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야 한다. 모두를 위해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by 낭만솔샘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비가 올 것 같아"로 시작된다.

그리고 '작별하지 않는다'의 첫 문장은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다.

두 권의 책 모두 우리 사회의 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는만큼 첫 문장에 나오는 '비', '눈'이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눈, 통나무, 우듬지, 바다, 파도, 바람, 뼈, 피, 촛불, 새, 깃털'......

이 책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첫 시작에서 '화자'인 경하가 꿈에서 본 게 성근 눈인데, 병실의 커다란 창 밖으로 성근 눈발이 내리는 것을 친구 인선과 함께 보고 있는 장면이 영화 속 장면처럼 겹쳐져 보였다.

마치 꿈에서 본 것이 현실에서 재현될 것을 알리는 것처럼....


인선이 키우고 있는 앵무새 '아마'를 살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경하는 인선의 제주집으로 향한다. 날이 밝는대로 천천히가 아니라 오늘 바로 당장 제주집에 도착해야 새가 살 수 있다며 간절하게 부탁했다.


경하가 제주에 간 날, 그곳은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쳤다.

한밤중도 아닌데 사방은 어둠으로 짙어졌고 세찬 바람과 함께 매섭게 내리는 눈은 인선과의 약속을 지키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도 경하는 모든 감각을 깨워 인적이 드문 제주 산간 지역, 인선의 집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나뭇가지에 긁혀 피가 나고 눈 위에 미끄러져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된 채 그 어려운 길찾기에 성공했지만, 인선이 간절히 부탁한 새, '아마'의 생명은 살리지 못했다. 경하가 도착했을 때 '아마'는 죽어있었다.


곧 죽을만큼 힘들었을 경하는 잠이 든다.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는 경하가 꿈을 꾸고 있는 장면인지, 죽음과 가까운 경계선에서 말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경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인선과 함께 하기로 한 프로젝트의 내용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병원에 있어야할 인선이 지금 인선의 제주 집에서 경하와 함께 그 일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인선이 과거에 촬영한 영상속 인터뷰와 현재를 끊임없이 오가면서.


나무위키의 내용에 따르면, 1948년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제주 중산간 지역 전체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실시했다. 그 결과 중산간 마을의 95% 이상이 소각되었고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6.25전쟁 기간에도 많은 주민들이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2019년 12월까지 4.3위원회에 심의 결정된 민간인 희생자는 총 14,442명 이다. 특히 초토화 작전시기에 전체 희생자의 67.2%가 발생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며칠 전 '페르시아 수업' 영화에서 본 장면들이 떠올랐다. 차에 태운 유대인을 내리게 한 후 일렬로 세워서 총살하는 장면, 잔인하리 만큼 가혹한 노역, 유대인을 인격체가 아닌 하나의 사물인양 그들을 죽이고 폭행하는 것을 가벼이 생각하는 태도 등.


1950년 전쟁 전에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제주 4.3 사건에 대해 자료를 조사하며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한강 작가가 얼마나 아파했는지는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작가의 말에서도 이 책의 첫 두페이를 쓰고 4년이 흐른 후에야 이어 쓰기 시작했다고 하니 책을 완성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것인지 조금 짐작할 수 있다.


인선의 어머니는 한 순간에 사라진 가족을 찾는 일, 그 진상을 밝히는 일에 인생 전체의 에너지를 쏟았다. 인선도 경하도 그 일을 추적하면서 20대 젊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

4.3사건의 희생자 유가족,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유가족, 비교적 최근의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이태원참사 희생자 유가족. 그분들 역시 소설속 인선의 어머니처럼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한 채,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계실 것이다.

그 많은 눈물과 아픔을 어찌할까? 그분들 삶의 고통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아리도록 아프고 슬픈, 고통으로 짓이겨진 그분들의 삶을, 책으로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한강 작가는 말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을거라고. 그리고 과거의 피흘림이 현재를 살린다고. 지금의 상황을 보면 분명 그러한 거 같다. 그것이 이 책의 제목처럼 아픈 역사와 결코 '작별하지 않아야 할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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