꺼냈다. 이제 겨우 삼 개월이 지났다. 새로 맡은 업무에 가속도가 붙어 이것저것 구상해 놓은 것도 많았다. 함께 추진할 프로젝트팀까지 만들어 놓고 어떻게 진행할 건지 아이디어 회의를 세 번 정도 진행한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전출이라니. 이 사람도 별수 없구나.' 


 9급 지방공무원은 대부분 지역 출신자들이 많다. 광역자치단체 범위 내 가족관계 등록지 또는 주민등록이 되어 있으면 시험이 가능했다. 매년 초 발표되는 채용공고를 보고 합격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정해놓고 원서를 낸다. 실력이 현격하게 좋은 사람은 어느 곳이든 상관없지만 시험에 부담을 느끼는 공시생들이 자기에게 유리한 지역을 선택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렇게 눈치껏 원서를 내고 실력을 쌓으면 합격의 영광을 안게 된다. 진짜 실력은 여기서 나타난다.  이런 쪽에 탁월한 감각이 있는 몇몇은 기간이고 뭐고 없이 자신의 스케줄대로 요리조리 옮겨간다. 의무 복무기간이 있지만 제한 범위를 넘은 방법들, 상급기관 전출이나 인사교류를 100퍼센트 활용하기도 한다.


 인력수급만 제때에 된다면 왜 발을 묶어두겠는가? 다음 인력 충원까지 최소 6개월에서 1년을 버텨야 하니 간신히 어르고 달래서 어느 정도 충원 대책을 세워두고 보낼 수밖에. 오죽해야 농촌지역 자치단체를 '신규공무원 양성소'라고 할까? 채용된 사람을 교육하고 다양한 업무 경험을 쌓게 하면서 슬슬 비중 있는 업무를 맡기려는 찰나 가겠다고 하니 얼마나 허탈한가. 이에 반해 대도시권은 훈련받은 경력직을 가만히 앉아서 넙죽 받아먹는 셈이니 열악한 기초자치단체는 늘 악순환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요즘 MZ세대는 1년마다 현타를 겪는다는 말이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3년이라고 하더니 심적 갈등이 잦게 오나보다. 누군가는 진짜 자기 집으로 가기 위해 인사상담을 요청한다. 시험을 보기 위한 연고지였기 때문에 지역에 대한 애착심은 덜하다. 더구나 가족도 없고 아무런 연고도 없으니 새내기 외로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을 것이다. 집으로 또는 집 근처라도 가고 싶은 거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에서는 인재 유출이 너무 많다 보니 제동을 걸 수밖에 없다. 의무복무기간을 법으로 정해 놓았다.


 3년, 이것도 짧다고 해서 2015년 지방공무원임용령을 개정하면서 임용권자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5년까지의 범위에서 따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 시는 5년이었다. 5년이라는 시간은 8급 선임으로 곧 7급 승진을 앞두고 있고, 지역에서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거나 친구를 여럿 사귀어 그럭저럭 지역 생활에 익숙해지는 시기다. 실제 5년이 지나면서 전출을 포기하는 경우도 여럿 있었다.      

 

 그도 그런 줄 알았다. 워낙 성격도 좋은 데다 일도 잘하니 주변에서 칭찬도 많았다. 5년이나 잘 넘긴 그가 갑자기 전출을 희망하다니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잠깐 정신이 나갔다. 혹시 뭔가 서운한 게 있었나 싶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신규 발령을 받고 지금까지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이 ‘어디 출신이냐?’는 거였다. 언제 들어왔는지, 어디서 사는지, 취미는 뭔지 너무 사적인 영역까지 침범해 오는 질문도 있었지만 그 정도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다양한 질문 중에 한결같은 내용이 있었으니 그것은 ‘어디 출신이야?’ 그리고 대답에 이어진 말들, ‘그럼 곧 가겠네.’였다.


