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있던 자리

그리움이 피어 오르는 첫 기일

by 순간수집가

아버지가 있던 자리

--- 그리움이 피어 오르는 첫 기일


아버지 첫 기일을 앞두고 있는

며칠 전부터,

꿈에서라도 아버지를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특별한 장면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그냥 예전처럼 앉아 계시거나, 아무 말 없이 웃고 계시는 모습이면

그것으로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휴대폰에서 아직 지우지 못한 아버지의 연락처를 가끔 들여다본다.

카톡 창도 괜히 한 번 열어본다.

보낼 말이 있어서가 아니라,

거기에 여전히 그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매일 아침 잘 있다는 안부로 보내주시던

명문장과 영상들은 더 이상 도착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 창을 닫는 순간만큼은 늘 조금 늦어진다.


오늘은 첫 제사를 준비했다.

하루 종일 장을 보고, 부산에서온 여동생과 천천히 음식을 만들었다.

칼질을 하다가 불을 줄이고, 다시 간을 보면서

잠깐 쉬는 틈마다 동생과

아버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땐 이런 걸 좋아하셨지.”

“저건 꼭 먼저 드시곤 했잖아.”

"유머감각은 누구도 따르지 못했지..."


그렇게 말하다 보면,

부엌 한가운데 잠시 아버지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배추전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살아 계셨을 때 이렇게 해드렸다면, 잘 드셨을 텐데.

그때는 왜 늘 바쁘다는 말부터 했을까...


음식은 차례대로 완성되었고,

창밖은 어두워져 갔다.

상 위에 놓인 그릇들은 평소보다 더 가지런해 보였다.

그 정돈된 모습이 오히려 마음을 더 건드렸다.


늘 거기 계실 줄 알았던 분이

이제는 하나하나 떠올려야만 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제사는 특별한 의식을 치르기보다

가족들이 모여서 아버지를 추억하는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에 살고 있어서 참석하지 못한

남동생의 마음은 어떨까? 하고 짚어 보게 되었다.


제사상을 마무리 해가며 점점

말수는 줄었고, 움직임도 느려졌다.


엄마랑 우리 부부 그리고 손주대표 큰아들,

여동생, 그렇게 자리한 첫 제사였다.


그리고 엄마와의 인연으로

아버지를 형부라고 부르던 이웃의 이모님이

막걸리를 한 병 사들고 오셔서

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시간을 함께 했다.


그리움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생활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구나, 싶었다.


미리미리 준비 하셔서 엄마께 선물한

가족사 앨범 속에서

아버지는 환하게 웃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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