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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과 면

존재하지 않는 존재

by 지원

점들은 늘 선을 사랑했다.


점과 선과 면 마을에 사는 점들은

줄지어 둘 이상 모여 선으로 성장하고 싶어 했다.


그렇게 점이 모여 선이 되면

더 길게 만들고 싶어 또 다른 점들을 포섭했다.


아주 긴 선이 되면 모두가 부러운 시선으로 보았다.

누군가의 선망이 되는 것은 어깨를 으쓱하게 해주는 것이니까. 그렇게 점들은 무리 지어 다니며 선이 되고 그 선은 더 욕심이 생겨 또 다른 선들과 결합하였다.


욕심이 욕망이 되자 욕망이 더 권위 있는 면을 탄생시켰다. 면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몸집이 커졌다. 더 넓어지고 묵직해졌다. 면이 나타난 후부터 선들이 생겨나도 금세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곤 했다.


면은 세상에 자기밖에 없길 바라며 모든 선을 흡수하고 큰 몸으로 햇빛을 가려 어둠을 가져왔다. 세상을 독점하기 시작한 면은 희망이자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모든 점들과 선들은 자신 밖에 모르는 면을 두려워하며 아부하길 시작했다. 그의 편이 되어 그에게 속하는 것만이 세상에서 가장 최고라고 여겼다. 그럴수록 점들은 더 하찮고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 선들의 밑에서 굽신거리며 일을 하고 선의 일부분이라도 좋으니 면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어 했다.


겨우 선이 된 점들은 점점 커지는 면의 한 줄을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은 점들을 갈취하고 협박했다. 면은 선이 아니면 자신의 몸의 일부가 되는 것을 한치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게 강압적인 환경 속에서 흰 세상은 점점 검게 물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면 속 한 점이 더 이상 못하겠다며 툭 튀어나왔다. 나오기 전까지 했던 숱한 고민과 무거운 걱정이 무색하게도 점은 자유로운 해방감을 느꼈고 어제와 다르게 즐거웠다. 그렇게 다른 점들의 무리 속에 들어가 선이 되길 거부하고 면이 되기를 혐오했다. 점들 사이에서 뛰쳐나온 점은 영웅이 되었다. 면은 아주 무시무시하고 극악무도하여 자신은 더 이상 면이 되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뛰쳐나온 점을 신뢰하고 응원하는 점들이 점점 늘어났다.


반면 거대한 면은 다른 점과 선들이 볼 수도 없고 잘 보이지도 않는 그 자그마한 빈자리에 집착했다.


‘메워야 해. 비워두면 안 돼.‘ 이 생각만을 반복하여 선을 찾기보단 점을 찾으려 들었다. 자신은 그 빈자리를 메우지 않으면 면이 될 수 없기에.


그래서 이제는 면 마을이 된 그곳에 공지를 내렸다. 그 작디작은 비어진 공백을 메워줄 점을 찾는다고. 하지만 점들 사이에는 그 공지를 무시하며 소문이 돌았다. ‘이제 면은 더 이상 면이 아닌가 봐’ ‘공백이 생겼데’ 그렇게 그 소문은 면 마을 전체에 퍼졌다.


선들도 이젠 면이 되길 거부했다. 내가 열심히 선이 되었는데 거대한 면의 한 줄이 되면 뭐 해. 이제 그는 더 이상 면이 아닌데. 그렇게 거부당했던 선들은 자신들끼리 무리 지어 다니며 또 다른 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면은 더 난폭해졌고 사나워졌다. 면의 내부에서는 점이 뛰쳐나간 그 주변부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면이 아닌 면에 속하기보단,

이 난폭함을 감당하기보단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면 속 선들은 선이 되고 선속 점들은 그냥 점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면이 아닌 거대한 면도 점점 작아져갔다. 힘이 없어진 면은 그렇게 처량하게 사라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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