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음조 중 '에로스의 종말'을 읽고
'생각의 음조' 두 번째는 포르투에서 강연한 '에로스의 종말'이다.
몇달 전, 한병철 작가의 '투명사회'를 읽었는데 이 강연은 그 내용과도 맥이 닿아있다.
물론 '피로사회'의 내용도 일부 포함되어 있는 거 같다.
라이프치히에서 강연한 '생각의 음조'와는 달리 이 강연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 시대를 조망하는 '한병철' 이미지 그대로였다.
'투명사회'를 읽을 당시만 해도, 난 우리 사회가 처한 현재를 정확히 진단하고 있는 저자의 통찰력에 크게 감동했다.
그런데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12월 14일 대통령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까지 우리 눈앞에 벌어진 여러 현상들은 '에로스의 종말'이 아니라 모든 '생명'과 '감각'이 뜨겁게 움트고 있음을 알게 했다.
10대, 20대 세대들은 경제적으로 크게 부상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기성세대가 겪은 정도의 '가난'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치열한 경쟁 구도속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타자의 소멸이나 부재를 가속화시키는, 그래서 점점 개인화될 수 밖에 없었던 디지털네이티브세대이다.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들은 이들을 향해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행동해라,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틀렸다. 나약한 생각이다. 비참한 시대를 겪지 않아서 그렇다. 복에 겨운 소리다." 로 시끄럽게 외쳐대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진심어린 조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시끄러운 소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정국에서 보여준 10~30대의 학생, 청년들은 그 누구보다 강한 에너지를 지녔고, 타자를 어루만지는 따뜻한 치유의 손으로 서로를 응원했다.
작가는 언어가 정보 전달 수단으로 축소되는 곳에서는 타자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약 2주동안 전국 곳곳의 연단에 선 학생, 청년들은 자기만의 '목소리'를 냈다. '언어'라는 매개체를 활용한 그 '목소리'는 호소력이 있었다.
단순히 정보 전달 수단으로서의 '언어'가 아닌 개인의 고유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는 여러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 '목소리'에 담긴 진실된 외침에 수많은 인파가 박수로, 환호성으로, 감탄으로 호응했다.
난, 지난 2주간, 학생들 및 청년들의 다양한 활약을 마주하면서 흥분했고, 감동했고, 또 미안했다. 이들의 에너지는 결코 소진되지 않을 것이고, 이 에너지가 우리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이끄는 원동력이 될 거 같다는 설렘과 기대를 갖게 되었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정보'로 사람들은 모였다. 정보의 실체를 본능적으로 파악한 사람들은 급히 움직였다. 한강 작가가 말한 것처럼 과거가 현재를 도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를 철저히 개인화시켰던 스마트폰은 부재하는 것만 같았던, 소멸하는 것만 같았던 타자를 인식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어 역설적으로 '우리'라는 공동체를 탄생시켰다.
선물은 상대방을 향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 '선물'이 향하는 곳이 한 사람이 아니라 특정한 무리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그 선물은 받은 사람 뿐 아니라 받지 못한 이에게도 마치 자신이 받은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드는 신비함도 갖추고 있다.
12.3 비상계엄령은 서로 다른 곳에서, 각기 다른 목적으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을 연대하게했고, 그 연대속에서 강한 '우리'를 경험케했다. 그래서 특정한 무리는 나 자신을 포함하는 '우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타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타자를 향한 열망, 뜨거운 생명력과 감각, 즉 에로스는 사라지지 않은 거 같다.
디지털 매체의 빠른 진화 속도, 거기서 비롯된 개인화, 대상화, 전시화는 에로스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 보였으나, 최근 2주간의 경험을 통해 완전한 소멸은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다.
물론,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정국이 안정화되면 특별한 목적으로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진 이 공동체는 사라지겠지만 그 때 느꼈던 뜨거운 열망과 에너지는 지속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