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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행시 Oct 30. 2022

50대 부부

새삼 현모양처?

 삼 년 전 뜬금없이 대학 친구 A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고 싶다는 거였다. 대학 때 유난히 친했던 친구 B까지 연결되면서 우리는 금방 내 만날 날짜를 정했다. 그리고 첫 모임은 A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 했다. 먼저 연락했다는 이유였다. 


 A는 우리를 ○○월드로 데려갔고 우리는 융숭한 점심까지 얻어먹었다. 삼십 년 만에 만남이었지만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서로가 쌓아 올린 세월의 벽이 두껍고 높았지만 한 귀퉁이 뚫린 구멍으로 공통의 추억이 들락거리면서 우리를 잠시 그 시절로 데려다 놓았다.    

  

 얼마나 웃고 떠들었는지. 너무 아쉬운 마음에 우리는 다음 모임을 기약하고 각자 가야 하는 터미널로 걸음을 옮겼다. 이후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을 만났다. 연락은 주고받았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역이 다르다 보니 만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2년이 훌쩍 지난 10월 초, 우리는 2박 3일 여행을 가기로 했다. 카톡으로 모든 일정을 상의하고 구체적인 활동까지 계획했다. 나는 친구들의 모든 의견을 수용하면서 한 시라도 허튼 시간이 생기지 않도록 일정을 정리한 후에 단톡방에 계획서를 올렸다. 둘은 환호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출발 전날 띠릭~ 하고 올라온 문자가 있기 전까지.     


 금요일 저녁 9시, 마지막에 챙겨야 하는 휴대전화 충전기를 가방 옆으로 옮겨 놓고 마치 100미터 달리기 선수가 출발선상에서 총소리를 기다리는 순간처럼 벽시계를 올려다보는데 휴대전화가 부르르 떨었다.


 “하이!! 내일 2시에 ○○에서 페스티벌 개막식이 있는데 그거 보고 목적지로

  이동할까?”

 “남편네 부서에서 하는 거거든”

 “거기서 둘러보고 점심 먹고”     


 세 줄로 나눠진 문장이었다. B는 가벼운 제안처럼 올렸지만 내용이 너무 생뚱맞았다. 자기 일도 아니고 남편의 일이었다. 거기를 가야 할 이유라 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했다. 기다렸지만 B는 말이 없었다. 탐탁지는 않았지만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 지도를 보며 거리를 가늠하고 있는데 A의 글이 올라왔다.     


 “응, 미안하지만 걍~ 계획대로 하자.”     

  응석 부리는 막내 같은 어투로 답글을 달았다. 곧바로 A에게서 전화가 왔다.


 A와 나는 B의 엉뚱한 제안에 어이가 없다는 투로 이야기를 했고, 나는 전화를 끊고 주말이라 차가 많이 밀릴 것 같다는 이유를 들어 목적지로 바로 가자고 A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의견을 올렸다. B는 톡을 읽었다. 하지만 두 시간 동안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불안했다. 뭐지? 이런 어색한 시추에이션? 그리고 11시,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B는 다시 세 개의 문장을 끊어서 올렸다.     


 “미안한데 둘이 먼저 가고 난 ○○들러서 갈게.”

 “너네랑 같이 출발하는 것도 좋은데 여기도 꼭 참석하고 싶거든.”

 “내일 안 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황당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시시콜콜 말하지는 못했겠지만 셋이 떠나는 여행에 차를 두 대나 끌고 가는 비효율을 감행할 만큼 특별한 이유가 뭘지 궁금했다. A와 나는 어차피 B의 집에 차를 주차하기로 했으니까 내일 다시 이야기 하자는 말로 마무리했다. A도 나도 엄청 참고 있었다.     


 다음날, 차가 많이 막혔다.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도로에 차들이 빽빽하게 늘어져 있었다. 너무 천천히 움직이니 답답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도로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겨 우리는 계획을 바꿨다. 결국 자연스럽게 B가 제안한 지역 축제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전 11시, 셋은 드디어 만났다. 우리는 축제장에 들어가 B의 남편을 만났다. 그들 부부는 대학 때부터 커플이어서 안면이 있었다. 우리한테는 대학 선배였다. 그는 약간 말라 있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인자했다. 행사는 오후 2시에 정식 오픈이라 아직은 한가했다.      


 메인 무대에서는 식전 공연팀이 리허설을 하고 있고 전문 MC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진행 시나리오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맑고 화창한 가을 하늘 아래 푸른 잔디는 더없이 푸르고 깔끔했다. 잔디 위를 걷는 걸음들이 가벼워 보였다.      


 아직은 텅 빈 내빈석에 앉아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선배는 너무 이른 시간에 온 우리가 부담스러웠는지 시계를 자주 들여다봤다. 잠깐씩 옆에 있다가 본부석과 전시장을 분주하게 오갔다. 선배가 캔커피를 가져와 나눠주며 전시장으로 안내했고 우리는 이것저것 관심을 보였다.      


