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초등교사를 꽤 오랫동안 했고 교직생활을 하면서 다른 나라(일본, 중국, 호주, 태국, 베트남 등)의 초등학교 탐방을 몇 번 하기도 했던 나는 초등학교 생활에 관한 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미국으로 이사를 와서 경험하는 초등학교 생활은 정말 많은 것들이 달랐다. 경험하는 입장과 경험하는 환경이 달라지면 그 경험의 양과 질도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것을 계속 깨닫고 있는 중이다. 교사로서 경험하는 것과 학부모로서 경험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고, 한국에서 경험하는 것과 미국에서 경험하는 것 또한 너무 많은 것들이 달랐다.
미국은 워낙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이고 대도시보단소도시가 훨씬 많기에 도시들의 규모또한 매우 작다. 각 도시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도시 간 분위기도 여건도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하나의 경험을 절대 전체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미국의 한 소도시, 대학 캠퍼스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똘똘이의 학부모로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도 하나의 사례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교사였던 내가 미국의 학부모가 되면서 느끼는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궁금증을 해소해 줄 수도 있고, 변화의 단초를 제공해 줄 수도 있다는 믿음으로 틈틈이 미국 초등학교의 이야기를 기록해 보고자 한다.
내가 이곳 미국 초등학교에서 느끼는 것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이메일 소통이다. 모든 것은 이메일로 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의 종이 가정 통신문은 거의 받아본 적이 없고, 담임 선생님의 문자 연락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학교의 안내 사항, 전달 사항은 무조건 이메일로 먼저 연락이 온다. 추후 기존의 내용 중 정정 또는 변경,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있을 경우에도 다시 이메일로 연락이 온다.
학교의 이메일은 대부분 Administrative Assistant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분에 의해서 보내진다. 우라 나라로 따지면 교무 실무사 또는 교무 행정 지원사 정도가 될 것 같다. 미국의 한 소도시, 내가 경험하고 있는 초등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과 함께 행정일을 도맡아서 하는 비서가 이메일로 모든 학교의 소식을 전한다. 비서는 본인 이름으로 학교 안내사항을 이메일로 보내기도 하지만 교장 선생님을 대신해서 이메일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 물론 중요한 연락사항은 교장 선생님이 직접 이메일을 보내는 경우도 있고 담임 선생님이 이미 안내된 내용을 재차 강조하고 싶거나 상기시켜주고 싶을 때 또다시 이메일을 보내기도 한다.
이메일의 내용은 아주 단도직입적이다. 미국 초등학교(비서 또는 교장 선생님)에서 보내는 이메일의 모든 내용은 사실상 공문의 효력을 지니지만 공문 번호나 형식적인 인사말 등은 찾아보기는 어렵다. 과거 한국에서 가정 통신문을 담당했던 한 교사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가정 통신문을 작성할 때 맨 위에 공문 번호와 담당부서(때론 담당 교사명)가 기재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통신문의 앞부분은 '주변의 자연환경이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는 실록의 계절 5월의 시작입니다.' 또는 '댁내에 행복과 평안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등과 같은 내용이 먼저 서술되곤 했다.
반면 미국의 학교에서 보내는 이메일 통신 내용은 그야말로 전하고 싶은 내용만 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예를 들어 올해 1월 말에 초등학교 비서께서 보내 준 마스크 지침에 대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 family,
As students continue to return from quarantine and isolation, we will continue to require face coverings for everyone (faculty, students, visitors, and all constituents) in our building during the week of January 31- February 4 with the goal of preserving face-to-face learning for our students. On Friday, February 4th we will reevaluate wearing face coverings for the following week.
Thank you for your support. Please contact the 00 office if you have any questions.
미국에서도 코로나 문제는 매우 심각했다. 학교에서 마스크를 계속 착용해야 하는지 여부는 미국 학부모들의 큰 관심사였다. 새해가 되고 나서부터는 바깥 활동뿐 아니라 마트 등의 실내에서도 다들 마스크를 더 안 쓰는 분위기가 되었지만 초등학교 내에서는 마스크를 계속 착용해야 한다는 지침이 있었다. 그러던 와중, 2월 13일 일요일 밤 10시에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Feb 13, 2022, 9:57 PM
Good Evening ## Family!
As stated in previous communications, we have made a commitment to making a weekly assessment as to the status of our mask-wearing procedures at ##. After speaking with our nursing staff and noting the continued decline of COVID cases in our building amongst faculty, staff and students, we will be moving to a "MASK-PREFERRED" status for this week. We certainly encourage students to continue to wear masks as a precautionary measure for their safety and the safety of others, but not as a requirement.
We are so thankful and appreciative for your continued support and cooperation as we work through this pandemic. Please know that every decision is not taken lightly, nor without the best interest of every student, faculty, and staff member's well-being at heart. We will continue to monitor the COVID positivity rate and make decisions regarding mask-wearing week-to-week. Thank you again for your continued support!
MASK-PREFERRED? 한 마디로 말해서 마스크를 쓰고 싶은 사람만 쓰라는 것!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일요일 밤 10시에 교장 선생님이 이메일로 공지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하룻밤이 지났고 2월 14일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똘똘이 마스크를 잘 준비해서 등교를 했더니, 교장 선생님께서 드디어 마스크를 쓰지 않으셨다! 매일 아침 교문 앞에는 교장 선생님과 보건 선생님(미국 초등학교에서는 school nurse라고 함)이 대기하고 있고 차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반겨주며 차 문을 열어주는데, 교장 선생님은 마스크를 안 쓰고 보건 선생님만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똘똘이가 차에서 내릴 때 등교하는 학생들을 살펴보니 반은 쓰고 반은 안 썼다.
이렇게 초등학교 내 마스크 착용이 선택사항이 된 지 어느덧 3주가 지났다. 똘똘이를 픽업할 때 늘 마스크를 쓰셨던 담임 선생님도 2월 말부터는 쓰지 않으신다. 똘똘이에게 어젯밤에 질문을 했다. "똘똘아, 반에 마스크 쓰는 친구들 있어?", "아뇨, 거의 없어요", "한 명도 없어?", "아마 그런 거 같아요." 이제 똘똘이 초등학교는 더 이상 마스크를 쓰지 않는 학교가 된 것 같다. 마스크 착용 문제는 참 중요한 문제였고 모든 학부모들의 관심사였지만 그 연락은 교장 선생님의 이메일에 의해서 하루 전날 밤에 전해졌다.
아이가 결석, 지각, 조퇴를 해야 할 경우에도 미국 초등학교에서는 이메일 하나 보내드리고 답장받으면 족하다. 결석계와 같은 종이 문서를 받아 본 적은 없다. 2월 말 어느 날 아침, 똘똘이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하루 학교를 보내지 않기로 하고 담임 선생님께 이메일을 드렸다. 등교 시간 전 당일 아침 7시 반 이메일을 드렸고, 담임 선생님께서는 몇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답장을 주셨다. 똘똘이의 결석 처리는 그렇게 짧은 이메일 한 번, 답장 한 번이면 충분했다.
Hi Ms. 000, 똘똘이 is under the weather. I want him to take a rest at home today. Thank you so much.
Thank you so much for letting me know. I’m sorry he is not feeling well. Sure hope he feels better soon.
모든 연락은 이메일로 이루어지고, 학교의 안내 사항은 비서와 교장 선생님이 도맡아 하며, 중요한 안내 사항도 그 전날 밤에 이메일로 전달될 수 있다는 점, 담임 선생님과의 소통도 대부분 이메일로 이루어지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점. 이러한 이메일 소통 문화는 학부모로서 꽤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게 참 신선하면서도 때로는 놀랍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