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보다 두 배 정도 많으신 친구에 대한 이야기
지난주 겨울 폭풍이 우리 마을까지 강타를 하고 일주일간 집에서 쉬었다. 이렇게 많은 눈은 이 지역 사람들도 거의 20~30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빙판으로 변한 길 때문에 운전을 해서 나갈 수 없었다. 미국에서 운전을 못 한다는 의미는 장을 볼 수도 그 어떤 가게에도 갈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마침 집에서 쉬는 기간 동안 내 생일도 들어 있었다. 똘똘이는 엄마 생신을 축하해야 한다며 생크림 케이크를 만들어 달라고 아침부터 노래를 불렀다.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진 못해도 맛있는 포장 음식을 사 와서 먹고,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만들어 먹는 것이 계획이었지만 실천은 불가능했다.
세 식구가 집에서만 지낸 지 3~4일이 지나니 과일이 가장 먼저 떨어졌다. 다행히 계란과 우유, 생크림 만들 헤비 크림은 있었기에 대왕 카스텔라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내 생일에 내가 만든, 과일 한 조각 없는 카스텔라였지만 생크림을 얹으니 그럴싸했다. 카스텔라를 만들 땐 그 어느 빵보다도 설탕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그런지 참 맛있다. 입에서 사르르 녹는 맛. 옆집에도 생크림을 듬뿍 발라 크게 한 조각 갖다 드렸더니 함박 미소를 지으신다.
코로나 19의 세계적 대유행, 팬데믹이 정점을 향하고 있을 때 미국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하게 돌아가는 듯 했다. 팬데믹은 활발했던 시내 중심가의 풍경은 사라지게 했고 많은 기회들도 가로막았다. 지역의 가족 행사도 대부분 취소, 연기되었고 다들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조심하기에 새로운 친구를 만날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내 나이보다 두 배 정도 많으신, 그러니까 연세가 80이 훌쩍 넘으신 친구를 소개받았고, 그 행운은 내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처음에 뵈었을 때 60대 중반 많으셔도 70 정도 되셨겠지 생각했는데, 80세 중반이라는 말씀을 듣고 크게 놀랐었다. 그 정도로 굉장히 건강하시고 활기찬 삶을 사시는 분이다.
그분은 일주일에 한 번, 자신의 집으로 나를 초대하신다. 매주 2~3시간 정도 단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영어도 가르쳐 주신다. 나는 가끔 한국 음식도 갖다 드리고 한국 문화를 소개해 드리기도 한다. 매번 찾아 뵐 때마다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가족처럼 대해 주시는 그분의 모습에 늘 감동을 받는다.
지난 수요일에는 겨울 폭풍으로 인해 만나지 못했고, 주말에 눈이 녹은 후 어제 2주 만에 다시 찾아뵈었다. "How are you? It's so nice to see you again!" 반갑게 인사를 해 주셨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탁자 위에 예쁜 선물 가방이 놓여 있었다. "It's just little things for you."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하셨다.
생각해 보니 몇 달 전 우리 가족 모두의 생일을 물으셨던 적이 있었다. 내 생일은 이미 지났음에도 잊지 않고 생일 선물을 준비해 주신 것이었다. 손글씨 쓰는 것과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아시고는 펜과 그림 그리는 종이, 캔버스 세트를 준비해 주셨다. 그리고 예쁜 새가 그려져 있는 생일카드 까지. 세심하게 준비해 주신 마음이 참 감사했다.
집에 돌아와서 선물 가방을 본 똘똘이. 갑자기 눈이 초롱초롱하게 바뀌더니 "엄마, 저 써봐도 돼요?" 묻는다. "당연하지!" 같이 그림을 그리며 한창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띠롱~ 문자가 왔다.
오잉? 펜을 주기 전에 물어봤어야 했는데 못 물어봐서 미안하다며 알고 있는 것이었다면 용서해 달라는 문자였다. 물론, 일부러 약간의 과장이 섞인 문자를 보내셨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배려하는 문자가 있을 수 있을까?
미국에서 만난 내 나이의 두 배 정도를 더 사신 친구 덕분에 나는 친구의 개념에 대해 다시 정립하고 있는 중이다. 친구를 사귈 때 나이는 중요하지 않음을, 언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것을, 진짜 친구란 가족처럼 대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