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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Dec 11. 2021

올여름 최고의 먹자 캠핑

몬태나 리빙스턴에서

Cooking and eating food outdoors makes it taste infinitely better than the same meal prepared and consumed indoors. -Fennel Hudson-


올여름, 코로나가 아직도 기세를 떨치고 있었지만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친 후 우리 가족은 조금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집을 벗어나 가족과 함께 작은 여행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고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분, 지인들도 만나 뵙고 싶었다. 여름 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 중에서 가장 맛있었고 즐거웠던 기억 중 하나는 원 없이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캠핑을 했던 시간이었다.


몬태나에서 함께 한 두 번의 캠핑은 모두 허 박사님 덕분이었다. 몬태나에서 가장 캠핑을 즐기시는 분, 가장 캠핑을 잘 아시는 분. 우리 가족이 몬태나로 처음 이사 왔을 때 첫 날밤을 재워주신 분이시기도 하다. 매년 여름이 되기 전 일찌감치 주말마다 캠프 사이트를 예약해 놓으시고 여름 내내 캠핑을 다니시기에 몬태나의 캠핑에 관해서는 그야말로 전문가이시다.


이번 여름에도 허 박사님께서는 어김없이 주말마다 캠핑장 예약을 다 해 놓으셨다. 언제든 캠핑장에 함께 할 수 있다고 해 주셨기에 올여름 우리 가족은 몬태나 리빙스턴에 있는 곳 두 곳의 캠핑장에 동참할 수 있었다. 리빙스턴은 몬태나 보즈만의 동쪽에 있는 인구 7,500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다. 보즈만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동네로 지리적으로 옐로스톤 바로 위에 위치해 있다. 리빙스턴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이면 옐로스톤 북쪽 입구에 다다를 수 있기에 보즈만과 더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라 할 수 있다.


LIVINGSTON / PARADISE VALLEY KOA HOLIDAY


리빙스턴에서 가진 첫 번째 캠핑은 KOA에서 이루어졌다. 이번 리빙스턴 KOA는 두 번째 방문이었다. 한 번 가본 곳이어서 모든 것이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KOA는 Kampgrounds of America의 약자로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500개 이상의 지점을 가진 세계에서 가장 큰 사설 캠핑장 시스템을 말한다. KOA의 가장 큰 장점은 편리하고 안전한 시설에 있다. 수세식 화장실과 개수대, 샤워실이 잘 갖춰져 있고 식수, 전기 충전, 와이파이도 캠프 사이트에서 누릴 수 있다. 단점이라면 약간 더 비싸다는 점, 캠핑장 내 시설들이 가까이에 붙어있다는 점. 따라서 자연 속 캠핑을 원한다면 비추하나 편리한 캠핑을 하고자 한다면 강추한다.



캠핑 갈 때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어딜 가든 밥 잘 먹고 먹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이기에 가족과 함께 놀러 갈 때면 나는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잘 챙기는 편이다. 하지만 캠핑장에서만큼은 허 박사님의 아이디어와 맛을 따라가기 힘들다. 왜냐하면 허 박사님의 캠핑에서 가장 특화된 것은 바로 요리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요리는 소시지와 두부 김치! 소시지의 종류브랏 부어스트(Bratwurst)였다. 독일이 원산지인 이 소시지는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소시지이다. 주로 간 돼지고기에 각종 양념을 더하고 천연 케이싱(소시지 껍질)에 채워서 만들어진다. 안 익힌 생 브랏 푹 끓여서 익혀 먹거나 살짝 끓인 후 그릴에 구워서 먹는다. 끓일 때 물을 사용해도 되지만 허 박사님의 선택은 맥주였다. 맥주로 브랏을 끓일 때 뚜껑을 열고 삶으면 알코올은 모두 날아가고 육질이 더욱 부드러워진다. 그다음 이어진 요리는 두부 김치. 솥뚜껑에 노릇노릇 구운 두부와 신김치와의 조화는 말해서 뭐하리오.



하룻밤을 자고 났더니 더 엄청난 요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캠핑장에서 잔치국수 안 먹어 봤죠? 어때요?" "너무 좋죠!" 근데 잔치국수를 어떻게... 드시냐는 말씀을 드리려는 찰나, 우리에게 보여주신 건 캡슐이 들어 있는 양념통이었다. 멸치 육수의 맛이 이 한 알에 들어있다며 물에 퐁당. 육수 티백은 봤어도 알약처럼 생긴 건 처음 보았으니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국물 맛을 보니 진짜 진한 멸치 육수 맛 그대로! 이럴 수가.


국물에 건조 동결된 파와 마늘을 넣으니 금세 맛있는 육수가 만들어졌다. 국수를 잘 삶은 후 꺼내신 것은 둥글넓적한 국수 그릇이었다. 국수와 국물을 잘 담고 신 김치를 올려 먹으니 입 안에서 잔치라도 난 듯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캠핑장에서 아침에 라면은 먹어봤지만 잔치국수는 처음이었다. 자극적이지 않은 깊은 맛, 호로록~ 잘 넘어가는 따끈한 국수 한 그릇은 약간 쌀쌀한 몬태나의 여름날 아침에 참 잘 어울렸다.  



