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로 인해 공부에 대한 엄마의 기대가 사라지고 난 이후, 나에게 더 이상 학교라는 장소는 학문을 배우기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나에게 학교란, 친구들과 놀기 위한 놀이터였다. 그렇게 성적과는 담을 쌓고 다니다 실업계 고등학교에 간신히 입학을 했다. 중학교 못지않게 고등학교 생활도 너무 씬이 났다. 아마 인문계고에 들어갔다면 이토록 씬나진 않았을 것이다. 나의 고등학교도 친구와의 놀이터였다.
매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매점을 뛰어다녔다. 하필 5층에 위치해 있던 1학년 9반의 교실이 매점에서 제일 먼 교실인 게 뭐람. 매점도 우리 교실이 속해있는 건물이 아닌 옆 건물 지하에 있어 미친 듯이 뛰지 않으면 제 시간 맞춰올 수 없는 위치였다. 이제야 생각해보니, 그렇게라도 운동을 해라는 뜻이었을까. 그런데 그 운동은 왜 그렇게 좋았을까. 한 번도 그 뜀박질이 싫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집 앞 골목에서 눈물을 쏟으며 뛰던 그 느낌과는 차원이 달랐다.
종소리 울리기 무섭게 쏜살같이 뛰어내려 가 먹고 싶은 간식을 헐레벌떡 먹고 다시 올라왔다.
책상다리 밖으로 삐져나와있는 다리를 사시나무 떨듯이 발발 떨며 종소리가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딩동댕동’
쌤께 인사를 제대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종소리와 거의 동시에 인사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뒷 문을 열어제껴 복도 끝을 향해 미친 듯이 뛰었다.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도, 짝지가 바뀌면서 내가 뒷자리에 앉게 된 게 행운이었다.
아직도 쌩쌩하다. 그때 그 복도를 뛰어가며, 아주 활짝 웃으며 옆에서 같이 뛰고 있는 친구를 쳐다봤던 그 장면을.
우리 학교의 점심시간은 거의 체육시간을 방불케 했다. 우리 반 친구들이 뛰는 사이사이로 다른 반 친구들이 따라붙어 같이 뛰어다녔다. 아마 전국 고등학교 달리기 시합이 있었다면 1등은 당연코 우리 학교가 했으리라. 우리 반이 상당히 멀리 있었음에도 식당 도착은 거의 앞잡이로 도착했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긴다. 아흐, 너무 기대된다.
우리 학교 급식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매일 빠짐없이 나오던 튀김, 돈까스, 햄… 내가 이 시간을 안 기다릴 수 없도록 만든 원인이다. 그 누구도 나보고 먹지 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곳은 천국인가. 아무도 스트레스 주는 사람 없이 내가 먹는 모든 걸 같이 먹어줬다. 친구들이.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다.
매일 있는 연극부 연습으로 인해 집에는 항상 달이 뜬 후, 귀가를 했다.
연극부 3학년 선배 중에 연예인 채정안을 꼭 닮은 이쁜 선배가 있었다. 난 참 이쁜 사람 좋아한다. 그 선배를 "언니~ 언니~"라며 좋아라 쫓아다녔다. 근데 그 언니가 교장쌤 조카라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교내에서 연극부에 대한 지원이 상당히 좋았다. 연극부 대회 발표가 있는 날은 1학년 전교생을 수업을 빼고 우리 연극을 보러 오게 해 주셨다.
교내에 제과제빵부가 있었다. 제과제빵부에서 빵을 만든 날, 그날 빵은 어김없이 연극부 지원으로 들어왔다.
연극부 선배들이 짜장면을 그렇게도 좋아했다. 늦게까지 진행되는 연극부 연습에 저녁 메뉴는 항상 짜장면이었다. 너무 자주 먹다 보니, 짜장면만 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많이 먹었다.
나의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연극부 남자 선배들이 잘 챙겨주고 친해지니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늦게까지 연극 연습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다니던 그 긴 등교 길을 친해진 남자 선배들과 걸어서 하교했다. 서동 고개를 넘어가니 계란 만두가 보인다. 계란 속에 당면을 넣어 굽어 간장소스에 찍어먹는 음식인데, 요고요고 상당히 맛이 좋다.
하교하는 길, 동기들과 선배들과 길거리에 파는 계란 만두를 쪼그리고 앉아 야무지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