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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el Jan 15. 2024

내 모자는 택시

사고는 우리를 아프게 한다...작든 크든.

오늘도 이일 없이 떠돌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를 운전하는 기사의 불만에 찬 투덜거림이 자주 들렸다.

‘오늘도 허탕이네!’, ‘하~요새 왜 이렇지’...누군가와 통화하면서도 그런 불만의 소리는 일상이 된 듯 빈번하다.

오늘 아침 일찍 나와서 오전에 두 명의 손님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태워다 주고 잠시 길을 배회하는데

한통의 콜로 또 한 명의 남자 손님을 태워서 목적지로 향하는 중이었다.

사거리 삼 차선이었다. 나를 운전하는 기사는 손님과 이런저런 대화하며 신호에 따라 이차선에 차를 세웠다. 일 차선은 좌회전만, 이차선은 직진과 좌회전 둘 다 가능하고 삼 차선은 우회전만.

나도 흰색 차량이지만 일 차선에 선 차도 하얀색 차량이었다.

진하게 선팅 된 그 차에는 누가 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에게서는 기사와 손님의 티키타카가 오간다.

‘요즘 택시에 손님이 없다’ 거나 ‘물가가 너무 올라서 힘들다’하면

손님 또한 불만스러움으로 나라꼴, 세상사는 꼴에 대한 답답함에 대한 이야기를 줄 세운다.


그러다가 신호가 바뀌고 나는 운전자의 의지대로 원을 크게 그리며 좌회전을 하려고 한발 내디뎠다.

‘어라!’ 운전석 뒤쪽이 긁히는 통증과 함께 작은 흔들림이지만 순간 소름이 돋았다.

좌회전만 가능한 차선에 서 있던 진하게 썬팅 된 하얀 차량이 좌회전을 하지 않고

직진을 선택하는 바람에 나를 친 것이다. 순간 나도 그쪽도 그 자리에 멈췄다.

잠시 정적이 흐르듯 나의 기사도 그쪽 차량에서도 아무 반응이 없다.

차량의 창문이 내려지는 것도 아니고 차에서 사람이 내리는 것도 아닌 짧은 시간의 정적.

나의 기사가 차문을 열고 내렸다. 그러니 그쪽에서 사람이 내렸는데 중년의 아줌마.

나의 기사가 잠시 나를 살펴보더니 괘한네.. 하다가 뒷바퀴 위쪽이 약간 긁힌 것을 보고

‘어!, 여기가 좀 긁혔네’라고 하는 순간 아줌마는 ‘좀 봐주시면 안 되냐?’ 고 약간 엎드리는 모습을 보였다.

기사는 어이없는 듯 ‘네?’라고 아줌마 얼굴을 가만 보다가 ‘보험 처리하면 되겠네요’라고 하니

그때부터 아줌마의 반응이 반전이다.

‘아니 그쪽도 잘못한 거 아니냐?’부터 시작해서 ‘그쪽도 주의하며 운전해야 하는 것이었고

어차피 사고 나면 쌍방과실 아니냐?’라며 따지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 목소리가 톤업 되었다.

양쪽 다 어쩔 수 없이 보험회사에 전화를 한다. 나의 기사는 택시 공제에도, 개인택시 공제에도 전화한다.

그러고는 차량의 상처 난 부위부터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댄다.

먼저 나를 친 차량을 보니 그 친구는 나보다 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나의 검은 바퀴에 쓸려서인지 조수석 앞쪽 헤드라이트 쪽이 시꺼멓게 타오른 모양이다.

아마도 나의 바퀴에 아주 세게 밀착한 모양이었다. 내가 그 친구에게 괜찮은지 물으니 기운이 없다.


양쪽 다 본인들의 기본처리를 다한 듯 다른 차량들의 이동을 막은 것이 미안한지 복잡한 사거리에서 벗어나 좌회전한 후 갓길로 이동했다.

아줌마와 기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둘 다 다친데는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말했다.

잠시 후 개인택시 공제에서 사람이 오고 태웠던 손님은 다른 차량으로 바꿔서 타고 갔다.

좀 있으니 아줌마 보험회사에서 사람이 왔다.

거리가 멀어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아줌마 인상이 일그러지며 불만에 찬 모습이 보였다.

나중에 내가 치료받을 때 알게 된 것이지만 내가 완전 승리? 한 것이었다. 아니 나의 기사가. 10:빵.

아줌마는 좌회전만 가능한 차선에서 직진한 완전 불법을 저질렀고

나의 기사는 직진과 좌회전이 가능한 차선에서 좌회전한 것이니 완전 합법이라고 했다.

나는 그곳에서의 일이 마무리되고 나의 기사가 정한 정비공장으로 이동했다.

미처 그 친구에게 인사도 못한 채.


나는 타박상 정도의 상처가 났지만  상처난 쪽 이어진 부분을 다 치료하게 되는 대수술을 했다.

하루 걸린 나의 치료가 다 끝나고 나니 아무렇지 않다고 말했던 나의 기사는 **병원을 간다.

병원을 다녀와서는 휘파람을 불며 기분 좋게 나를 이끌고 다닌다.

괜찮다고 했는데 왜 병원을 갔는지? 왜 기분이 좋은지는 그가 하는 통화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오니 열심히 통화한다.

두통의 전화가 끝나고 어디로 가나 했더니 **cafe로 들어간다.

가만 보니 아줌마 보험회사 직원을 만나는 모양이었다.

나처럼 택시가 된 차량들은 사고 난 운전기사들의 얘기를 많이 듣게 된다.

나의 기사 또한 그들처럼 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프지 않은데 ‘10:빵’이라는 빌미로 병원도 가고 합의금이라는 돈도 받는단다.

아픈 나만 치료해 주면 될 텐데 멀쩡한 나의 기사 본인 잘못 아니라는 이유로 병원 가고 합의금도 받는

그것이 나는 좀 못마땅하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들이 사고 냈음에도 열받으니 우리를 발로 차며 화풀이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 친구도 ‘에이! 보험료 오르겠네’라고 하는 그 아줌마의 발길질에 차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봐달라 사정하던 아줌마와 쌍방과실이라며 목소리 높이던 아줌마가 같은 사람이고

아무렇지 않다 했던 나의 기사와 병원 가고 합의금 받는 나의 기사 역시 같은 사람의 모습이다.

좀 많이 씁쓸해진다. 그 친구도 치료 잘 받았을까? 다음에 길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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