 10분이나 지났을까 B가 이제 됐다면서 그만 가자고 했다. A와 나는 뜨악했지만 부랴부랴 B를 따라 행사장을 나왔다. 선배에게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곧장 주차장으로 향하는 B의 쑥색 셔츠 자락을 따라 걸었다.

      

 이쪽 지리에 밝은 B가 운전을 했다. 복잡한 도로를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한가해졌다. 이윽고 B가 말했다. 어젯밤에는 화가 많이 났었다고. A와 나는 B의 설명 부족을 탓했다.  원래 B는 축제장은 갈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갈 생각이 있었다면 이미 오래전 우리가 계획을 세울 때부터 비집고 넣었겠지만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다고.      


 그런데 지난 목요일.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는데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숨을 쉴 수가 없어 병원에 가고 싶은데 같이 가주겠냐고.’ B는 깜짝 놀라 차를 몰고 남편이 있는 사무실로 와서 응급실을 찾았다. 협심증이었다. 초기라 수술이나 시술은 필요 없지만 스트레스가 심하면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 남편은 곧 안정을 찾았지만 부부는 충격을 받았다.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죽움의 순간’이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고 했다. 시아버님도 오래전에 심장질환으로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다.    

  

 남편의 침상 옆에 앉은 B가 별거 아니라고, 남편은 건강관리를 잘하는 타입이니 걱정할 거 없다면서 나름 위로를 하고 있었다. B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멀거니 천장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나 너무 무서웠다.’라고 하더란다.      


 그리고는 ‘대학 때 만나 멋모를 때 결혼한 B가 자신을 만나 고생만 했다고. 잘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이른 나이에 남편을 잃고 칠 남매를 키운 억척스러운 시어머니와 30년 이상 같이 살면서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었을지.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고.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미안했다고.’     


  B는 당황했다. 위험한 순간도 아닌데 남편이 마치 유언을 남기는 말기암 환자처럼 지난날을 반성하는 태도가 너무 어색했던 것이다. B의 남편은 전형적인 한국 남자다. 여태껏 와이프 앞에서 눈물 한 방울 훔치지 않은 마초남. 친구 좋아하고 술자리 마다하지 않는 전형적인 직장인이면서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든든한 가장, 그런 그가 부인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B가 놀랄 만도 했다. B는 처음에 ‘어머머 어머머’하며 놀리듯 했지만 너무 심각한 남편을 보고 나중에는 오히려 신경질이 났다고 했다. 

     

 그날 밤, 남편은 약 기운 때문인지 일찍 잠이 들었고 B는 잠이 오지 않더란다. 남편의 응급 상황을 구십을 바라보는 시어머니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B는 처음으로 남편의 모습을 자세히 보았다고 했다. 창백한 낯빛, 얇아진 피부 위에 여러 갈래로 뻗은 주름들, 축 처진 어깨, 둥글게 말린 등허리, 그도 세월을 온전히 비껴가지 못했다.     


 한 번도 직장생활이 어렵다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가장으로서 짊어진 무게, 이제 곧 다가올 은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온몸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 보는  남편의 약한 모습, 이불을 덮어주며 남편의 등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다가 문득 낼모레 남편이 추진해 온 축제가 생각났다. 남편에게는 비밀로 하고 행사장에 짠~하고 나타나서 놀라게 하고 싶었다. 그게 바로 플랜 B 였다.      


 A와 나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차라리 전화라도 해주지 그랬냐고. 신혼 초도 아닌데 남편 업무 현장에 친구들까지 동원해가며 용기를 북돋아줘야 할 만큼 닭살 부부의 캐미가 고까웠던 지난밤의 대화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괜한 오해를 했고 잠깐이지만 가부장적인 남편의 압력에 못 이겨 행사장에 가야 하는 B를 조선시대 현모양처(賢母良妻)로 착각했노라고 말했다. 사실 B의 대학 때 꿈은 현모양처였다.   

   

 B도 한참을 웃었다. 그저 남들보다 열심히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남편이 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을 여태 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35년간 지방공무원으로 재직한 것도 모자라서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도 뭔가 해보려고 자격증 공부를 한다는 B의 남자. 이제라도 현역으로는 마지막이 될 큰 행사를 준비하느라 애써왔던 순간들을 칭찬해 주고 싶었다고.      


 그래야 살면서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고. 운전하느라 앞만 보고 있었지만 B의 목소리는 훅 치고 올라온 뜨거운 열기에 잡아 먹힌 듯 조용했다. 분위기가 숙연해지자 뒷좌석에 있던 A가 B의 어깨를 주무르며 “나 울컥했다. 야, 너 멋지다,” 고 말했다.      


 어쩌면 하늘이 저리도 맑고 푸를까? A와 B의 경쾌한 이야기를 들으며 차창 밖 풍경을 내다본다. 쭉 뻗은 고속도로가 연휴 때문인지 자동차들로 분주하다. 저들은 또 어디로 향하는가? 각자의 이야기를 잔뜩 실은 자동차는 연신 앞구르기를 하며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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