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남편과 20년 지기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

by Olive

My best friend is my husband.


나와 남편은 오랜 친구이자 베스트 프렌드이다. 시간을 거슬러가 보니 어느덧 올해로 꼬박 20년이 되었다.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난 때는 바야흐로 2001년, 어느 대학교 강의실에서이다. 대학 시절, 나는 동아리 활동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교대 생활은 마치 고3 생활이 이어지기라도 하는 듯 시시때때로 바빴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 어려웠다. 몇 군데 가입을 해서 동아리 활동을 해 보긴 했지만 꾸준히 하지는 못했다.


선생님이 되고 나서 두 해가 지나고 나니 마음의 여유도 조금 생겼고 새로운 것을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본 것은 두 가지, 대학원 과정과 지역 동아리 활동이었다. 인터넷으로 몇 군데 동아리들을 검색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영어회화 동아리였다. 영어는 나의 숙원사업?! 마침 영어회화 동아리는 대학생, 대학원생, 직장인 상관없이 누구나 환영이었고, 인근의 종합대학교 강의실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에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영어회화 동아리의 이름은 GMP, 굿모닝 팝스의 약자였다. 사실 나는 GMP가 무슨 뜻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른 아침에 하는 굿모닝 팝스를 들은 적은 없었다. 지금은 아침잠이 줄었지만 20대의 나는 올빼미족에 가까웠기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고 영어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든 환영'이라는 문구가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2001년, 첫 만남


20년 전 토요일은 12시 반까지 근무를 했던 때였다. 어느 화창한 봄날 토요일, 학교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은 후 버스에 몸을 실었다. 정문에서 내린 후 오후 3시 모임 장소인 대학교 내 강의실로 한참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강의실은 정문에서부터 꽤 먼 거리였다. 5분이면 갈 줄 알았는데 10분 이상 걸렸고 결국 약간 지각을 했다. 강의실 문을 여니 열댓 명 사람들이 나를 일제히 쳐다보며, "Welcome! Come in!" 하고 반겨줬다.


그날, 새로 온 신입은 나 말고 한 명이 더 있었다.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자고 했고 새로 온 사람부터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새로 온 한 명은 나보다 몇 살 위인 언니였는데 뉴욕에서 몇 년 간 생활을 한 경험이 있었다. 자기소개는 영어든, 한국어든 상관없다고 해서 안심?을 하고 있었는데, 그 언니가 갑자기 먼저 할게요~ 하더니 영어로 술술~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내 눈동자는 당황을 했고,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내 차례가 되었다. 앞으로 나가는 순간까지도 고민을 했다. '영어로 도저히 못하겠다.' 짧은 사이 결론을 내리고,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오른손을 살짝 들고, "저기요! 한국말로 해도 되죠?"라고 첫마디를 꺼냈다. 근데 영어를 기대했다가 마치 식당에라도 온 사람처럼 저기요! 하며 자신감 넘치는 한국어로 말을 시작하는 내 모습이 웃겼는지, 갑자기 분위기가 웃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러는 사이 몇 명이 "Sure!" "그럼요!" 대답을 해 주어서 나도 멋쩍은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젬피 정신


동아리 구성원들은 대학생과 대학원생들, 직장인들이 골고루 섞여있었다. 대부분 20대였고 30대도 몇 명 있었다. 여자보다는 남자의 비중이 많았고 그중 남편은 열심히 활동하는 멤버 중 한 사람이었다. 그 당시 나는 교직 3년 차, 한창 잘 나가는?! 20대 중반의 선생님이었고, 남편은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을 한 대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우리는 같은 학번, 동갑내기 친구였지만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던 나는 나와 동갑인 대학생 친구들보다 나이가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들은 토요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대학교 강의실로 모였다. 동아리의 정식 명칭은 GMP 모임이었지만 우리는 그냥 젬피로 불렀다. 돌아가며 영어 공부자료를 준비했고 때론 열띠게 토론하고 때론 실없는 농담과 유머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2~3시간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학교 바깥 먹자골목으로 향했다. 밥값이 저렴했던 3천 원 메뉴 식당은 우리들의 단골 식당이었다. 밥을 먹고 나면 또 약속이라도 한 듯 커피숍으로 향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호프집으로 가서 맥주 500cc에 뻥튀기 무료 안주를 함께 하기도 했다.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도 많았는지 밤 10~11시, 어떨 땐 자정이 다 돼서야 모임이 끝나곤 했다.


