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다시 학교를 가기 위해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아이는 검사를 받으러 간다고 투덜대더니만 검사장 근처에 있던 놀이터를 보는 순간 빨리 검사받고 놀이터에 가자며 금세 신이 났다.
오전 온라인 수업을 모두 땡땡이치고 갑작스레 다가온 더위에 겉옷도 다 벗어던지고 아이들은 놀이터를 뛰어다녔다. 방금 전까지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줄을 서고 코로나 검사를 받은 8살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얼굴이 벌게지도록 뛰어노는 이 아이들이 같은 아이들이라는 것이 새삼 마음 아팠다.
그렇게 4교시나 되는 오전 수업을 몽땅 빼먹고 집에 와서 점심에 간식까지 먹고서야 나머지 오후 수업을 마쳤다. 주말에는 혹시라도 학교 가는데 지장이 생길까 봐 밖에 나가 외식 한 번을 못하고 아파트 단지만 뺑뺑 돌며 시간을 보냈다. 일요일 저녁엔 가방도 싸놓고 좋아하는 간식을 챙겼다. 학교 갈 때 입을 옷도 미리 다 챙겨놓고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난다며 신신당부하고 아이를 재웠다.
그리고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월요일 아침, 부지런히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며 휴대폰을 봤는데 학년 채팅방, 반 채팅방, 친한 엄마들 채팅방이 또 난리가 나 있었다. 새벽 5시 갑작스럽게 소주 전 지역의 모든 학교 등교 중지 명령이 내려졌고 설레는 마음으로 웬일인지 깨우지도 않았는데 아침 일찍 일어난 아이는 소식을 듣자마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즉시 온라인 수업으로 수업이 진행된다는 학교의 공지사항을 듣고는 아이는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속상해했다. 거지 같은 상황이라도 속으로 욕 한번 대차게 하거나 미쳤구만! 하고 한마디 질러버리고 말기엔 아이들은 아직 마음이 너무 여렸다.
짜증 짜증을 내며 온라인 수업을 들어가 보니 선생님들도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아이들도 자기는 침대에 엎드려서 엉엉 울었다느니, 화가 났다느니 저마다 자기의 감정을 토로했다.
온라인 수업이 길어지며 아이의 스트레스도 날로 심해졌다. 나의 스트레스 역시 극에 달했다. 우리는 조금 덜 참여해도 되는 수업은 적당히 땡땡이도 치고, 자체 쉬는 시간도 만들어 간식도 틈틈이 먹으며 나름대로의 요령을 만들어 갔다.
소주 전역에서도 이번에 발생한 확진자는 내가 사는 지역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바꿔 말하자면 나와 생활권이 겹쳤기 때문에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또다시 단지 내 핵산 검사를 시작했다. 그것도 매일.
이제 너무 많이 자주 해서 느낌도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검사를 하러 나가는 건 귀찮기도 걱정되기도 하는 일이다. 아이들 역시 그랬다. 하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핑계를 무기 삼아 빠지고 싶은 수업을 정해 그 수업 시간에 검사를 하러 나갔다. 나름대로 이 상활에서의 즐거움을 찾기 시작했다. 때로는 동네 친구들과 시간을 맞춰 검사를 하러 나가 놀이터에서 만나기도 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 바로 옆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있는 아이러니한 풍경도 이제 익숙해졌다.
누구나, 선생님들도 검사는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수업 전에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놓거나 수업에 들어와서 과제를 주고 '나 이제 검사하러 나가, 과제하고 있어~.' 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매일 일어났다.
선생님의 코로나 검사로 인한 수업 불참 안내 메세지
비가 오면, 혹은 날이 추우면 단지 내 한국인들의 단체 채팅방엔 '비가 오니 검사를 할 때 우산을 챙기세요.', '날씨가 추우니 따뜻하게 입으세요.' 등의 배려들이 오갔다. 학생들이나 자영업자들이 자원봉사를 하며 검사 진행을 돕기도 했는데 그들에 대한 감사 인사들도 잊지 않았다.
비오는 날의 검사(소주일보)
외국에서 들어와서 자가격리를 하는 집이거나 나처럼 밀접접촉자, 혹은 위험 지역 방문자로 분류되어 자가격리를 하는 경우에는 집 앞에 외출 방지를 위해 센서가 달리는데 이웃집의 센서가 불안해 몇 동 몇 호는 왜 센서가 달린 거냐. 한국인이 사는 집이냐. 하는 질문이 올라오기도 했다. 여러 가지 비상식적인 이유로도 격리가 되는 사람들도 많았고 본인이나 지인들이 그걸 겪었기 때문에 그런 글들엔 친절하지만 뼈가 있는 답변이 달렸다.
우리는 이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때로는 안 되는 중국어로 따지기도 하고, 바뀔 수 없는 현실에 화도 낸다. 하지만 결국은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곳에 온 것도 나의 선택이었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사는 것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누렸던 당연하던 일상은 많이 잊혀졌다. 아니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으니까.
오늘도 소중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와 아침을 먹고 오전 온라인 수업을 하다가 아이가 땡땡이치고 싶다는 시간을 골라 코로나 검사를 하러 나갔다. 우산과 장화를 챙기고 비를 맞아 더 생기가 넘치는 봄 꽃들을 구경하며 찰박찰박 걸으며 단지를 한 바퀴 돌고 들어왔다. 수업이 끝날 때쯤 동네 친구들을 몇 불러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놀고,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그냥 하루하루 지나는 이야기를 하고 친구들이 간 뒤엔 목살을 구워 아이와 저녁을 먹었다.
남편이 비록 우시에서 아직도 격리 중에 있지만, 선제적인 격리이므로 걱정할 일은 아니다. 나와 아이는 집에 안전하고 건강히 있으니 오늘 하루도 잘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