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국어반 수업 그리고 코로나

2020년 3월 13일

by Olive

Things end but memories last forever.


열두 번째 한국어반 수업은 2020년 3월 13일에 있었다. 1월과 2월 내내 미국 뉴스에서는 연일 세계 곳곳, 특히 아시아를 중심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몬태나까지는 코로나가 절대 오지 않을 것처럼 3월 13일 수업 직전까지도 늘 그랬듯 평화로웠다. 모든 것이 평소와 똑같았고 마스크를 쓰는 사람 한 명 없이 다들 정상적으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번 한국어반 수업의 내용은 뮤직 비디오 만들기! 지난 시간 배운 아기 상어 노래를 복습해 보고 초등학생들 수준에 맞으면서도 가사 내용을 익힐 수 있는 쉬운 우리나라 동요를 하나 배워보기로 했다. 노래를 배운 후에는 노래 각 장면을 담은 그림을 그리고 색칠한 후 아이들의 그림을 노래와 함께 모두 이어 붙여 뮤직 비디오를 만드는 내용으로 수업을 계획했다.


우리나라 동요 중에서 좋아하는 동요, 가르치고 싶은 동요는 너무 많았으나 미국 어린이들에게는 가사 내용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여러 가지를 찾아보던 중 '다섯 글자 예쁜 말'을 듣는 순간 '이거다!' 느낌이 왔다. 노랫말의 의미도 좋고 간단하면서 따라 부르기도 쉬운 동요라서 우리 한국어반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면 알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노래의 핵심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다섯 글자로 된 여섯 문장이 마음에 쏙 들었다.


한국어반 수업을 열 번 넘게 진행을 했지만 일주일에 한 시간만 하는 수업이었기 때문에 한글을 읽는 것도 어려워하는 어린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동요 가사를 잘 익힐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고 싶어 준비한 것이 가사의 내용을 한국어, 로마자, 영어로 담은 유인물이었다.


유인물에는 한국어 가사 아래에 로마자 표기를 달아주어 읽는 데 도움을 주었고 이해를 돕고자 영어 의미도 함께 넣어 주었다. 처음에는 가사 없이 전체 동요를 들어보고, 두 번째는 가사를 보면서 들어 보고 세 번째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따라 불러 보았다. 그리고 나선 노래 중간중간을 끊어서 천천히 같이 불러보며 가사의 발음과 내용을 충분히 익힐 수 있도록 했다.


다섯 글자 예쁜 말 노래는 이미 유튜브에 한국의 여러 학교에서 만들어 놓은 뮤직비디오, 율동 비디오가 많이 올라와 있어 도움이 되었다. 한국의 초등학생들이 만든 뮤직비디오를 하나 골라 예시로 보여 주며 학생들에게 뮤직비디오의 방법과 구성에 대해 설명을 해 주니 아이들 모두 금세 이해를 했다. "우리도 할 수 있을까?" 물으니 "네, 선생님!"이라고 대답을 하는 아이들. 굵고 짧은 대답이었지만 의욕이 느껴졌다.


미리 준비한 뮤직비디오 학습지에는 학생 수에 맞게 노래를 분절하여 번호를 매겨 주었다. 학습지 하단에는 한글 가사, 로마자 표기를 아래에 실어 그림을 그릴 때 노래 가사도 익히면서 그 내용에 맞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했다. 각자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교실 배경음악으로 다섯 글자 예쁜 말 노래를 은은하게 틀어 놓아서 계속 노래를 익히며 활동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5분 정도가 지나자 조용히 다들 그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처음 들은 한국의 동요가 낯설 법도 했지만 아이들은 어느새 노래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몇몇 아이들은 중간중간 콧노래로 따라 부르며 색칠을 하기도 했다. 손으로는 그림을, 귀로는 음악을, 손과 귀가 바빠지니 교실 분위기는 아주 차분해졌고 다들 그림 그리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뮤직비디오용 그림을 완성한 사람은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서 그린 그림을 얼굴 아래에 양 손으로 들고 사진을 찍었다. 배시시 수줍게 웃는 아이, 치즈~하며 활짝 웃는 아이, 장난꾸러기 표정을 짓는 아이, 빙그레 미소만 짓는 아이, 표정은 각양각색이었지만 모두 자신이 완성한 작품을 뿌듯해하는 표정인 것만은 확실했다. 동요를 익히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그렇게 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다음 주에 완성된 뮤직비디오를 보여 줄 것을 약속하고 수업을 마쳤다.


수업 후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는데 심상치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코로나가 몬태나에도 이미 퍼졌을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올 게 왔구나.' 싶다가도 '설마? 오늘 수업 때까지만 해도 너무 평온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튿날 토요일 아침 뉴스에는 코로나가 몬태나에도 이미 퍼졌다는 소식이 보도되기 시작했고 마음은 이내 불안해졌다. 일단 생필품과 식료품을 사러 가기로 했다. 동네 코스트코에 도착을 하니 긴 줄이 우리를 맞았고 가게 안 진열장 이곳저곳은 빠르게 비어갔다.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이후 코로나는 몬태나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고 그다음 주부터 정규 학교의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한국어반 수업은 무기한 연기에서 잠정 중단, 결국 기약 없는 중단으로 바뀌었다. 완성한 뮤직비디오를 꼭 다 같이 보고 싶었는데, 남은 3번의 수업 동안 연꽃 부채도 만들고, 호랑이 민화 액자도 꾸미고 김밥도 같이 만들어 먹을 예정이었는데... 꾹꾹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몬태나 보즈만에서 최초로 공립 초등학교 한국어반 수업을 개설하여 그동안 열두 번의 대면 수업을 함께 했다. 서른 명 가까이 되는 미국 어린이들에게 한국을 소개하고 한국어를 가르쳐 주며 교사로서 매 시간이 뿌듯했다. 수업을 함께 해 주신 보조 선생님들이 있어서 고마웠고 힘이 되었다. 한국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재미있고 멋진 추억을 많이 남겼다. 그것으로 큰 만족이다. 완성된 뮤직비디오를 교실에서 함께 감상할 순 없었지만 소셜미디어에 탑재하여 학교 사람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으니 그것 또한 만족이다.


우리 한국어반의 수업은 모두 끝이 났지만 함께 한 추억은 영원히 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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