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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행시 Oct 30. 2022

50대 새로운 시작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은

“더 이상 처음인 것처럼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고용계약을 하고 싶지 않아요. 일은 좋지만 때마다 찾아오는 불안함이 저를 우울하게 만드네요.”   

  

 그녀는 4년째 기간제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랑 나이도 취향도 비슷해서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공직 경험이야 내가 월등히 많지만 사회생활 전체로 따지면 만만치 않은 경력자였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직위에서 오는 미묘함이 있었다.  일부러 끄집어내지 않았을 뿐. 그런 그녀가 다른 직장을 찾았노라고 말해준 것이다. 마음속에 두 종류의 파장이 일었다. 당장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것과 지금까지 우리는 왜 그녀를 붙잡을 대책을 마련해 주지 못했는가였다.     


 같은 업무를 4년이나 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연차별로 추진하는 사업이라 누군가 꾸준히 몰고 가지 않으면 성과물이 엉망일 수 있었다. 어느 때는 직무에 따라 전문직을 등용하기도 한다. 전문가는 말 그대로 어떤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이 업무 중심에 딱 버티고 있으면 든든하다. 마치 동네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보호수처럼 말이다.      


 공무원 사회에서도 전문직 제도가 있다. 직위 공모제를 통해 그 자리에 합당한 직원을 앉히고 경력관리를 해준다. ‘전문관’이라고도 불리는데 담당 기간에 따라 가점을 주고 경우에 따라서 수당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버티는 사람은 드물다.     

   

 전문관을 뽑지 못하면 일반 공무원이 업무를 담당하는데 그들도 순환보직에 의해 2년이 지나면 어김없이 부서를 옮긴다. 승진을 하는데 점수를 받지 못했거나 자신이 가고 싶은 부서에 빈자리가 생겼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각자의 사유로 메뚜기처럼 옮겨 다닌다. 전임자가 업무를 소화하지 못한 6개월 안에 자리를 옮기게 되면 기간제인 비정규직이 공무원 담당자를 가르치기도 한다.      


 여기도 그랬다. 그렇게 4년이 흘렀고 그동안 거쳐 간 담당자가 세 명이나 되었다. 나는 혹시 급여가 적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돈 벌 욕심이었으면 진작에 그만두었다고 했다. 공공기관이라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급여 차이를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은 해 오고 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는 지방자치단체의 방만한 인력운영을 우려하여 ‘총액인건비 기준’을 정해놓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제한하고 있다. 공채를 제외한 다른 방법의 채용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인력 운용이 방만해질 수 있다는 취지였다. 

     

 1년 이상 연속으로 동일 부서에서 근무하면 정규직 전환의 자격이 주어진다. 그렇게 전환되는 정규직은 ‘공무직’이라는 이름으로 정년이 보장되고 원하는 근무지로 옮길 수 있게 된다. 경력직이기 때문에 업무를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빠른 시간 내 적응하고 여러모로 조직 운영에 효과적이다. 다만 기간제 신분일 때는 정말 열심히 일하지만 공무직으로 전환된 후에는 일도 소홀히 하고 권리만 주장해서 분위기만 험악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그녀는 한 번도 공무직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저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고 틈틈이 관련 자격증도 따고 대학원 과정까지 밟고 있었다. 그럼에도 때가 되면 묵묵히 이력서를 써내고 면접시험을 치렀다. 늘 그래 왔기 때문에 당연할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남몰래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갑자기 진짜 실력자가 나타나면 고용이 안될 수 있는 처절한 상황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겪어보기도 했고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원서를 내고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렇게 마음고생을 겪으면서 그만두고 싶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일에 묻히면 거기서 오는 약간의 긴장감이 즐거울 때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지난해 9급 공채시험을 치른 그녀의 딸이 발령을 받아 주민센터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몰랐던 엄마의 직장 내 지위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본인은 무심코 툭 던졌지만 엄마가 느끼는 기간제와 정규직에 대한 온도차이는 견디기 어려웠다. 


  남들은 은퇴를 준비할 나이에 매번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기다리는 일들이 이제는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라 신분 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자신에게 누누이 일러 왔지만 엊그제 들어온 신규에게도 엄연히 주무관이라는 호칭이 달렸지만 그녀를 누군가는 그냥 ‘○쌤’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었다.   


 구구절절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그녀가 매번 치러야 했던 채용시험과 근무 중에도 느꼈을 무시와 홀대, 대놓고 하지는 않았겠지만 공무원과 비공무원이라는 한 끝 차이에서 오는 어떤 위력 앞에 번번이 무너지는 자존심을 간신히 주워 담았으리라.      


 그러다가 지인으로부터 다른 지역에서 경력자를 시간선택제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공고를 냈다는 정보를 들었다. 채용조건이 좋아 당연히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혹시 몰라 조심스럽게 시험에 응시했다. 젊고 똑똑한 친구들이 응시했지만 운명의 신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상순위자가 있었지만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채용을 포기했고 후순위였던 그녀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정년을 60세로 봤을 때 그녀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은 5년뿐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자기소개서를 업그레이드하고 면접을 위해 낯선 이들과 회의실 앞에서 서성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좋았다.     

 

 지역이 멀어 출퇴근이 만만치 않았지만 그 정도는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쉬고 싶다던 그녀는 다시 꺼져가는 불씨에 열정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지만 공백이 생긴 자리가 마음에 걸렸다. 한편으로는 진작에 시간선택제나 임기제 공무원을 검토하지 않았음을 후회했다. 그녀를 붙잡을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저 공무직 티오를 줄 수 없으니 알아서 채용하라는 인사부서의 엄포에 지게 겁을 먹고는 연속 고용이 되지 않도록 두어 달을 쉬게 하고 다시 공고를 통해 뽑기를 반복해 온 것이다.     

 

 채용은 공정해야 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될까 봐 외부인사를 면접관으로 했다. 워낙 실력도 좋고 업무 경험도 탁월하다 보니 그녀는 떨어질 염려는 없었다. 그리고 지방은 아무래도 특수한 직종에 대한 경력자가 그리 많지도 않았다.      


 다음날 담당 팀장과 팀원들을 불러 긴급회의를 했다. 인수인계가 끝나면 그녀는 바로 새로운 근무지로 가야 한다. 맡고 있던 업무를 남아있는 사람들이 나눠서 처리해야 했다. 당분간 빈자리는 유지되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일을 시작하는 삼, 사월이 아니라 마무리를 하는 시월이라는 점. 남은 일들을 정리하고 당분간은 새로운 일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때마침 겨울을 알리는 늦가을 비가 내린다.


 이 비가 그치면 얼마나 추워질까? 낙엽을 다 떨군 나무는 곧 다가올 추위와 싸울 것이다. 싫든 좋든 세월도 가고 사람도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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