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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행시 Oct 30. 2022

50대 못 가본 길에선 여자

명퇴의 상서로움

 소문으로만 들었다. 그녀는 나보다 2년 어렸고 공무원 시작은 1년 뒤였다. 그러니 길게 보면 큰 차이는 없는 건데 ‘명퇴 신청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아니, 벌써? 왜? “     


 내가 놀란 만큼 말을 전해 준 이도 놀란 눈치다. 우리는 당사자의 마음을 모른 채 그저 지레짐작으로 그녀의 명퇴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어떤 걸로도 설명되지 않았다.

     

 이십 대 초반 작은 어촌지역에서 공무원을 시작했고 90년대 중반쯤엔가 우리 지역으로 전입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근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7급 선임 시절, 그녀와 한 부서에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주어진 업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큰 신뢰를 받고 있었다. 그처럼 찬찬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업무를 해내는 이를 나는 지금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비슷한 연령이었음에도 나와는 늘 거리가 있었다. 아직은 젊다고 할 수 있던 30대 중반, 비슷한 경력에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애매한 포지션, 우리 둘은 묘한 심리전을 벌이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보다 나이도 많은 내가 다가갔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친해 볼 여유도 없이 각자 다른 부서로 옮기면서 우리는 다시 만날 기회를 잃었다. 정원 1,200여 명, 그다지 큰 조직이 아니어서 공무원 생활 30년이면 두어 번은 족히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녀와 나는 더 이상 엮이질 못했다. 업무적으로 얼굴을 마주치거나 전화 통화는 가끔 했다. 몇 달 전 업무적인 일로 통화한 것이 그녀와 마지막 통화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그녀의 명퇴 소식을 다른 이를 통해서 접하면서 과거의 기억 속으로 한참 들어갔다 나왔다. 타인의 명퇴지만 이는 곧 내 삶도 살펴봐야 하는 의미임을 알기에.     


 『중년, 잠시 멈춤』에서 마리나 벤저민은 ‘어느덧 50살, 젊음이 떠나자 인생이 바람처럼 가벼워졌다.’고 했다. 인생이 바람처럼 가벼워졌다는 것은 버릴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일까. 


 명퇴를 내고 그녀는 늦은 나이지만 대학원에 입학했다.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들, 그녀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 뭔가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그러려면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 자신의 꿈을 가로막고 있던 것을들 과감하게 벗겨내야 했다. 높은 직급을 통해 얻어지는 권위와 더 많은 연금액수의 확장은 의미가 없었다. 


 지금껏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온갖 걱정이나 욕심, 야망 그리고 소유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했다. 직장이라는 굴레, 아무리 자기 계발과 업무와의 조율이 훌륭하게 해낸다 하더라도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와 실적이 있어야 한다. 남들도 다 하는 거니까 그냥 해 나가면 될 텐데 워낙 일에 욕심이 있는 사람은 어정쩡한 성과의 비루함을 견디지 못한다.  

  

 공무원 조직이 일반 사기업과 다르다고 하지만 우리도 반드시 성과와 실적을 증명해야 한다. 모든 조직에서 성과는 숙명 같은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개인의 상응하는 노력과 조직이 원하는 성과와 잘 맞아떨어지면 성과급과 승진으로 이어지게 된다. 거기까지 가려면 험한 산길을 홀로 묵묵히 걸어야 한다.      


 그녀는 경력이나 능력면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지만 출신지가 달라서 그랬는지 조금씩 처졌다. 그래도 꿋꿋하게 견뎌왔는데 돌연, 고지를 앞두고 뒤를 돌아 다른 곳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모두들 의아해했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워도 했다. 안전이 보장된 울타리를 벗어난다는 것은 모험을 해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과 타협을 해야 하는데 그녀는 휘둘리지 안히고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아니타 존스턴의 『달빛 아래서의 만찬』에 이런 말이 있다.


 ‘폭우 후 물살이 사납게 불어난 강물에 빠졌다. 다행히 통나무가 떠 내려와서 붙잡고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고 숨을 쉬며 목숨을 부지했다. 물살이 잔잔한 곳에 이르자 헤엄치려 하는데 한쪽 팔을 뻗는 동안 다른 쪽 팔이 거대한 통나무를 붙잡고 있다. 한때 생명을 구한 그 통나무가 이제는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을 방해한다. 강가의 사람들은 통나무를 놓으라고 소리치지만 그럴 수 없다. 거기까지 헤엄칠 자신이 없다. 그런데 강물은 거대한 폭포를 향해 흐른다.’     


 과거엔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지금은 위협이 되는 것, 작가는 그것을 ‘중독’이라고 했다. 직장인의 매너리즘이 이런 ‘중독’과 같은 것은 아닐까? 진짜 삶을 위해 건너편으로 조금만 더 헤엄치면 될 것을 우리는 놓지 않는다. 아니 놓을 수가 없다.     


 여태껏 나를 지탱해주던 통나무를 놓아버리면 그대로 가라앉아버릴 것 같은 두려움, 그것은 지금껏 누려왔던 모든 것을 바꾼다는 뜻이다. 먼저 나간 선배들은 오직 정년퇴직만이 정답이라고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명예퇴직, 조기퇴직, 의원면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직장을 벗어나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다. 언제 나가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나가느냐도 중요하다. 정말 다행인 것은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것, 울타리 밖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밖을 향해 과감하게 발을 내딛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런 이들이 보면서 삶을 배우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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