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국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 수도 있습니다만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힘든 점, 만족하는 점

by Olive

If you go anywhere, even paradise, you will miss your home.

-Malala Yousafzai-


가끔 한국의 친구들, 지인으로부터 듣는 말이 있다. 미국 생활이 부럽다, 미국 생활이 좋아 보인다 등등 부러움이 섞인 말들을 보낸다. 물론 미국에 코로나가 더 많다던데 괜찮냐, 미국에는 총기사고가 끊이지 않는데 위험해서 어떻게 살고 있냐 등등 걱정과 우려 섞인 안부를 보내는 경우도 있다.


사십 년 동안 한국에서만 살다가 미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사 년을 살았다. 사십 년 동안 나름 해외여행도 많이 해 봤고 외국 친구들과 교류를 하기도 했기에 미국 생활이 크게 어렵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들과 외국에서의 삶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과는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미국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 수 있다. 여러 가지 힘든 점이 많지만 나는 크게 두 가지 면에서 힘들었고 계속 힘든 중이다.


첫째, 소수집단으로서 느끼는 소외감이 크다. 소수집단은 주류 집단에 비해 힘이 훨씬 약할 수밖에 없다. 소수집단이기에 차별, 무시 등을 더 많이 겪을 수 있고 이는 결국 비애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있었던 애틀랜타에서 일어난 총기사고도 아시안이 소수집단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은 아니었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만일 아시안이 주류 집단이었다면 이런 사건이 과연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국에서는 한국인으로서 늘 주류 집단이었다. 주류 집단 중에서도 교사라는 거대하고 안정적인 집단에 속해 있었다. 매년 학생들이 내게 주어지고 한 달에 한번 월급을 받았다. 나의 모국어인 한국말을 편안하게 자유자재로 쓰면서 가르치고 배우며 살았다. 그런데 미국에 오고 나니 나는 그저 말(영어) 잘 못하는, 처음 접해 보는 미국의 모든 것들이 어색한 외국인일 뿐이었다.


둘째, 영어의 벽은 생각보다 높다. 사십 대인 나는 중학생 때부터 학교에서 영어를 배웠고 어른이 되어서도 영어를 중요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계속 살았다. 영어 학원, 영어 방송 등이 넘쳐나고 어디서든 영어를 배우기 쉬운 환경 속에서 꾸준히 영어공부를 했다. 그랬기에 나의 영어 실력이 아주 낮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서 살면서 느끼는 영어는 또 달랐다. 사사건건 영어 때문에 부딪히고 좌절했다.


한 번은 세면대 물이 잘 안 빠져서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야 했다. 세면대가 영어로 뭐지? 물이 잘 안 빠진다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지? 등등 준비해서 영어로 말을 했는데, 갑자기 직원이 질문을 했다. 언제부터 그랬냐, 아예 안 내려가냐 등등. 갑자기 말문이 턱 막혔다. 한국에서라면 절대 걱정할 일도 없고 결코 일어나지도 않을 그런 일들이 매번 영어 때문에 벌어졌다.


미국에서 오래 사시고 공부를 오래 하신 분도 영어 때문에 걱정하긴 마찬가지였다. 영어 강의가 너무 힘들어서 미국 대학 교수로 계신 분이 결국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남편도 나보다는 영어를 잘하지만 매일 사전을 끼고 살고 있으며 영어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종종 한다. 내 언어가 아닌 제2외국어인 영어, 그러나 여기에선 가장 기본적인 언어인 영어. 우리에겐 영원한 숙제이며 짐처럼 느껴지곤 한다.


이와는 달리 미국 생활은 어떤 면에 있어서는 내게 큰 만족감을 주고 있다. 힘든 점과 만족하는 점은 또 다른 이야기다. 주로 사회 전반에서 느끼는 문화적인 부분에서 만족을 느낀다. 크게 두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 사회는 수평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좋다. 수평적인 문화는 편한 호칭, 나이를 잘 안 따지는 관계에서 금방 나타난다. 많은 경우 00님의 호칭을 붙여야 하는 한국사회이기에 누구를 만나면 상대방의 나이, 직업, 직급 등을 잘 따져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그냥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지역에 따라 Ms., Mr., Dr. 등의 호칭을 붙이는 것을 좀 더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위아래를 나누는 문화, 나이별로 서열을 따지는 문화가 매우 약하기에 인간관계가 훨씬 수평적이다.


이러한 수평적인 문화는 내 삶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다. 나이 상관없이 많은 미국인들과 서로 그냥 이름을 부르며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어떤 도전을 하는 것에 있어서도 나이가 문제라는 느낌이 안 든다. 한국에서는 친구 사이에 있어서 동갑을 많이 강조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친구의 개념이 매우 넓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동갑인 학급 친구들과 더 친하긴 하지만 나이가 같이 놀고 친구가 되는데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형, 동생을 나누지 않고 그저 이름만 부르면서 놀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미국의 가족 중심적인 문화가 좋다. 미국은 무엇을 해도 가족 중심적으로 움직인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사귄 20대의 미국인 친구가 아이 생일 파티에 우리 아들을 초대한 적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나와 아들만 가면 될 줄 알고 둘이서만 갔다. 하지만 가서 보니 가족이 모두 오지 않은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가족 시간을 중요시하는 문화 때문에 회사의 야근도 거의 없다. 남편은 이곳의 대학에서 일하는 동안 야근이나 주말 출근을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직장상사도 야근을 강요하지 않는다. 모임이나 행사를 하게 되면 가족 단위로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가족과 가족끼리 만남을 갖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을 사귈 때 가족을 모두 사귀게 되는 경우도 많아서 좋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든 간에, 우리의 삶은 늘 상대적이다. 남의 떡은 더 커 보이고 옆집 잔디는 더 푸르게 보이는 법(The gr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이다. 한 번뿐인 인생, 기왕이면 가능하다면 내 떡만 먹어 볼 것이 아니라 남의 떡도 맛볼 수 있음 맛보고, 옆집 잔디로도 놀러 가 볼 수 있음 가보는 건 어떨까, 다양한 만남과 문화에 대한 경험이 나의 인생을 좀 더 다채로운 무지갯빛으로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사십 년을 살아온 나, 뭐라 해도 한국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오늘도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어로 글을 쓰며 하루를 보낸다.

영어 공부는 이따 해야지. 조금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