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미국에 있지만 마음은 종종 한국에 있는 나에게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건 소소한 재미로 다가온다. 엊그제 MBC에서 ‘올해의 예능 프로그램상’을 수상한 ‘놀면 뭐하니?’도 그중에서 하나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자라오면서 '놀면 뭐하니?'라는 질문을 많이 들어봤다. 책 제목으로도 접했고, 노래 제목으로도 봤으며, 이제 방송 프로그램의 제목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뭐하니?'로 쓰이는 경우가 많고, '뭐 하니?'로 쓰인 경우는 거의 없다. 겨우 띄어쓰기 하나 차이지만 사실 이 둘은 띄어쓰기에 따라 큰 의미 차이가 있다. '놀면 뭐하니?'로 붙여 쓴다면 내가 그동안 느꼈던 '놀아서 뭐하게? 노느니 다른 것을 하는 게 어떻겠냐?'의 의미가 된다. 하지만 '놀면 뭐 하니?'로 띄어 쓴다면 '놀 때 무엇을 하느냐? 무엇을 하면서 노느냐?'의 의미가 된다. 따라서 이 둘의 의미 차이는 굉장히 크다고 할 수 있다.
뭐하다 대(對) 뭐 하다
1. '뭐하다'는 '어떤 일 따위에 이용하거나 목적으로 하다.'라는 뜻의 동사로, '그거 사서 뭐하게?/집에 있지 뭐하러 왔느냐?'와 같이 쓴다. 또한 형용사 '뭐하다'는 '언짢은 느낌을 알맞게 형용하기 어렵거나 그것을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 암시적으로 둘러서 쓰는 말'로 '나는 그 일이 조금 뭐해서 그만두었다./좀 뭐한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만.'과 같이 쓴다.
2. '뭐(를) 하다'의 구조로 쓰는 경우 '뭐 하다'와 같이 띄어서 쓴다.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경우에 '너 지금 뭐 하고 있어?/너 지금 뭐 하는 거야?'와 같이 '뭐 하다'를 쓴다.
출처: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
띄어쓰기를 고려하지 않고 '놀면 뭐하니?'라는 말을 듣는다면 나 또한 '놀지 말고 다른 거 하는 게 낫지 않겠어? 공부를 하든지...'라는 그다음 문장이 연상된다. 이런 느낌을 받는 사람은 비단 나뿐일까. 놀 바에는 다른 것을 하는 것이 낫다는 의미로 들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간 너무 바쁘게 살아왔기 때문일까? 어쨌든 책 제목, 노래 제목, 프로그램 제목에서도 모두 띄어쓰기 없이 '놀면 뭐하니?' 또는 '놀면 뭐해?'로 쓰인다는 것은 노는 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불혹의 나이가 되기까지 참으로 바쁜 삶을 살았다. 공부하든지, 일하든지 아니면 둘을 같이 하든지. 바쁜 삶은 노는 일도 바쁘게 놀아야 아깝지 않게 느끼도록 했다. 해외여행을 가도 빡빡한 일정을 짜서 되도록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도 많이 찍으려 했다. 느긋하게 편하게 놀기보다는 바쁘게 돌아다니며 논다는 느낌으로 임했다. 그동안 노는 것에 대한 나의 인식은 '놀면 뭐 하니?'보다는 '놀면 뭐하니?'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는 '놀면 뭐해? 놀아서 뭐하려고?'가 아닌 '놀면 뭐 해? 뭘 하면서 재미있게 놀아?'라는 생각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녀나 학생들에게 "놀면 뭐해? 그 시간에 공부를 하지."라고 말하기보다는 "놀면 뭐 해? 요즘 재미있는 거라도 있어?" 질문을 건네는 어른이 되려고 한다. 놀면 이런 거 저런 거 할 것이 엄청 많다고 말할 수 있고, 일하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놀 때처럼 재미있게, 놀이처럼 즐겁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과연 나는 요즘 무엇을 하면서 놀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니 요즘의 나는 놀 때 주로 3가지를 많이 하고 있다. 그리고 더 많이 하고자 한다.
오븐을 켠다.
