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여러 모로 상당히 다른 부류의 사람이다. 남편은 수학을 무척 사랑하는 전형적인 이과 학생이었고, 나는 수학을 최대한? 멀리하고 싶어 하는 매우 문과스러운 학생이었다. 남편은 학창 시절 늘 체력장 1등급에 달리기는 1, 2등을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수영, 테니스, 탁구 등 웬만한 운동은 고루 다 잘하는 스포츠맨이다. 반면, 나는 달리기 순위와 체력장 등급은 늘 하위권에서 머물렀었고 스포츠나 운동보다는 미술과 음악 쪽에 관심이 많다. 우리 둘은 전공도, 관심 분야도 완전히 다르다.
이런 우리 부부지만 잘 맞는 것도 많다. 무엇보다 찰떡처럼 아주 잘 맞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식성이다. 우리 모두 된 밥보다는 진 밥을 좋아하고, 찍먹보단 부먹을 좋아하며, 짭짤한 스낵보다는 달콤한 스낵을 훨씬 더 좋아한다. 식당에서 메뉴 선택을 놓고 의견이 갈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떤 음식을 고르든 대개 생각이 일치한다. 먹고 싶은 걸 고를 땐 왠지 마음이 더 잘 맞는 기분이다.
우리는 마시는 것에 있어서도 좋아하는 것과 안 좋아하는 것이 딱 일치한다. 참 다행이다. 안 좋아해서 안 마시는 것이 많다. 술도 커피도 심지어 주스도 안 좋아해서 마시지 않는다.
술을 안 마신다.
결혼 후 우리 부부가 술을 마신 적은 단 몇 번에 불과하다. 10년 동안 두세 번 그것도 맥주 몇 잔이 전부였으니 술을 안 마신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맥주, 소주, 와인 등 가릴 것 없이 술이라면 다 좋아하지 않기에 술을 직접 구매해 본 적도 거의 없다. 요리에 활용하고자 소주만 몇 번 사 보았을 뿐이다. 한두 번 집에서 맥주를 먹게 된 것도 아는 분이 선물로 주셔서 어쩔 수 없이? 술이 생겼고 덕분에 마시게 된 경우였다. 결혼 초창기에 친구분이 집에 놀러 오면서 6캔의 맥주를 선물로 주신 적이 있었는데 각자 한 두 캔씩만 먹고 결국 한 캔은 남겼다.
술을 안 마시는 이유는 단순하다. 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술을 먹으면 속이 많이 더부룩해서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것도 이유가 되겠다. 술을 먹지 못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결혼하기 전 직장인으로서 회식이 잦았을 때 술을 많이 먹었던 적도 있었다. 술을 권하는 분위기 속에서 술자리를 피할 수 없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미국으로 온 이후로는 거의 술 회식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고, 집에서 술을 마셔본 적은 더욱 없다. 가끔 일 년에 한두 번 친구네 초대를 받았을 때 권해 주는 맥주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술을 사지 않고 자발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
커피도 안 마신다.
많은 현대인들은 커피는 생명수, 모닝커피는 하루의 활력소라며 매일 커피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전혀 커피를 즐기지 않는다. 커피 메이커나 커피 원두가 집에 있을 리 만무하며 그 흔한 커피 믹스도 없다. 결혼 초에는 집에서 가끔 카누 등의 인스턴트 블랙커피를 아주 연하게 만들어 가끔 마시기도 했지만 언젠가부터 커피를 아예 마시지 않게 되었다. 더운 여름날, 커피숍에서 누굴 만나거나 대접을 받을 때 아주 가끔 모카 프라푸치노를 마실 때도 있지만 일 년에 두세 번 정도에 불과하다.
커피를 안 마시니 커피숍에 혼자 가 볼 일은 거의 없다. 미국에 와서부터는 나 홀로 커피숍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커피숍에 가면 일회용 컵이 많이 배출되는 것도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 외출을 할 땐 꼭 텀블러를 챙겨간다. 집에 보리차나 옥수수차가 넉넉하게 있으면 그것을 담아가기도 하고 냉수기(water fountain)의 물을 받아서 먹기도 한다. 미국의 학교나 공공장소에는 냉수기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커피보다는 물을 먹는 것이 좋다.
주스, 탄산수, 탄산음료 또한 안 마신다.
