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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기는 중국 소주

바퀴벌레 등장

by 유니스K

첫날부터 바퀴벌레 약을 달라고 해서 곳곳에 놓았다. 바퀴벌레가 나왔다는 경험담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바퀴벌레를 만날 거라는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다. 혹시 있더라도 그냥 이 약을 먹고 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해주길 바랬다.


첫 번째 바퀴벌레는 새벽 2시, 화장실 변기 뚜껑을 열자 내가 늘 엉덩이를 대고 앉던 그 변기 시트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내가 모르고 다음날 거기에 앉지 않았다는 것에 순간적으로 감사하며 조용히 샤워기를 집어 들어 변기 속으로 보내버렸다. 소독제와 비누로 변기를 씻으며 앞으로 여기서 편하게 앉아 볼일 보긴 틀렸구나 하는 생각 했다.


두 번째 바퀴벌레는 이미 생을 마감한 채 만났는데 약이나 간식, 책들을 넣어둔 선반에 있었다. 아이가 보 놀랄까 봐 조용히 그놈을 처리했다. 물론 소독도 빼먹지 않았지.


세 번째는 제법 큰 놈이라서 보자마자 깜짝 놀랐지만 숨을 참으며 빠른 속도로 처리했다. 약이 곳곳에 있어서였는지 죽은 채 발견되어 아이 모르게 잘 처리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완전히 이 사건들을 덮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적어도 겁 많은 딸아이에게서 바퀴벌레 트라우마를 막아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뿌듯하기까지 했는데.....


언젠가 격리 중에 국에 있는 아이 친구 엄마와 휴대폰으로 문자를 주고받다가 바퀴벌레를 세 마리나 발견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결국은 돌고 돌아 나중엔 아이 귀에도 들어가고 말았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진정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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