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stop being a good person because of bad people.
우리 가족은 인구가 많지 않은 미국 소도시에서만 살고 있다. 소도시에는 인구가 적은 만큼 한국 사람들도 적다. 그동안 최소 몇 번 이상 만난 한국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4~50명 정도 되는 것 같다. 만나 뵌 분들 중에서 불혹의 나이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사를 온 사람은 우리 가족밖에 없었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젊었을 때, 또는 결혼 전에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들이었다. 미국 생활, 해외 살이가 처음인 내게 미국에서 만난 한국분들께선 이런저런 말씀도 많이 해 주셨다.
해 주신 말들은 따뜻한 배려, 조언, 격려의 말들이었다. 여긴 미국이니 남 눈치 볼 필요 없이 살아도 된다, 한국에서는 바쁘게 살았으니 여기에선 맘 편히 지내라, 미국 사람도 다 똑같은 사람이다, 우린 한국말을 잘하면서 영어까지 하는 것이니 영어 때문에 절대 기죽을 필요 없다 등등이 떠오른다. 모두 다 좋은 말씀들이었지만 딱 하나 이해하기 힘든,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말도 있었다. 그 말은 '미국에선 한국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두어 번 정도 들은 말에 불과했지만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눈이 커지며 "왜요?" 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나만 이런 말을 들었을까? '미국에서 한국사람 조심'이라는 말로 구글링을 해보니 의외로 많은 검색 결과가 나왔다. 미국을 포함하여 외국에서는 다 마찬가지라면서 한국사람만! 조심하면 된다는 글부터 왜 한국사람을 조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상세하게 써 놓은 글까지. 그 경험도 내용도 다양했다.
한국사람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거나, 사기를 당한 경험도 있었고, 외국에서 한국사람을 만나면 반갑기보다는 불편하다는 글도 있었다. 물론 외국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서 좋았다는 글도 있었지만 한국 사람을 조심하라는 글이 훨씬 많아 보이는 것만은 분명했다. 지금 미국이라는 외국에서 살고 있는 입장에서, 한국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있는 입장에서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동안 만난 한국 사람!
한국 사람이 얼마 없는 미국의 소도시에 살고 있지만 그동안 만났던 한국 사람들은 모두 좋은 분들이었다. 조심해야 할 사람은 없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시각은 밤 11시, 가구도 없는 미국 집에서 바로 자는 것도 어려울 것 같다며 첫날밤을 재워주신 분도 한국 분이셨고, 3년 넘게 내 머리를 잘라주신 분도 한국에서 미용실을 운영하셨던 한국 분이셨다.
외국에서는 한국음식이 많이 그립고 생각난다. 한국 마트가 없는 미국 소도시에서는 한국 음식이 더욱더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한국 음식 또는 구하기 힘든 한국 식재료를 나눠주시는 한국 분들이 계셔서 고마웠다. 생일 때 미역국을 끓여서 가져와 주신 분, 왕만두를 쪄서 먹자고 하신 분, 삼겹살 구이 초대를 해 주신 분, 설날에 떡국을 끓여 주신 분 모두 한국 사람이었다. 한국 사람은 조심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내겐 기다려지는 사람, 고마운 사람이었다.
미국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께서 나눠 주신 맛있는 한국 음식들, 식재료들
한국 사람을 피하는 사람?
미국에서 사는 동안 한국 사람을 안 만나는 분을 보기도 했다. 그분에 대해서는 몇 번 이야기를 들은 것이 고작이었다. 동네 한국 분 말씀으로는 한국 사람 만나는 걸 안 좋아하고 피하는 분이 있다고 하셨다. 이 분은 내 또래의 독신 가정이었다. 뭐 그런 사람도 있나 보다 생각만 했는데 어쩔 수 없이 가까이서 볼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바로 우리 집 앞으로 이사를 오셨기 때문이었다. 창문만 열면 바로 앞집이 보였다. 앞집에 사시는 관계로 마주치려 하지 않아도 몇 번 가까이서 지나칠 기회가 있었는데 인사나 대화를 할 수는 없었다. 늘 바쁘신 것 같았다.
한 번은 우리 집으로 와야 할 커다란 택배 박스가 오배송되어 앞집으로 간 적이 있었다. 누가 우리 집 문을 쾅쾅! 두드려서 나가보니 앞집 한국 사람이었다. 웬일인가 싶어 나가서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리니, 안녕하세요도 하지 않고 아주 난감한 표정으로 "우리 집에 택배가 왔는데, 이 집 주소로 되어 있어요. 가져가세요."라는 말만 하고는 급하게 뒤돌아 집으로 향했다. 그 이후로 말을 나누거나 인사할 기회는 없었다. 짧은 대화가 전부였지만 느낀 점은 한국 사람을 피한다기보다는성격이 내성적인 분, 혼자 조용히 지내는 걸 좋아하는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제 만난 한국 사람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각은 미국 시각으로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이다. 우리 집에 김치가 똑 떨어진 것을 아시고는 어제 집으로 빈 통을 가져 오라고 하신 분께서는 이 동네에서 택배 사업을 운영하는 한국분이시다. 팬데믹 이후로 더 많이 바빠지셨다. 남편분은 미국분이시며 우주 연구원에서 로케트 만드는 일을 오래 하셨다. 몇 년 전에 퇴직을 하셨고 이젠 함께 사업을 하고 계신다. 한국분께서는 미국에서 사신 지도 40년이 넘으셨다. 그 긴 시간 미국에서 사셨지만 아직도 한국 사람만 보면 너무 반갑다고 하셨다.
어제 토요일 11시 쯤, 김치 때문에 찾아뵈었는데 갑자기 점심에 약속이나 계획이 있냐고 물으셨다. 우리 가족에게 점심을 사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동네에서 20분 떨어져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의 식당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셨다. 바비큐와 피자를 사 주셔서 맛있게 먹고다시 돌아와 김치를 골고루 세 통이나 담아 주셨다. 덕분에 토요일 저녁 우리집 밥상은 김치와 함께 더 근사하게 차려질 수 있었다. 여름이 다 가기 전 김치통을 돌려드릴 때 떡을 좋아하시는 그분께 맛있는 호박 찰떡을 만들어서 나누어 드려야겠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미국이든, 어느 나라든, 한국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솔직히 동의하기도 싫다. 지금까지 내 경험으로 조심해야 할 한국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한국 사람이라서 더 편하고, 더 좋을 때가 많았다. 외국이라서 한국어가 통하는 한국 사람에게 더 의지하다가 또는 마음을 듬뿍 줬다가 사이가 소원해지면 괜히 더 외로워지고 무척 섭섭해질 수도 있다는 말도 있는데 이에는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한국'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사회가 다 그렇듯,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다. 한국 사람 중에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다 있다. 또 모든 뉴스가 그렇듯, 좋은 소식보다는 안 좋은 소식, 사건 사고에 관한 소식이 더 잘 전해지고 퍼지기 마련이다. 특히 외국이라는 환경에서 경험하는 나쁜 일, 그것도 같은 한국 사람과 연루된 일이라면 더 충격이 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미국 생활에 있어서 미국 사람, 한국 사람,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할 것 없이 조심해야 할 사람은 부디 안 만나길 바라본다.
미국에는 미국 사람도 있지만 한국 사람도 있다. 주변에는 좋은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나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어딜 가든 어느 나라 사람을 만나든 좋은 사람은 가까이해야 하고 나쁜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