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첫 번째 기적 이후...

첫 번째 기적의 기록

by 광녀의 인생철학


뇌전증이란 나의 첫 합병증 친구는 9개월이란 세월을 나와 우리 가족을 미친 듯이 괴롭히고 나서야 나를 완전히 떠났다. 가족들은 그 충격에서 쉽사리 벗어나기 힘들어했다. 당시 기억이 없는 나는 가족의 속도 모른 채 철없이 그 상황을 온전히 잊어 갔다.


엄마가 지갑을 숨기기 시작하고 돈쭐이 막혀버린 나는 계속해서 간식을 사 먹을 돈이 필요했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해야 되는 성격이었다. 내 나이 중3. 돈을 벌기 위해 알바를 찾기 시작했다. 엄마의 지갑에 손을 댄 훔친 돈 말고, 그래도 알바로 떳떳하게 번 돈으로 당당하게 간식을 사 먹고 싶었다. 하지만 알바를 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이기도 했다.


나는 참 운이 좋다. 항상 행운이란 게 나를 따랐다.

중딩 친구들도 항상 나를 보면 신기하다고 했다.


어떻게 알게 됐는가. 자동차 대출 전단 알바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때 당시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했던 친구가 시급 2천 원을 받았다고 했다.

자동차 대출 알바팀에 전화를 걸었다. 와보라고 한다. 버스를 타고 사무실로 갔다. 가는 길이 너무 설레었다. 내 기억엔 그때 처음 시급이 2,500원 정도였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비를 받으면 엄마 지갑에서 꺼내던 만원보다는 더 큰돈일 것이 뻔했다.


'나중에 알바비 받으면 뭐하지? 만화방 가서 과자랑 컵라면 실컷 먹으면서 만화나 실컷 보고 올까?'




상상만 해도 너무 씬이 났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앉아서 기다리니 알바하러 사람들이 하나 둘 모였다. 온 몇 사람들과 간단히 설명을 듣고, 일하러 바로 가잔다. 밖으로 나가니 봉고차에 타란다.

순간 덜컹 겁이 났다. 그런데 그 겁이 1초 만에 없어졌는가. 이미 나는 그 봉고차 구석에 타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쪼맨한 게 진짜 겁도 없었다.

알바 팀장이 한 사람씩 동네를 지정해주고 손에 명함 크기의 전단지를 손에 쥐어주었다.


"일 다 끝나고 제대로 했는지 확인할 거니깐 제대로 해. 보조석 말고! 반드시 운전석에 꽂아야 돼. 알았지?"




내가 알바한다는 소문이 학교에 퍼졌다.

학교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친구들이 관심을 가지고 나에게 급 친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미니야, 니 알바한다며? 어디서 하는데? 나도 하면 안 되나?"


이 알바 덕에 순식간에 학교 내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버렸다. 친구들 몇몇을 소개해갔더니 내 시급을 3천 원으로 올려줬다.

며칠 지나 시급이 3천 원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시급을 3,500원으로 올려주신단다. 난 엄마가 아닌 타인의 말을 참 잘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타인 말 말고 그때부터 엄마 말을 잘 들었다면, 지금처럼 '세 번째 기적의 기록'이란 제목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당시 나는 전단지를 보조석 말고 운전석에 반드시 꽂아라는 말을 참 잘 지켰다.

운전석이 안쪽 구석, 몸이 들어가기 힘들 정도의 간격으로 있어도 몸을 비집고 들어가 반드시 운전석에 전단지를 꽂았다. 확인차 돌아보던 팀장님에게 아주 좋은 인상을 심어준 듯하다. 당시 중학생 시급 3.500원. 상당한 금액이었다. 알바 시작으로 1차, 높은 시급으로 2차로 학교 친구들로부터 관심을 많이 받았다.


그렇게 번 알바비로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용돈을 주시지 않아도 간식 사 먹을 돈이 충분했다. 간식도 사 먹고, 친구들이랑 놀러도 가고.


