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풀리지 않은 물음
나는 평소에 정말 게으른 편이다. 청소, 설거지, 빨래 등 집안일은 매일 꾸역꾸역 하고 있다.
귀차니즘이 발동할 때면 설거지는 아침, 점심, 저녁까지 쌓여서 산더미를 이룬다.
매번 이런 식이 된다. 그때그때 설거지를 하면 쌓아둘 일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왜 항상 한꺼번에 몰아서 하게 되는 것일까. 이런 나의 게으름과 마주하자면 할 말을 잃고 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집안일에 있어서는 무엇이든 쌓여야 하게 되고, 몰아서 하게 되는 습관에 이미 나를 길들인 것을.
반면에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열일 제쳐두고 성실함의 표본인 것처럼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를테면 메타인지 부모교육, 장애인/비장애인 통합 평생교육 프로그램 수강하기 등 자기 계발과 성장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움직인다.
심지어 매일 글쓰기는 2021년 9월부터 시작하여 오늘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러한 성실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내 삶의 패턴을 돌아보자면 유독 자기 성장, 자기 계발, 성취감을 행복의 요소라고 여기며 살아오고 있다.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끝장을 보는 성격도 한몫할 것이다.
그게 두루두루 다양한 분야였더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유독 글쓰기라는 한 분야에 깊이 파고들어 나를 길들이고 있다. 매일 글쓰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기는 했을 테지만, 글쓰기처럼 이렇게 오래도록 취미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정말 글쓰기의 성실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정말 곰곰이 생각해 봤다.
정답은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우리 친정아빠는 1982년에 공기업에 입사하셔서 올해로 무려 만 41년 동안 한 직장에서 근무하고 계신다.
내년이면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이러한 친정아빠의 모습을 옆에서 봐온 탓일까.
뼛속까지 친정아빠를 닮았다고는 볼 수 없다. 나의 경우는 결혼 전 한 직장에서 2년 정도 근무하고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퇴사 수순을 밟았기에 명함도 못 내미는 수준이다.
아마도 내면 깊숙이 친정아빠의 성실함과 책임감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을 항상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아빠처럼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지. 성실하게 한 곳에 정착하는 회사 생활을 해야지.'
알게 모르게 친정아빠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계셨던 것이다.
이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제 지인을 통해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OO이가 한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시는 친정아빠의 모습을 보고 꾸준하게 글을 쓰나 보다."라는 말을 통해서 말이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라는 말이 있듯이 부모들의 올바른 삶의 자세는 자녀들에게 본이 되는 것이다. 친정아빠의 성실함을 표본 삼아 비록 모양만 내는 수준이지만, 글쓰기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임하고 있다.
누구나 부모에게 물려받은 타고난 재능은 하나씩 있을 것이다.
그 재능은 수많은 노력과 결부되어 하나의 능력으로 빛을 발한다.
친정아빠의 성실함, 친정엄마의 공감력은 나에게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셨다.
나머지는 나의 노력 여부에 따라 앞으로의 글쓰기 인생은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뚝심 있게 글쓰기에 매진할 것이다.
비록 글쓰기에 타고난 능력은 없지만, 성실함과 공감력을 무기로 매일 성장해 나가는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