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not take life too seriously. You will never get out of it alive. -Elbert Hubbard-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 미국은 재미없는 천국'. 문득 생각이 나서 검색을 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동의를 하고 있는 말이었다. 항상 다이내믹한 생활과 바쁜 사람들, 다양한 가게들이 도처에 있는 한국은 너무 재미있지만 지옥과 같고, 항상 단조롭고 변화가 거의 없으며 불금도 없이 매일 칼퇴하고 집으로 향하는 미국은 너무 재미없는 천국과 같다고 한다. 똑같은 말로 된 책 제목도 찾을 수 있었다.
재미라는 말을 지우고 생각을 해 보자. 한국, 미국을 떠나서 천국과 지옥 중에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천국일 터. 아무리 재미있는 곳이어도 한국이 지옥이라는 말은 왠지 너무 씁쓸하게 들린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재미있었지만 지옥의 나라에서 무려 40년을 산 셈이다. 한국이 지옥도 아니고 미국이 천국도 아닌데 왜 이런 말이 생겨났는지, 누가 만들었지 모르겠지만 맘에 들지는 않는다.
한국은 지옥도 아니고 언제나 재미있지도 않다. 반대로 미국은 절대 천국이 아니며 항상 재미없지도 않다. 지옥과 천국을 빼고 그냥 '한국은 더 재미있고 미국은 더 재미없다'로 이해하고 싶다. 나는 미국에서 외국인, 아시아인, 불혹에 이민을 온 엄마이다. 미국 생활에 있어서 이것저것 힘든 점, 재미없는 점을 따진다면 손가락 열 개로도 모자랄 지 모르겠다. 가끔 미국에서 아시아인 이민자들이 큰 고충을 겪거나 차별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을 때 그들은 이곳이 지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마음 아픈 일이다.
미국이 한국보다 재미없다는 점에서는 망설임 없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항상 재미없다!' 라기 보다는 '재미가 없을 수 있다, 노력하지 않으면 재미도 없고 아주 심심할 수도 있다.' 정도에서 매우 동의한다. 특히, 미국 소도시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별로 없다. 아니 진짜 없다. 우리 동네에는 한국 마트도 없고, 한국 식당도 하나 없다. 한국 사람들도 우리 세 가족 포함해서 대략 열 명 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어린 아이가 있는 한국 가정은 아마도 우리뿐이다.
재미가 없을 수도 있는, 재미있는 것을 찾아보기 힘든 미국이라지만 재미있게 살고 싶다. 재미는 행복한 삶에 있어서 필수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사는 동안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는 될 수 없더라도 이렇게 저렇게 재미있게 지냈지! 주변에 재미있는 것들이 꽤 있었지!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미국에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서 좋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재미있다. 우리 가족은 죽이 참 잘 맞는다. 좋아? 물으면 요! 하고 왜? 하면 긴! 대답을 한다. 똘똘이의 대답은 '좋아요! 왜긴!'이었다.
참고로, '죽이 맞다'에서 '죽'은 먹는 죽이 아니다. 옷, 그릇을 셀 때 열 벌을 묶어 이르는 말이다. '한 죽, 두 죽' 이렇게 셀 수 있다. 따라서 9벌의 옷이 있다면 죽이 안 맞고, 10벌이 되어야 죽이 맞는 것이다. 옷 10벌은 1죽, 접시 30개는 3죽이 된다. 지금은 의미가 확대되어 '서로의 뜻이나 행동이 잘 맞을 때 쓰는 말'이 되었다.
영어로는 'hit off'라는 구동사를 써서, 'We really hit it off.'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우리 죽이 잘 맞아. 우리 호흡이 척척 맞아.'라는 의미가 된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막춤을 추기도 하고 말놀이, 말장난도 많이 하는 편이다. 수수께끼 놀이도 하고 스무고개도 하다 보면 집에서도 시간이 잘 간다. 끝말잇기를 하다가 기름, 구름 등 '름'으로 끝나는 말이 나오면 '늠름한 00'으로 말을 계속 이어 나간다. 뜬금없이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가면~~"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수박을 먹다가 박수를 치면서 "수박 먹을 땐 박수를 쳐야지!" 하면서 헐~ 웃기도 하고, 토마토를 먹다가 "앞으로 말해도 토마토, 뒤로 말해도 토마토, 똑같다, 똑같다." 한글이 야호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순서를 정할 땐 묵찌빠를 통해 민주적으로(!) 해결을 하는데 그 시간만큼은 참 진지하다.
얼마 전 똘똘이는 "간장 공장 공장장은 강공장장이고, 된장 공장 공장장은 공공장장이다."에 꽂혀서 틈만 나면 연습을 했는데 이제는 시들해졌다. 어제저녁 똘똘이 배를 문질러주면서 "엄마 손은 약손이다." 노래를 불러주니 똘똘이가 화답을 한다. "엄마 손은 똥손이다." "뭐라고? 똥손?" 피식피식 웃으며 "엄마 손은 금손이다. 금손이라고 했어요." "아~ 그랬구나. 아까 똥손이라고 들은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아마도 그럴 거예요. 엄마 손은 금손이다. 똥손 아니다." 역시 똥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 중 하나인 듯하다.
몇 달 전에 새롭게 사귄 내 또래 한국인 친구가 내게 식재료들을 주고 싶다며 연락을 해 왔다. 부부 모두 한국인인 그 친구들은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서 6개월 이상 지내다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너무 많이 사놓았던 물건들, 아직은 유통기한이 남은 물건들을 주고 싶다고 했다. 집으로 방문을 하니 쇼핑백 3개에 가득 담아 놓았다. 잡곡, 당면, 미역, 김, 매실청, 멸치, 라면 등등 다양하고 푸짐했다.조금 썼던 것도 있는데 괜찮겠냐고 묻는 친구, "당연히 너무 괜찮죠!" 약과랑 망고도 대접을 해 줘서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수다는 한국어로 해야 제맛이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남편의 운동 모임에서 알게 된 분들의 가족들과 처음으로 동네 식당에서 모임을 가졌다. 맛있는 식당, 미국 가정식 스타일의 식당이라고 해서 한껏 기대를 했는데 역시 미국 음식은 기대에 못 미칠 때가 많다. 미국인 두 가정, 자메이카 한 가정, 인도 한 가정, 그리고 우리 가정. 이렇게 모두 다섯 가정이 모였다. 참 글로벌한 모임이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 가정을 뺀 인터내셔널 두 가정들은 모두 미국에서 10~20년 이상 사신 거의(아니 이제는) 미국인 분들이었다.
원래 미국인이 아닌 분들도 모두 영어를 원어민 급으로 잘했다. 영어 대화는 늘 내게 적당한(또는 과한?) 부담을 주지만 그래도 좋은 시간이었다. 한 미국인 엄마의 이름은 지나, 초등 1학년 학부모였는데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전화번호도 묻게 되었고 어제는 문자도 주고받았다. 아는 친구가 지금은 미국인이지만 부모님이 한국인, 일본인이라며 언제 한번 같이 세 명이서 만나자고 했다. 새로운 친구들이 곧 생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