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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el May 23. 2023

등대

4.16일 그날

내가 지키고 서 있는 이곳은 늘 파도가 친다. 내 키보다 더 높게 파도가 밀려올 때는 가끔씩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파도의 하얀 포말은 나를 간지럽힐 때도 있어 즐겁기도 하다. 나는 바다를 지키는 파수꾼이다.

사람들이 나를 가리키며 그렇게 부르는 소리도 들었다. 뱃사람들이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길잡이 역할도 해주는 나는.. 바다 등대이다. 나는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매일을 보내고 있고 빨간 옷을 입고 있다.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이 내 몸에 아니 내 빨간 옷에 노란 리본도 달아줬다. 물론 나는 왜인지 알고 있다.

기억해보면 2014년 4월 16일 아침 8:30분쯤 될려나? 나에게서 멀지 않은 아니 어쩌면 저 멀리서 아주 큰배가 침몰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주변으로 와서 손으로 저 먼 바다를 가리키며 애를 태우는 것이다.

나도 자세히 보니 저멀리 큰배가 한쪽으로 뉘어져있고 그주변으로 작은배 몇척, 좀있으니 하늘에 헬리콥터 두세대.. 어쩌다 배가 침몰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태우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다가 변을 당했다고 하는데 어안이 벙벙했다. 고딩이면 이제 겨우 10대. 나보다 나이도 훨씬 어린. 손주뻘일지도 모르는 어린 학생들이란다. 수학여행이면 애들 숫자도 얼마나 많을까? 가 볼 수가 없어서 나도 애가 탔었다. 한명 두명씩.. 약간씩의 사람들이 내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얼마가 지났을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울고 불고. 통곡의 소리가 들렸다. 내가 안절부절이 되었다. 아마도 부모들인 모양이다. 빨리 안 구해준다고 욕을 하기도 하고 통곡하기도 했다. 순경들도 기자들도 서울 사는 높은 사람들도 마구마구 몰려왔다. 부모들의 항의하는 소리, 또 부모들을 달래주는 높은 사람들 소리, ‘한쪽으로 비켜달라’. ‘임시 거처에서 기다려달라’고 빨간 안전바 들고 호루라기를 불며 사람들을 정리하는 순경들. 모두가 뒤섞여 있다. 비가 오는데도 부모들은 내옆에서 바다를 하염없이 쳐다보며 넋을 잃은 모습으로 주저앉아있다. 제대로 구조활동 하지 않는다고 소리치기도 한다. 기자들도 연신 마이크를 잡고 현장 상황을 설명하고 발로 뛰는 모습들이 보인다. 물로 다 그런건 아니다. 열정을 다해 제대로 정보를 전달하는 기자들도 있었지만 적당한 곳에서 흉내내는 소위 기레기라는 이들도 있었다.

몇일이 지났는데 구조된 사람들보다 죽은 학생들이 더 많단다. 삼백 몇 명이라나. 암튼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바다속에서 구조되지 못하고 시신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고 부모들은 자리를 뜰 줄 모른다. 그 모든걸 지켜보는 나는 너무 괴롭다. 이곳에 자리잡은지가 얼마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엄청 오래되었는데 이런 사고는 처음이고 내 주변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도 처음이다.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가니 처음과는 달리 차츰 나한테 오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요즘에 거의 오지 않는 것 같다.

그때 그 사고는 어찌 처리되었을까? 왜 그런 어마한 사고가 생겼을까? 원인은 알아냈들까? 그 부모들은 어찌 지낼까?...너무 많은게 궁금한데 요새는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 말고는 사람 볼일이 별로 없다. 가끔 주말엔 조금씩 오긴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그날의 사고에 대해선 말하지 않고 그냥 관광 온 듯하다.

그때는 나를 의지처인냥 생각하더니 이제는 내가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래서인지 좀은 외롭다.

사람들이 나에게 놀러와주면 좋겠다. 그때 바닷속에서 오지 못한 친구들이 이제는 바람이 되어 내곁을 스쳐 지나가며 속삭여 준다. 안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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