Snowbank Campground


그다음 주말에 함께 한 곳은 리빙스턴 깊은 산자락에 자리 잡은 스노뱅크 캠핑장이었다. 이곳은 지난번 묵었던 KOA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캠프 사이트도 띄엄띄엄 떨어져 있고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 곳, 저 쪽 옆에서 시냇물만 졸졸 흐르는 그야말로 자연과 함께 하는 캠핑장이었다. 물론 수세식 화장실도 샤워시설도 없고 와이파이가 될 리도 만무했다. 왠지 산속에서 곰이 내려와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분위기 때문에 아주 가끔 으스스하기도 했다. 그래도 진정한 캠핑은 이런 장소여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KOA가 너무 좋다는 생각은 이곳에 오자마자 싹 사라져 버렸다.


오늘의 캠핑에서 내가 야심 차게 준비한 것은 김밥. 단무지는 없었지만 계란, 당근, 오이, 햄 등 모든 재료를 정성껏 넣어 캠핑장에서 먹을 점심으로 준비했다. 김밥도 물론 맛있었지만 허 박사님께서 준비한 소고기의 자태는 너무나도 영롱했다. 캠핑할 때 소고기 한 번쯤 구워줘야 한다며 무쇠 프라이팬에 지글지글 고기를 굽기 시작하셨다. 고기 위로 마늘과 꽈리고추까지 넣으니 쌈 없이도 전혀 느끼하지 않은 소고기 구이가 완성됐다.



캠핑장 주변을 산책하고 시냇물에 발 담그며 우리들은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돌아온 간식 시간! 나는 인터넷으로 구매한 여러 가지 한국 과자를 골고루 준비해서 왔지만 역시 허 박사님께서 만들어 주신 즉석 떡볶이의 맵고 달달한 맛을 따라잡을 순 없었다. 준비해 오신 어묵까지 넣으니 한국에서 먹어봤던 떡볶이 맛이 그대로 연출되었다. 간식을 맛있게 먹고 나니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몬태나의 여름밤은 다른 지역보다 늦게 찾아오지만 깊은 산속에서는 예외였다. 밤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고 금방 어둑어둑해졌다.


캠핑장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캠프파이어! 지난주 리빙스턴 KOA에서는 주변 산불로 인해 공기의 질이 안 좋아 캠프파이어가 일절 금지되었었다. 다행히 이번 스노뱅크 캠핑장에서는 불을 지피는 것이 가능한 것으로 바뀌었다. 똘똘이가 가장 좋아하는 캠핑 활동은 불장난. 날씬하고 긴 막대기를 어디선가 찾아와서는 불 마스터로 변신하여 한참 동안 불을 돌보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불장난을 하다 보면 출출해지기 마련, 이럴 때 가장 생각나는 음식은? 역시 라면! 너구리 3마리를 푸짐하게 끓여서 김치와 먹으니 그저 완벽했다.



텐트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밤에 먹은 라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다시 배꼽시계가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침에 먹을 음식으로 빵을 준비했지만 허 박사님의 선택은 누룽지 밥과 우거지 찌개. 역시 빵은 밥을 이길 수 없었다. 쌀쌀한 아침에는 국물이라며 건조 누룽지 밥과 양념 큐브로 되어 있는 찌개 재료를 꺼내셨다. 물에 넣고 끓이니 맛있는 밥과 찌개가 완성되었다.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 멸치육수 캡슐에 이은 신문물이었다.


따뜻하게 아침을 먹고 나서 추천해 주신 곳은 스노뱅크 캠핑장에서 남쪽으로 45분 떨어져 있는 옐로스톤 온천장(Yellowstone Hot Springs). 이 온천장은 2019년 3월 새롭게 문을 연 곳으로 몬태나 리빙스턴과 옐로스톤 국립공원 북쪽 입구 사이에 위치해 있다. 여기에서 30분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면 옐로스톤 북쪽 입구에 도착을 할 수 있다. 새로 생긴 곳이라 그런지 시설도 좋고 물도 매우 깨끗했다. 온천장 바로 앞에는 커다란 산이 온천하는 사람들을 맞이해 주었고 냉탕, 온탕, 열탕이 잘 갖춰져 있어서 시간을 보내기도 좋았다.


허 박사님께서는 한 시간 정도 온천하면 충분하다며 먼저 캠핑장으로 가겠다 하셨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한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져 두어 시간을 보낸 후에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 다시 스노뱅크로 도착을 하니 허 박사님께서는 벌써 저녁 준비를 거의 마치신 상태였다. 저녁 메뉴는 주꾸미 볶음과 토마토 스파게티! 동서양의 만남과도 같은 식단이었다. 스파게티는 매운 것을 아직 잘 먹지 못하는 똘똘이를 위한 메뉴였다. 그 맛은? 예상대로 엄지 척!



올여름, 몬태나 리빙스턴에서 허 박사님과 함께 한 두 번의 캠핑은 그야말로 최고의 먹자 캠핑이었다. 자연과 함께, 좋은 분과 함께, 맛있는 음식과 함께, 이 세 가지가 모두 함께한 캠핑. 이 보다 더 좋은 캠핑이 있을 수 있을까~ 허 박사님의 맛있고 따뜻한 초대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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