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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May 28. 2021

반백년 넘은 몬태나 우리 집

몬태나 우리 집을 소개합니다.

Home isn't a place. It's a feeling.


몬태나에서 살면서 가장 정이 많이 들었던 곳, 가장 많이 머물렀던 곳은 당연히 대학교 캠퍼스에 위치한 작은 우리 집이었다. 몬태나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오래되었고 이렇게 작은 집인 줄은 몰랐었다. 직접 와서 보니 우리 집은 참 오래되었고 아담했다. 몇 달을 살아보기 전까지는 이 집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몇 달을 살아본 후에야 이 집은 우리에게 행운이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캠퍼스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 집은 캠퍼스 주택들 중에서 가장 작고 또 가장 오래된 집이었다. 사람들마다 아마 70~80년 넘었을 것이다, 대략 50~60년 정도 되었다 등 조금씩 말이 다르긴 했지만 확실한 건 최소 50년은 넘은 집이라는 사실이었다. 몬태나주립대학교의 캠퍼스 주택 단지는 Family & Graduate Housing으로 불린다. 모두 7개의 커뮤니티, 550개의 집(units)으로 구성이 되며 1200명이 살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38%는 인터내셔널 학생들로 구성이 된다.


커뮤니티 직원은 학생이 있는 가정 중에서 심사를 통해 뽑는다. 직원이 되면 학업과 병행하며 커뮤니티를 돌보고 행사를 주관하는 일을 가끔씩 하는 대신 월세를 안 내는 혜택이 주어진다. 이곳은 대학교 학생이나 직원만 신청을 통해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몰려드는 학생들의 주거 공간 확보를 위해 학생이 아닌 직원들은 더 이상 살기 어렵다는 방침이 정해졌다. 대학의 인기가 높아지는 건 좋지만 살던 직원들이 모두 캠퍼스 밖으로 나가게 된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집이 속하는 동네는 7개의 커뮤니티 중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곳이었다. 이 동네의 집들은 2가지 유형으로 모두 독채다. 방 2, 주방 겸 거실 1, 화장실 1인 작은 집과 방 3, 주방 1, 거실 1, 화장실 1로 조금 더 큰 집이 있다. 이 중에서 우리 집은 작은 집이었다. 대학교 옆의 땅에 가장 먼저 지어진 동네라서 일하고 공부하는 학교 건물까지 제일 가까웠다. 걸어서 5~15분이면 웬만한 건물까지는 다 갈 수 있었다.   


작고 오래된 우리 집을 처음 마주한 순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보즈만에 도착했을 때는 밤 11시 무렵이라 무척 깜깜했다. 마중을 나와주신 한인회장님 부부의 차를 타고 대학교 캠퍼스로 향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싸 들고 온 이민 가방을 우리 집에 먼저 내려놓아야 했다. 그리고 회장님 댁으로 이동하여 하룻밤을 자기로 했다. 보즈만 바로 옆 동네인 벨그레이드에 공항이 있었는데 차로 캠퍼스까지는 20분 정도밖에 안 걸렸다.


밤 11시 30분이 다 된 늦은 시각,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했다. Housing 사무실은 당연히 잠겨 있었고 문 앞에 있는 비상벨을 누르니 직원과 통화가 되었다. 바로 열쇠를 가지고 집 앞으로 나온다고 했다. 사무실에서 우리 집까지는 차로 1~2분 거리. 집 앞으로 가니 어느새 직원이 나와 있었다. 활짝 웃으며 들고 있던 열쇠를 우리에게 건넸다.


집 문을 열자, 온통 새하얀 내부에 한쪽에는 커다란 난로가 열기를 뿜고 있었다. 한 겨울이었기에 우리가 도착하는 날짜를 미리 안 직원이 추울 것을 대비하여 난로의 불을 켜 놓은 상태였다. 카펫이 없어서 바닥은 차디찼다. 옷걸이 봉만 방마다 하나씩 있을 뿐 아무런 가구도 없이 휑했다. 부엌에 있는 가전이라고는 냉장고, 오븐 겸 전기 레인지가 전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무 평도 안 되는 공간이었다. 내부는 하얀 페인트칠이 되어있어 깔끔했지만 집 안 구석구석 전체적으로 오래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차도 없고, 식탁이나 침대 등의 가구부터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의 가전까지 모두 없는 상황에서 처음 한 두 달 동안의 생활은 그야말로 답답하고 때론 황당하기도 했다. 한국의 편안한 아파트를 두고 왜 몬태나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생각하기도 했다. 2017년 3월, 한국에서는 봄소식이 솔솔 들려오고 있었지만 몬태나는 그야말로 한겨울이었고 눈도 펑펑 많이 왔다. 하지만 몇 달을 살아보고 나서야 깨닫기 시작했다. 작고 오래된 몬태나 우리 집이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엄청나게 큰 행운이었다.