미국에 와서 처음 사용해 본 가전제품으로는 세 가지가 있다. 식기세척기, 건조기, 오븐! 그중에서 가장 으뜸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오븐을 들고 싶다. 설거지와 빨래는 잠시 미룰 수 있다지만 밥을 먹는 것은 미루기가 매우 힘들기에 매일 요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요리를 할 때면 불 앞에서 냄비 또는 프라이팬을 놓고 하는 것이 익숙했는데 오븐을 알고 나서는 얼마나 많은 요리를 더 간편하고 쉽게 요리할 수 있는지 또한 알게 되었다.
많은 미국의 요리는 모든 것을 한 데 섞고 오븐 팬에 부은 후 오븐에서 구워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고기도 생선도 오븐으로 굽고, 야채도 오븐으로 구우며, 캐서롤, 파이, 빵 등 많은 요리를 오븐으로 만들어 낸다. 미국에서 오븐 사용을 몇 년째 해오다 보니 다양한 재료를 오븐으로 간편하게 구워서 먹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시간이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생길 땐 쿠키나 퀵 브레드를 구워낸다. 몸에 좋은 견과류와 건과일, 아몬드 가루, 설탕 대체제를 적절하게 넣으면 몸에 좋은 간식도 금방 만들어 낼 수 있다. 놀 때 오븐을 켜면 요리가 쉬워진다.
운동화를 신는다.
동네 체육관에 가족회원으로 등록한 이후부터 거의 매일 체육관에 가고 있다. 어느새 체육관은 우리 가족의 놀이터가 되었다. 달리기도 하고 축구도 하고 수영도 할 수 있는 곳. 다양한 그룹 클래스가 있어서 어느 운동이든 원하는 시간에 참여를 할 수가 있는데 운동을 싫어하는 나도 댄스 수업에는 흥미가 생겼다. 빵빵 신나게 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 보면 나도 모르게 흥이 난다. 같이 춤을 추는 사람들과 함께 리듬에 몸을 맡기다 보면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리곤 한다.
줌바 클래스에 자주 나가다 보니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 딱 2명뿐인 아시안 친구들은 모두 일본 친구들인데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와카와는 자주 연락할 정도로 친해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서로의 한국어와 일본어 공부를 도와주는 언어 교환 모임도 갖게 되었고 가족을 모두 초대해서 한국음식과 일본음식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와카를 통해 같은 댄스교실에 있는 미국 친구 캐씨도 소개를 받았다. 교회와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는 캐씨는 와카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계셨다. 내게도 개인적으로 영어 수업을 해 주실 수 있다고 하셔서 당연히 오케이! Sounds great! 대답을 했다. 춤을 추면서 놀다 보니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브런치에 글을 쓴다.
작년 2월 초에 시작한 브런치는 지금까지 약 11개월이 흘렀다. 언제까지 미국 생활이 이어질지 모르지만 미국에서 보낸 삶, 보내고 있는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놀 때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기록으로 남겼다. 그렇게 하나 둘 글이 쌓이다 보니 작년 동안 101개의 글을 썼고, 구독자 수는 300명이 넘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가끔 꿈같은 일들이 생기기도 했다.
그간 두 번의 원고 게재 수락 요청을 받았었고, 한 번의 출판 제의를 받았다. 출판은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는 생각에 고사를 했지만 제의 메일을 받았을 때의 설렘과 기쁨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작년 하반기에는 한국의 한 선생님께서 브런치를 통해 연락을 주신 덕분에 한국과 미국의 학교를 잇는 온라인 국제교류프로젝트도 수행할 수 있었다. 한국의 고등학교와 미국의 한글학교, 대학교가 함께 한 정말 멋진 프로젝트였다. 약 50명의 학생들과 선생님이 10월부터 12월까지 매주 함께 했다.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것들은 브런치가 연결해 준 엄청난 선물이었다. 놀 때 유튜브를 보기보다는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면서 소중한 일상의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내게 또 다른 만남과 인연을 선사해 주었다.
'놀면 뭐하니? 차라리 다른 걸 하지...' 보다는 '놀면 뭐 하니? 어떤 것을 할까?'라는 질문을 하며 살아간다면 무언가를 할 때 조금 더 여유를 가질 수 있고 부담도 줄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새해에도 계속 오븐을 켜고 놀고, 운동화 신고 놀고,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노는 재미있는 한 해를 만들어 가련다.
*** 어느덧 202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미국은 한국보다 반나절 이상 시차가 늦습니다. 한국은 벌써 1월 2일 오후가 되었지만 미국은 아직 1월 1일 밤입니다. 제 브런치에 찾아와 주시고 저의 소소한 일상을 함께 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