이듬해, 새롭게 회장과 총무를 뽑는 시기가 되었다. 매일 아침 굿모닝 팝스를 들으면서 공부하고 있었던 남편은 회장이 되었고, 공부보단 친목?을 중요시했던 나는 총무가 되었다. 동갑인 우리 둘은 친한 사이였지만 회장과 총무가 된 이후로는 남사친, 여사친으로 더 친하게 지냈다. 2002 월드컵 응원도 젬피 멤버들과 함께 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같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남편이 물었다.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해외 대학원 교환학생 과정에 지원해 보려고 하는데 잘 될까?" 나는 "야, 니가 안 되면 누가 돼! 도전해 봐. 꼭 될 거 같아!" 무슨 생각에서 인지 큰소리로 응원을 했고 남편은 다음 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남편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동안 나도 학교 일과 석사논문으로 바빠져 젬피 활동을 잘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삼 년이 지나고 남편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오랜만에 예전 젬피 멤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남편은 우리들에게 물었다. "석사 졸업을 했는데 계속 미국에서 박사 공부를 해야 할지,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지...", "야, 나도 박사과정 입학했어, 무조건 도전! 알지? 넌 잘 될 거야." 어찌하다 박사과정으로 입학해 있었던 나는 남편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젬피 멤버들 중에는 유학이나 어학연수, 대학원, 워킹 홀리데이, 창업, 댄스 등 여러 가지 도전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우리들은 이런 도전 정신을 젬피 정신이라고 불렀다.


2011년, 둘만의 만남


남편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중간중간 한국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우리 멤버들은 함께 모임을 가졌다. 2011년 초, 나는 드디어 대학원을 졸업했고 남편도 박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직장을 잡아서 귀국을 했다. 우리들은 여러 명이서 모임을 종종 가졌는데 언젠가 한번은 둘만 만나게 되었다. 삼십 대 중반이 된 우리들이었지만, 함께 한 십 년의 시간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옛날 회장 총무를 같이 했던 때의 이야기, 2002 월드컵 응원을 함께 했던 기억들 등등. 그동안 함께 한 추억들은 우리 둘을 계속 함께 만나도록 이끌었다.


만날 때마다 우리들의 마음은 이십 대 중반으로 되돌아가는 듯했다. 커피 한 잔, 맥주 한 컵 놓고 몇 시간씩 대화를 해도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게 점점 남사친과 여사친의 사이에서 남자 친구와 여자 친구 사이로 발전을 하게 되었다. 2011년 겨울에 프러포즈를 받은 나는 잘 통하는 나의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했다. 이듬해 봄 우리는 결혼을 했고 오랜 친구에서 남은 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부부의 인연이 되었다. 그리고 결혼한 지 일 년쯤 지났을 때 나와 남편을 반반씩 똑 닮은 아들, 똘똘이를 낳았다.


톰과 제리? 올리브와 뽀빠이!


우리 둘은 가끔 톰과 제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톰과 제리가 늘 같이 있으면서 장난을 치듯, 우리는 항상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서로 장난을 잘 치고 웃기도 잘한다. 남편은 겉으로 보기에 차분하고 조용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제리처럼 외향적이고 재빠르며 장난을 잘 친다. 깜짝 놀라게 하는 장난을 칠 때면 나는 왜 그리도 매번 놀라는지~ 이젠 안 놀랄 거야 하지만 매번 놀라고 재미있어 웃는다. 아주 활발하고 외향적일 것 같지만 내성적인 면이 있는 나는 달리기는 언제나 남편보다 느리며 남편의 순발력을 따라가기 힘들다. 마치 톰과 제리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톰과 제리보다는 올리브와 뽀빠이 같다고 말하고 싶다. 올리브는 나의 오랜 별명, 대학교 1학년 때 만화 주인공 뽀빠이 여자 친구 올리브를 닮았다고 해서 친구가 지어 준 별명이다. 지금까지도 브런치 닉네임으로 잘 쓰고 있다. 이십 대 중반부터 삼십 대 중반까지 그동안 '내 뽀빠이는 어디 있을까?' 십 년 동안이나 찾았는데 나는 등잔 밑이 어두웠다. 뽀빠이는 바로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현재의 남편이었다. 남편은 "도와줘, 뽀빠이!"하고 부르면 쌩 달려와서 도움을 주는 뽀빠이 캐릭터처럼 언제든 도움이 필요할 때 내게 도움을 주고 또 위안과 용기를 준다.


20년을 함께 한 우리 부부, 앞으로도 계속 올리브와 뽀빠이처럼 때론 톰과 제리처럼 서로 의지하며 유쾌하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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