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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행시 Oct 29. 2022

20대 그녀, 당당하게 스테이크

맹랑한 게 아니야

"스테이크요."     


 생일을 맞이한 팀원이 먹고 싶다는 메뉴였다. 돌아오는 일요일이 그녀의 생일이었고 휴일이라 미리 축하 인사를 건네며 "밥이나 사줄까? 뭐 먹고 싶은 거 있나?"라고 물은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스테이크라, 오십 줄에 들어가면서 채식 위주의 식사를 선호했다. 더구나 따로 밥을 챙겨 먹을 수 있는 삼겹살이나 돼지갈비도 아니고 스테이크라니. 보통 누가 밥을 사준다고 하면 사주는 사람의 취향에 맞추기 일쑤다. 그런데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되받아치는 상황이 모니터 속에 잠겨있던 내 눈을 그녀 쪽으로 돌리게 했다. 눈이 마주쳤다. 웃음기를 머금은 그녀의 맑은 눈동자가 팽글팽글 하다.    

   

 "역시 90년대생은 다르구나, 취향이 확실하네." 당황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에둘러 말하며 근처 스테이크 집을 검색했다. 그럴 필요도 없었지만. 그녀는 평소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서 위치까지 말해줬다. 우리는 퇴근길이라 각자 차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내가 먼저 도착해서 자리를 잡았다. 초보운전자인 그녀는 아무래도 늦나 보다. 종업원이 물과 메뉴판을 주고 갔다. 가격이 꽤 비쌌다. 나는 예전에 상급자가 밥을 사준다고 하면 부담되지 않을 수준으로 메뉴를 정했다. 아마 나 정도의 나이라면 비유가 철면피 수준이 아니고서야 대부분 그랬을 거다.      


 상대방을 배려할 만큼 나이도 아니고 사회생활도 안 했잖아. 이 정도야 사 줄만은 하잖아. 가격표를 보면서 언짢아지려는 마음을 스스로 달랬지만 얻어먹는 사람이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밖에 없는 여자 팀원이었다. 나를 포함해서 총 4명이 한 팀이었고 두 명은 남자였다. 나이 많은 차석과 엊그제 들어왔지만 한참 나이가 많은 후배 사이에서 그녀는 징검다리 노릇을 했다. 가끔 징검다리 사이 간격이 넓어 양쪽 남자들이 자주 빠지기는 했지만.       


 그녀가 원하는 대로 안심 스테이크를 주문하고 식당 안을 살펴봤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다고는 하지만 손님은 나 밖에 없다. '상생 국민 지원금' 효과가 한 달도 못 가는 것 같다.     


 도착하자마자 주문한 스테이크가 나왔다. 김치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먹을만했다. 칼로 고기를 썰어가며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공무원 3년 차였다. 면단위 행정복지센터가 첫 발령지였고 그곳에서 2년을 버티고 우리 부서로 왔다고 했다. 그녀의 꿈은 '노조위원장'이라고 했다. 


 너무 생뚱맞아 그녀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다. 승진을 빨리하려고 하나? 이른 나이라 과장은 물론 국장까지도 무난할 텐데 굳이 어렵다는 노조위원장까지 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다질 필요가 있을까?     


 사실 우리나라는 공무원노조의 단체행동권을 인정하지 않지 않는다. 선임된 노조위원들이 너무나도 열심히 공직자를 위해 활동하고 있지만 행동권이 없으니 실효성이 없는 게 현실이다. 어떤 때는 오히려 집행부(공직내부)의 하수인이라는 비판도 받기도 한다. 잘해야 본전, 잘못하면 이미지까지 이상해져서 노조위원장을 하려는 사람도 없다. 그런 노조위원장을 자청하고 나서다니 무슨 이유인가 싶었다.      