주스도 안 먹는 것 중 하나다. 주스 한 잔의 당도가 콜라만큼 높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조금씩 주스를 멀리하게 된 이유도 있지만 주스로 먹기보단 생과일 그 자체로 먹는 것을 더 좋아하는 이유가 더 크다. 주스로 먹기보다는 과일을 잘 씻고 깎아서 그 자체로 아삭아삭 씹어 먹는 것을 선호한다. 주스로 갈아서 먹는 것은 왠지 씹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는 기분이랄까.
우리 가족은 탄산음료 또한 안 마신다. 가끔 똘똘이의 간절한?! 요청에 의해 패스트푸드 점에서 드라이브 스루로 햄버거를 사는 경우에도 우리는 콜라 등의 탄산음료는 제외하고 구매를 한다. 탄산의 톡 쏘는 느낌이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탄산수 또한 그 톡톡 하는 느낌이 안 좋아서 한두 번 마셔본 이후 마시지 않게 되었다. 엄마 아빠가 탄산을 안 마시니 똘똘이도 안 마신다. 탄산수보다는 그냥 물, 물보다는 구수한 옥수수 차나 보리차를 선호한다. 마트에 갈 때 유일하게 사는 음료는 우유가 전부다.
대신 우유나 두유, 다양한 전통차를 마신다.
술, 커피, 주스 등 안 마시는 것이 많지만 매일 마시는 것도 있다. 우유 한 잔은 매일 꼭 한다. 달콤한 스낵류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라서 그런지 똘똘이도 우리를 똑 닮았다. 떨어질 날이 없게 만들어 놓는 쿠키, 치즈케이크, 파운드케이크, 약밥, 연유 초콜릿 등 달콤한 간식류와 우유 한 잔은 하루 중 필수코스다. 약간은 허전한 디저트 배를 채워주기도 하고 식사 대신으로 먹기도 한다. 가끔 두유를 먹을 때도 있다. 하지만 두유는 우유보다 훨씬 비싸다. 미국에서 우유 가격은 정말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보통 우유 1갤런(약 4리터)의 가격은 한화로 약 2~3천 원에 불과하다. 매일 우유나 두유 한 잔으로 단백질과 칼슘도 챙길 수 있어 좋다. 또 우유는 제과 제빵 시에도 꼭 필요하니 냉장고에서 떨어질 날이 없다.
요즘 우리 가족이 집에서 매일 마시는 물은 옥수수차다. 미국 사람들은 집에서도 작은 플라스틱 병에 담긴 생수를 즐겨 마시는 편이다. 대형 마트에 가면 작은 생수병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컵 필요 없이 한 병씩 마시고 분리수거를 해야 할 의무도 없으니 참 편리하다. 그러나 그 엄청난 쓰레기 발생을 생각할 때면 도저히 매일 생수병을 가지고 다닐 순 없다. 우리 집에도 생수는 있다. 비상용으로 한 박스를 사놨는데 잘 줄어들지 않는다. 사놓은 지 정말 오래된 것 같다. 항상 마시는 물은 팔팔 잘 끓여서 식힌 옥수수차다. 구수한 그 맛이 좋다.
나는 여러 가지 전통차를 즐기기도 한다. 물처럼 마시는 옥수수차, 보리차, 메밀차, 누룽지 차. 종종 매실차, 율무차, 꿀차, 생강차, 대추차 등 달달한 차도 빼먹을 수 없다. 외국생활을 하면 한국에서 안 먹던 것도 잘 먹게 된다는 말은 내게 진심 사실이 되었다. 한국에서 있을 땐 옥수수차나 보리차 외 전통차를 거의 안 마셨는데 이제는 골고루 자주 즐기고 있다. 전통차 한 잔과 달달한 쿠키 2~3개는 완벽한 조합이자 내게 줄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다.
언젠가 자주 맥주와 와인을 즐기고 매일 커피를 마시는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술과 커피를 안 좋아해서 안 먹는다는 이야기를 하자 농담처럼 내게 말을 건넸다. "아이고, 무슨 재미로 살아?" 그런데 술과 커피가 없어도 인생은 재미있다. 그것을 빼고도 맛있는 간식과 차는 정말 많다. 술을 안 마시기에 참 건전한 생활처럼 보이지만 술이 없어도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것을 조심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달콤한 간식과 음료는 뱃살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이제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오늘 아침은 조금 느긋한 여유를 부리며 과일과 빵 그리고 우유 한 잔으로 아침 식사를 할 생각이다. 디저트로 먹을 치즈 케이크가 냉동실에 있어 왠지 마음이 든든하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에는 역시 먹는 것이 빠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