저렴한 월세


보즈만의 집값은 규모가 비슷한 다른 도시에 비해 훨씬 비싸다. 그만큼 인기가 많은 도시라는 것을 보여준다. 집값이 비싸다는 이야기는 월세(렌트) 또한 비싸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집은 전세가 없고 대부분 자가 또는 월세로 이루어진다. 몬태나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남한의 3.8배의 땅에 전체 인구가 백만 명에 불과하다는 정보만 보고 어딜 가든 엄청 시골이겠구나 미루어 짐작을 했었다. 하지만 와 보고, 살아 보니 몬태나 보즈만은 시골이 아니었다.


방 하나, 거실 하나, 화장실 하나 등으로 이루어진 작은 집도 보즈만에서는 월세 백만 원이 훌쩍 넘을 정도로 비쌌다. 인구 4~5만 정도로 규모가 비슷한 다른 도시에 비해 약 두 배 이상의 비싼 금액이다. 그러나 몬태나주립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집들은 시세보다 30%~50% 정도 저렴하게 제공이 되었다. 캠퍼스에서 가장 작은 유형이었던 우리 집의 월세는 70만원 정도였는데 캠퍼스 바깥의 경우 같은 조건에 최소 월 백만 원에서 이백만 원까지 주어야 한다.


몬태나에 오기 전까지는 다달이 나가는 월세가 얼마나 무서운 지 미처 몰랐다. 한국에서 맞벌이하며 벌던 수입의 반보다도 더 적어진 월급봉투에서 매달 월세를 빼야 하는 부담은 만만치 않았다. 그런 측면에서 저렴한 월세는 우리 가족에게 정말 희소식이었다. 작아도 독채라서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아담한 공간이라 채워야 할 가구가 많지 않아도 된다는 점 또한 좋았다. 캠퍼스 끝에 위치한 남편의 학교 건물까지 걸어서 15~20분이면 갈 수 있었던 것도 큰 장점이었다. 특히, 눈이 많이 올 땐 축복과도 같았다.

 

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우리 집 동네 풍경들

좋은 이웃들


캠퍼스 하우징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대학생이거나 대학원생이었다. 우리 가족처럼 부부 중 한 명 이상이 대학교 직원인 경우도 꽤 있었다. 대학원생, 교수나 연구원 등의 가정인 경우 자녀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옆 옆집에 살고 있는 비비는 똘똘이와 같은 반이었고, 대각선 방향에 사는 제임스는 똘똘이보다 2살이 많았다. 비비 엄마와 제임스 아빠는 모두 대학원생으로 공부하는 엄마, 아빠였다.


우리 집 뒷 쪽에는 중국에서 온 마오마오네가 살았는데 아빠가 연구원으로 일을 했다. 마오마오는 똘똘이보다 두 살이 어렸는데 자주 우리 집에 찾아왔고 똘똘이를 형아처럼 잘 따라다녔다. 외동아들이라 동네 친구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우리 커뮤니티에는 또래의 아이들이 많아서 좋았다. 똑똑! 누군가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면 Play! 하면서 똘똘이를 찾는 친구들이 집 앞에 서 있었다.


캠퍼스 내에 주차를 할 경우에는 정기권이 없는 경우 반드시 주차권을 사무실에서 받아서 부착을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주차권 없는 외부 차량이 있는지 가끔 학교 경찰차가 돌아다니며 살펴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경찰차의 순시는 안전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주변 이웃들이 모두 대학교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거나 그분들의 가정이어서 서로 공감하는 폭이 넓었고 자주 안부를 물어봐 주는 점이 좋았다.



예쁜 텃밭


우리 집에서 살면서 똘똘이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는 텃밭이었다. 이사 오고 나서 첫 해에는 집 앞에 공동 텃밭이 있어서 좋았다. 5월쯤 구획별로 땅을 나누어 텃밭 분양을 하였고 5~7월 약 석 달간 재배를 할 수 있었다. 매일 저녁마다 나가서 물을 주는 게 우리 가족의 소소한 재미였다. 비록 5~6월에도 눈이 와서 심었던 식물들이 대부분 죽기도 하고 생명력 질긴 몇 개만 살아남긴 했어도 가꾸고 돌보는 보람이 있었다.