 처음에는 그냥 호감의 멘트인 줄 알았는데 너무 자주 듣다 보니 정말로 가야 할 것만 같았다고. 그래서 가깝게 지내는 선배에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자 그가 한마디 하더란다.


  ‘공무원은 자기 지역에 있어야 클 수 있어.’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고 했다. 그저 열심히 경력만 쌓이면 승진도 하고 정착도 하면서 평생 살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선배의 말을 듣고 주변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일 년에 두 번 하는 정기인사와 어느 날 생기는 변수에 의해 발생하는 수시인사의 흐름을 분석해 본 것이다.


  더구나 5년 차 정도 되니 엊그제 들어온 신입만 아니면 웬만한 사람들은 거의 알게 된다. 지역 찬스는 하위직에서는 별 효과가 없지만 상위직으로 올라갈수록 빛을 발하더란다. 선출직 시장, 군수는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원칙을 세운다. 그 인재의 범주에는 타 지역 사람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는 저분이 사무관 승진을 할 거야'라는 소문은 돌았지만 한쪽에서는 '출신이 달라서 안된다'라는 말이 돌았다. 그리고 결과는 정말 지역 출신이 아닌 사람은 동기들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아직 젊은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을 안심시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이 커졌다. 


 "이런 조직에서 타 지역 출신인 나는 어디까지 허용받을 수 있는 것인가?"


  많은 시간 고민과 생각을 거듭하고 내린 결론이 지역색이 드러나지 않는 상급기관으로의 전출이라는 거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일리가 있었다. 나조차도 공공연하게 새로 온 직원에게 집이 어디냐를 시작해서 은근히 출신지역과 학교를 물어왔다. 


 이곳 출신인 사람은 자신의 부모까지 대동하며 지역 출신임을 밝히지만 출신이 아닌 사람은 일 년에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 지역 먼 친척 이야기를 내놓곤 했다. 아, 그렇군. 태어날 때부터 이곳 사람인 나는 공감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의식이 높아져서 그렇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얘기는 고작 상급기관도 쉬운 게 아니라고, 거기도 학연, 지연을 엄청나게 많이 따지고 오로지 인맥으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어려울 거라고. 좀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면 안 되겠냐고. 내 입장만 생각했다.  일도 잘하고 예의도 바른 그가 항상 내 옆에서 '예, 알겠습니다.'를 연발하며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근무해 주기를 바랐는데 그 희망이 깨져서 아쉽다는, 그래서 너의 전출을 찬성할 수 없다는 뉘앙스만 보냈다.


 내 말을 듣는 그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의 발령이 결정됐다.  


  인사발령이 내정된 이후 부서원들은 정말로 아쉬워했다. 그가 얼마나 직장생활을 잘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소식을 들은 이들이 일부러 찾아와 용기를 주고 응원의 말을 건넸다. 부끄러웠다. 어차피 일 년이나 이 년 뒤에는 서로 다른 부서로 이동되는 사람들이다. 그런 일이 좀 일찍 생긴 거라 여기면 될 일을, 무엇하러 말도 되지 않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안겨줬는지.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인수인계를 마친 그가 가겠노라고 했다. 전날 조촐하게 송별식을 치렀고 개인 물건도 옮겨놓은 상태였다. 손에 외투만 들고 있었다. 아쉽고 섭섭했지만 애써 담담한 척했다. 멋쩍게 서있는 그에게 며칠 전 사다 놓은 책 한 권을 건넸다. 


 전입 이야기를 꺼냈을 때 흔쾌히 격려해 주지 못한 나의 옹졸함을 사과하는 짧은 편지를 동봉했다. 


 '잘 가요, 나의 다섯 번째 팀원님. 부디 행복하고 즐거운 공직생활 바랍니다. 덕분에 짧은 기간이지만 타인과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자꾸 나이 들수록 내 기준으로만 삶을 이해하고 다른 이들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좋은 인연이었고 앞으로도 그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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