 면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할 때 환경민원으로 많이 시달렸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화가 난 민원인이 전화에 대고 "머리가 빈 씨 xx"라고 욕을 하더란다. 이 말을 듣고 너무 짜증 나서 전화를 먼저 끊었다. 그랬더니 그 민원인은 바로 감사실로 전화를 해서 공무원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면서 '불친절한 공무원'으로 고발했다. 이어 감사실 직원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공무원이 그러면 안 된다'며 꾸지람 비슷한 훈계를 한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공무원은 민원인한테 쌍스러운 욕을 들어도 참아야 되느냐고 물었다.     


 먹는 내내 김치만 생각하던 나는 씹고 있던 고기를 꿀꺽 삼켰다. 그녀는 고기를 썰다가 잠시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경험이 없어서 그래. 조금 있으면 무뎌질 거야." 그러면서 아무리 그래도 공무원은 욕은 하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예전에 그보다 더 심한 욕을 먹었지만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면서 옛말에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도 있다'라는 실없는 웃음까지 흘렸다.     


 다시 고기를 썰기 시작한 그녀가 말했다. 업무가 어려운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지만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을 가지고 그런 욕을 먹는다는 게 견딜 수가 없었다고. 그래서 그만두고 싶었지만 노조위원장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참았다고 했다.      


 그녀는 잠시 주저하더니 시군에서 공무원이 잘못하면 감사실에서 지적하는데 감사실 직원이 잘못하면 누가 감사를 하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외부 민원은 고충처리위원회나 상급기관이 있지만 내부감사를 조율할 수 있는 곳은 노조, 특히 노조위원장의 지위라면 감사실 직원을 혼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거였다. 얼마나 혼자서 끙끙 앓았길래 이런 결론을 내렸을까?      


 처음 그녀를 화나게 한 것은 자신에게 욕을 퍼부었던 민원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민원인의 말만 듣고 자신을 불친절한 공무원으로 취급했던 감사실 직원으로 화의 감정이 전이된 상태였다. 민원인에게 한차례 모욕을 당해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한 상태에서 '지방공무원 복무규정'이나 들먹이며 '품위유지'나 따지고 드는 동료직원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컸다. 물론 감사실 직원은 잘못한 것이 없다. 오히려 너무나 성실하게 자기 직분에 맞는 처신을 했다. 단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을 덜했을 뿐이다.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녀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그저 옛날에도 그랬으니 너도 참아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으니 완전 전형적인 꼰대였다. 그녀도 민원인의 전화를 먼저 끊은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왜 그랬는지 정도는 물어보고 그다음에 복무규정을 말해줘도 괜찮지 않았냐는 거였다. 나도 모르게 아~ 하고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후식으로 나온 커피까지 마시고 식당을 나왔다. 차를 주차한 곳이 달라서 우리는 문 앞에서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에 나는 그녀에게 '노조위원장에 출마하면 응원해줄게. 선배들보다 훨씬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거야"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저 친구가 내 나이쯤 되었을 때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했다.   

   

 김경집의 <인생의 밑줄>에 이런 말이 나온다.      

'감정을 절제하는 건 과도한 감정을 충동적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것이지 무조건 막는 게 아니다. 그런 절제는 억압이며 폭력이다. 감정의 섬세함을 배우지 못한 세대는 불행히도 다음 세대에 똑같은 폭력을 행사한다."      

 무조건 참는 감정의 절제도 일종의 폭력이라는 말이 비수처럼 꽂힌다. 누군가 휘두른 도끼에 상처를 입었는데 상처를 들여다보며 약을 발라주지는 않고 그저 남들이 상처를 볼 수 없도록 상처를 덮으려고만 한다.      

 상처를 감당하는 것은 오롯이 주인의 몫, 그저 곪아 터진 상처가 저절로 나을 때까지 오랜 시간을 견딘다. 나도 견뎠으니 너도 그래야 한다는 논리.      


 나이를 헛먹었다. 경험에서 오는 지혜니 어쩌니 하는 말로 왜 자꾸 어린 친구들을 '가르치려'드는지 모르겠다. 섬세한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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