이듬해가 되자 그곳에 잔디를 심으면서 공간이 없어져 버렸다. 몬태나의 땅은 한국에 비하면 척박했지만 식물을 가꾸는 재미를 한번 맛 본 터라 계속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중 큰 발견을 했다. 집 바깥쪽 빨랫 옆에 잔디가 많이 벗겨져 있었고 파 같은 식물들이 옹기종기 새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지난 주인이 개인적으로 만들었던 텃밭인 것 같았다. 남편은 시간이 날 때마다 흙을 일구었고 나와 똘똘이도 틈틈이 돌멩이를 골라냈다. 조금 더 정리가 된 밭에 한국분들이 주신 대파 뿌리와 딸기 모종을 더 심었다.


우리 집 옆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고 건축학과에서 건물을 짓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다. 재작년 여름에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교수님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텃밭 둘레를 반듯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테두리 공사를 해 주셨다. "Hi."만 몇 번 나누었을 뿐이었는데, 정말 깜짝 선물이었다. 기다란 나무판자로 테두리가 쳐지니 허전했던 텃밭이 아주 근사해졌다. 몬태나에서 식물을 길러 먹는 기간은 정말 짧다. 짧으면 한 달, 길어야 두세 달. 그것마저도 눈이 많이 온다면 실패하기 쉽다. 그럼에도 집 옆에서 가꾸었던 텃밭은 우리 가족에게 재미있고 보람찬 소일거리를 선사해 주었고 가끔 신선한 야채도 공급해 주었다.



멋진 캠퍼스


대학교 옆에 위치한 캠퍼스 주택의 혜택 중 하나는 캠퍼스가 가까워서 언제든 걸어서 자주 놀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몬태나주립대학교 내 커뮤니티 이곳저곳에는 넓은 잔디밭과 놀이터가 잘 갖춰져 있었다. 굳이 차를 타고 공원에 가지 않아도 걸어 다니며 가족과 산책하기좋았고 아이와 바깥 놀이도 실컷 할 수 있었다.


대학교 건물 쪽으로 조금 더 가면 길가에 많은 오리들로 인기가 많은 오리 연못이 있다. 똘똘이와 오리를 보러 연못에 가는 일은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이 오리 연못은 몬태나주립대학교의 많은 장소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자 명물과도 같은 장소다. 가끔 엄마 오리가 새끼 오리들을 데리고 길을 건널 때면 차들은 일제히 멈춰 서서 느긋하게 기다려 주었다. 지역 주민들도 오리 먹이를 가지고 오거나 유모차를 끌고 와서 오리 구경을 한동안 하고 가기도 했다.


많은 대학 건물들 중에 우리 가족이 가장 많이 이용한 건물은 대학 도서관과 구내식당이었다. 등록금이 비싸기 때문일까? 웬만한 미국의 대학교는 다 시설이 좋다고 들은 적이 있다. 몬태나주립대학교의 건물과 시설 또한 상당히 좋고 깔끔했다. 특히 구내식당의 경우 웬만한 패밀리 뷔페 레스토랑 못지않은 수준이었다. 널찍한 공간에 다양한 음식과 후식이 뷔페식으로 마련되어 있어서 갈 때마다 과식을 안 할 수 없었다. 도서관과 구내식당은 학생이 아닌 지역 주민들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된 곳이어서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몬태나 우리 집을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은 실망감이었다. 요즘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작고 오래된 집. 하루 이틀 지났을 때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가구도 없지, 차도 없지, 눈은 하염없이 내리지... 나는 몬태나에 왜 왔지? 이 작고 오래된 집은 왜 이리 낯설지? 여러 가지 어색하고 불편한 감정들이 마음속으로 밀려왔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주변을 둘러보니, 좋은 이웃들이 있었고 예쁜 텃밭이 있었고 멋진 캠퍼스가 있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머니! 가 저렴했다. 네 박자가 딱 맞아떨어진 우리 집 덕분에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추억도 많이 쌓았으며 돈도 아낄 수 있었다. 몬태나에서 사는 동안 작고 오래된 몬태나 우리 집은 우리 가족에게 큰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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