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지나간 자리엔...

엄마와의 거리

by 순간수집가

올해는 유난히 많은 것을 돌아보게 된 해였다.
사남매 중에서도 유독 나를 아끼던 아버지를 2월에 떠나보내고,
그 빈자리를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몰라 서성거리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때 내가 선택한 건, 엄마의 곁으로 조금 더 다가가는 일이었다.
하루는 우리 집에서, 하루는 엄마 집에서 지내며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시간을 살아보았다.
그렇게 시작된 나날 속에서
엄마는 다시 웃기 시작했고,
나는 그 웃음을 오래 붙잡고 싶어졌다.

5월에는 엄마와 함께 유튜브를 시작했다.
대단한 계획은 없었다.
그저 책을 읽고, 여행을 다니고,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기록들이 누군가에게 닿았고,
엄마에게는 새로운 활력이 되었다.
“이 나이에 이런 걸 해보네.”
웃으며 말하던 엄마의 얼굴이
나는 참 좋았다.

우리는 함께 여행도 다녔다.
경주로, 울산으로, 때로는 당일치기로 온천에 다녀왔다.
덕구온천, 척산온천, 금진의 바다….
걷고, 먹고, 웃고, 다시 걷는 일상이
조용히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책을 참 좋아하신다.
80세가 넘어 시작한 독서는 어느새 1,300권을 넘겼고
손때 묻은 독서 노트도 열 권이 넘는다.
나는 그 기록들이 얼마나 귀한지 안다.
언젠가 꼭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드리고 싶다.
그건 엄마가 살아온 시간에 대한 가장 정직한 연대기이자
나의 존경을 담은 작은 선물일 것이다.

올해 받은 선물이 많다.
브런치 작가의 이름표를 달았다.
아버지가 계셨다면 누구보다 더 기뻐해 주셨을 것이다.
선물이라기 보다는 책임감과 무게감이 밀려온다.

글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책이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엄마에게 보내진 책들이다.
그 안에는 단순한 종이 묶음이 아니라
“당신의 삶이 귀하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돌아보면,
아버지가 남긴 따뜻함 위에
엄마의 단단함이 더해지고
그 사이에서 나는 천천히 나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이제 곧 또 한 해가 저문다.
내년의 나는,
엄마와 함께 나눈 일상을 한 권의 기록으로 엮고 싶다.
우리의 일상, 웃음, 여행, 그리고 견뎌온 시간들을
차분히 한 장 한 장 넘기듯이.
아마도 그 책은
‘살아낸 시간에 대한 가장 조용한 축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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