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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교장 선생님이 정말 좋아.

권위는 있지만 권위적이지 않은 미국 교장

by Olive

Leadership is about making others better as a result of your presence and making sure that impact lasts in your absence.


학부모로서 미국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포함한 초등학교를 경험한 지도 어느덧 5년이 되었다. 미국 초등학교에서 자원봉사, 재능기부 수업 활동을 여러 번 할 수 있었기에 교사 경험도 비교적 많이 가질 수 있었다. 경험한 바로는 겉보기에 선생님과 학생들의 모습은 한국과 미국이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교실에서 가르치고 공부하는 풍경은 미국 초등학교도 한국과 거의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특별히 다르게 느껴지고 단번에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분은 바로 교장 선생님이다. 이곳에서 느끼는 교장 선생님은 그냥 '좋다' 정도가 아니다. '정말 좋다'. 학부모로서 뿐만 아니라 교사의 입장에서도 교장 선생님은 참 좋은 분, 늘 함께 하고 싶은 분일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매일 아침 교문을 지키는 사람은 교장 선생님


똘똘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매일 아침에 볼 수 있는 사람은 교사도, 학교 지킴이도, 자원봉사자도 아닌 교장선생님이다. 아침 등교시간은 오전 7시 35분부터 7시 55분. 8시에 정확히 학교 일정이 시작되므로 그 이후는 지각으로 처리된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대부분 차를 이용하여 등교를 시켜준다. 교문 앞에서 차문을 열고 바로 내릴 수 있도록 학생 한 명일 경우 조수석에, 두 명일 경우에는 조수석과 그 뒷자리에 앉도록 배정한다.


학교에 도착을 하면 교문에 있는 교장 선생님이 조수석 차 문을 열어주곤 한다. "굿모닝! 미스터, 00" 남학생을 부르는 교장 선생님의 전매특허 인사 멘트다. 전교생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는 교장 선생님은 늘 학생 이름을 불러주며 환하게 인사를 해 준다. 이에 나도 똘똘이도 절로 미소를 띠게 된다. 코로나 때문에 교문 앞에서 체온을 재야 했을 때도 보건 선생님(school nurse)과 교장 선생님은 늘 교문에서 함께 했다. 매일 아침, 담임 선생님은 교실에서 학생들을 맞이하고 교문은 교장 선생님이 항상 지키고 있다.


작년 학교 등굣길 풍경, 매일 아침 교문에서 체온을 재는 사람은 교장 선생님

교장실은 출입문 바로 근처, 크기는 일반 교실 4분의 1의 작은 공


미국 교장 선생님께 호감을 가질 무렵 나는 각기 다른 학교의 교장실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교장실의 위치는 모두 학교 정문 바로 옆에 있는 비서실 그다음에 자리했다. 정문에서 걸어서 5초 이내로 갈 수 있는 거리로 언제든 학교 안팎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는 그런 위치였다. 내부를 보고서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크기가 교사 연구실의 절반, 일반 교실 4분의 1에 불과했다.


첫 느낌은 누가 봐도 일하는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교장실의 책상과 의자는 교사 연구실에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아담한 테이블과 팔걸이 없는 사무용 의자가 옆에 있었다. 화분 진열대 공간은 찾을 수도 만들 수도 없는 작은 공간. 눈에 띄는 건 벽 한쪽에 있는 책꽂이였다. 두 교장 선생님 모두 가족사진이 한쪽에 있었고 박사학위가 있는 한 교장 선생님의 경우 학위증이 놓여 있었다. 책꽂이에는 당연히 유리문이 없었고 각종 서류 집과 책들로 꽉 차 있었다.


학교의 행정 업무는 교장의 일, 문제 학생 상담도 교장의 역할


학교에는 여러 가지 행정 업무가 존재한다.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그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은 교장 선생님, 학교 비서, 그리고 행정 직원들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개학 관련 안내도 교장 선생님의 이메일과 안내 메시지 동영상을 통해 먼저 이루어졌다. 선생님들은 담당한 반 학생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업무만을 처리한다. 그동안 받아 보았던 수많은 안내장은 교장 선생님과 비서가 직접 쓴 이메일로 전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교장 선생님의 역할은 행정 업무뿐 아니라 문제 학생에 대한 상담도 포함된다. 코로나 이전에 자원봉사 교사로 학교에 자주 방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교실에서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 몇 명이 비서실 한쪽 의자에 앉아서 교장 선생님 면담을 기다리는 걸 보았다. 문제 학생들을 자연스럽게 교장 선생님께 보내서 해결할 수 있는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은 얼마나 좋을까 싶다.


지금까지 꽤 많은 교장 선생님을 경험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학교 행정업무를 도맡고 학생 상담활동을 내 일처럼 행하며 매일 아침 교문을 지키는 교장 선생님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18년간 나만 유독 그랬을까? 아침에 교문 앞을 지키는 역할을 교사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한 적은 있다. 학생 상담은 온전히 담임교사의 책임이었고 학교 일은 업무 분장이라는 이름 아래 교사들에게 모두 칼같이 분배되어 나뉘었다. 안내장도 행사계획도 모두 담당자인 교사가 맡아했던 기억만 있을 뿐이다.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과 마주하게 될 땐 학교 업무에 대한 확인이나 점검, 지시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교장실은 학교 최고 권위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한국의 교장실은 일반 교실 한 개 정도의 넓은 공간으로 구성되고, 멋들어진 꽃이나 난 화분들이 기본 한 두 개부터 열 개 이상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팔걸이가 있는 푹신한 소파 여러 개와 커다랗고 둥그런 테이블은 교장실에 방문하는 손님들을 반겼다. 교장실 위치는 출입문 옆이 아닌 운동장이나 화단이 잘 바라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의 교장실은 지극히 권위적인 분위기였고 교장 선생님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러나 미국에서 경험했던 교장 선생님과 교장실은 권위적인 분위기와는 리가 멀었고 손과 발로 뛰며 학교 일을 하는 권위가 돋보였다. 학교의 리더로서 늘 부지런히 움직이며 교사들을 지원하고 행정업무를 전담하며 학생들의 상담도 맡아하는 교장 선생님 안 좋아할 순 없다.


권위는 있지만 권위적이지 않은 교장 선생님이 좋다.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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