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생활하면서 "Hi!"가 내게 준 의미에 대하여
미국에 와서 생활하면서 처음엔 그저 영어가 잘 안 되는 것이 어렵다고만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말과 글을 자유롭게 편하게 쓰다가 미국에 오니 당연하지만 어딜 가도 영어, 영어. 쉬운 말도 영어로 생각나지 않아 실수하고 후회하고, 집에 와서는 사전을 찾고 맞는 말인지 친구에게 물어보고 등등. 한국에서 말과 글로 먹고살았기 때문에 더 했을지도 모른다. 내게 영어가 주는 벽의 높이는 정말 높게만 느껴졌다.
날이 갈수록 이상하게도 머릿속은 점점 깨끗해졌다. 미국 생활을 하면 할수록 영어가 채워질 줄 알았는데, 정반대로 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불혹에 시작하는 영어는 결코 쉽게 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빨리 늘려야 할 것은 영어가 아닌 내 모습을 인정하는 마음이었다. '그래, 영어는 내 모국어가 아니잖아? 이 정도도 잘하는 거야.' 스스로에게 칭찬하면서 작은 성취에도 만족하고 기뻐할 줄 아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비움. 내려놓음.
종교적 관점에서나 이런 말들이 쓰이고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타지에서 생활을 할수록 이 말들이 주는 의미가 조금씩 이해되는 것만 같았다. 한국에서 초등교사를 하다가 10여 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생활하고 있는 대학 동창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우리 가족이 미국 온 지 6개월쯤 되었던 때였다. 미국 오면 좋을 줄 알았는데 영어가 안돼서 너무 힘들다고 하니,
"나는 다 내려놓은 지 오래야."
말속에 뭔가 고수(?)의 느낌이 물씬 났다. 친구의 말처럼 영어를 못 해도 괜찮다 생각하며 내려놓으니 이번에는 다른 벽이 찾아왔다. 한국에서는 한국사람으로 학교 교사로 거대한 주류 집단 속에서 살아가다가 소수집단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낯섦이 나를 쫓아다녔다.
물론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의 수는 많다. 무려 186만 명. 이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인 대전의 인구 150만 명보다도 많은 수이다. 실로 엄청난 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줄곧 인구 4~5만의 미국의 소도시에서 살고 있고 한국 사람은 몇십 명도 채 되지 않는다. 지나가다 한국말만 들려도 "한국분이세요? 정말 반가워요!" 하면서 연락처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영어도 어렵고, 한국 사람도 거의 없는 나의 미국 생활.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에서 주는 포용력을 점점 느끼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나이, 인종, 직업에 상관없이 반갑게 인사를 해 주는 많은 사람 덕분이 아니었을까. 지나가다 눈을 마주치면 모르는 사람과도 빙그레 미소 지으며 "Hi!".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언제 어디서나 "Hi!" 인사를 한다. 또한 상대방을 부를 때도 그 사람의 직업, 나이 등을 묻지 않고 그냥 이름만을 부르며 인사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몇 번 만났던 초등학교 1학년 꼬마가 나에게 씩 웃으며 너무 반갑다는 듯이,
"Hi!" 하면서 내 이름만 불렀을 때의 그 어색함이란.
처음에는 무척 어색하게만 느껴졌던 남녀노소 똑같이 "Hi!" 하면서 인사하는 문화. 선생님, 사장님, 교수님, 원장님 등등 어떠한 칭호도 없이 그냥 이름만을 부르고 인사를 나누는 캐주얼한 문화가 이제는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매주 수요일마다 만나고 있는 나의 친구 80대 중반의 할머니께도, 금요일마다 랜선으로 만나는 60대의 몬태나 친구에게도 인사할 때 나는 그저 "Hi! 그리고 이름" 이면 충분하다.
펜데믹으로 인해 너도나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처음 보는 사람과도 눈으로 인사하고 손을 살짝 들어 인사하고 주먹으로 인사하고 등등. 부담 없이 인사하는 문화는 여전히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다.
예전에 한 신문기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청소부와 주먹 인사를 나누는 사진을 보고 부러웠던 적이 있다. 격의 없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에서 위아래가 느껴지지 않는 문화의 힘이 느껴졌다. 어느 사회에나 윗사람 아랫사람은 존재한다. 하지만 윗사람이 곧 웃어른, 모셔야 할 어른이란 뜻은 아닐 것이다. 서열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나이, 직위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인사할 수 있는 문화. 이것이 미국의 힘은 아닐는지 생각해 본다. 우리 사회도 조금만 더 가벼워지는 건 어떨까?
[참고 자료]
http://m.koreatimes.com/article/20201209/134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