당뇨 덕에 엄마는 맵고 짠 음식을 일체 해주시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랬는가. 매운 음식은 일체 먹지 못했다. 학교 근처에 도란도란이라는 분식집이 있었다. 하교하는 길 친구들과 거기에 들리면 꼭 쫄면을 시켜 먹었다. 분명히 그 집에 쫄면 말고 다른 음식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집에서 항상 쫄면만 시켜먹었다. 나 매운 거 못 먹는다고 다른 음식 먹을게. 지금의 나야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른 음식을 시켰을 텐데 왜 나도 궃이 그 매운 쫄면을 먹었을까. 친구들 따라 쫄면을 먹으면서 "쓰햐~ 씁~ 햐 아 매워" 하면서 옆에 큰 물통이 꽂혀 있던 정수기 물을 혼자 다 비워내듯 마시며 겨겨우 쫄면 한 그릇을 비워냈다. 친구들은 그 집 쫄면이 맛있다고 먹었지만 솔직히 나는 그 쫄면의 맛이 어떠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저 아주 매운맛이었다는 기억뿐이다. 그저 나는 친구들과 잔소리 없이, 돈 걱정 없이, 무언가를 먹고 있다는 그 사실이 행복했다. 맛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먹는 것 자체가 나에겐 행복이었다. 또 뭐 먹으러 가지? 주머니가 두둑하니 먹고 싶은 게 생기면 사 먹으면 그만이었다.


당뇨 덕에 몸은 좀 불편했지만, 돈이란 게 이런 건가.

주머니에 돈이 생기니 나름 살 만했다. 이런 인생도.




고등학생이 되었다.


내 취미는 가요댄스였다.

초등학생 때 가수가 춤인 친구 집에 가면 늘 춤을 가르쳐줬다. 영턱스클럽의 '정', 에쵸티의 '캔디'


그렇게 댄스에 관심이 생긴 나는 가요톱텐에 댄스가수가 나오면 테이프에 비디오 녹화를 했다. 녹화 테이프를 돌려보고 돌려보고. 그렇게 똑같이 춤을 따고 어두워진 창문을 거울삼아 집에서만 춤을 췄다.


동아리 활동에 한 번 맛을 봤던 나는 고등학교 들어가면 반드시 댄스동아리를 들어갈 거라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학교 첫 연극 오디션에서 주인공 역할을 뺏긴 게 분했나 보다. 그 원이 또 맺혔는가. 연극부 들어가야겠다. 무슨 나는 왜 이렇게 원한에 맺히는 일에 사무쳤는가. 항상 원 맺히는 게 있으면 반드시 풀어야 하는 성미가 있었나 보다. 연극부에 들어가야겠다고 하니 인상 무섭게 생긴 내 뒷자리에 앉아 있는 얼굴 이뿌장한 친구가 자기도 연극부 들어갈까 고민 중이라고 한다. 난 이쁜 친구들을 참말로 좋아했다. 왠지 이쁜 친구랑 친해져서 자주 보게 되면 나도 이뻐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친구가 마음이 바뀔까 얼른 꼬셨다.

"가자. 가자. 오디션 보러 같이 가자."

그렇게 그 친구와 연극부 오디션에 참가했다.




연극부 오디션,


일주일 굶다가 짜장면을 먹는데 그 안에서 바퀴벌레가 나온 장면을 연기하란다.

허겁지겁 미친 듯이 먹다가 바퀴벌레 보고 기겁하며 소리를 꽥 지르는 연기를 했다. 나의 괴성에 놀란 선배들이 잠시 주춤하더니 곧 웃음을 터뜨렸다.

실제로 바퀴벌레. 나의 혐오 1순위이다. 늘 주택에서 거주했던 나는 바퀴벌레들과 한 지붕 한가족이었다. 17년을 바퀴벌레와 동거동락을 해왔지만 친해지지 못했다. 그런 바퀴벌레의 덕을 이렇게 보다니!


오디션 결과가 나왔다. 합격이다. 오디션 점수와 상관없이 오디션 본 친구들은 다 합격시켜 주는 것 같았다. 연극부 합격자 동기들과 첫 모임을 가졌다. 오디션에 참가했던 선배들이 나를 '에이스'라고 불렀다. 오디션 점수가 가장 높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오디션 복은 타고난 것 같다. 나에게 하늘은 건강 복을 가져가고 오디션 복을 주셨나 보다. 선배들의 기대치와 함께 1학년 연극부장이 되었다. 책임을 맡으니 연극부 활동이 더욱 재미있어졌다.




고등학교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날 좋고 따뜻한 봄날.

급성 폐렴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다.


엄마는 우리 두 남매를 홀로 키워내시게 되었다. 요리에 소질이 있으셨던 엄마는 가정을 책임지시기 위해 식당에 출근을 하시게 되었다. 횟집이라 야간 근무를 하셨다. 매일 있는 연극 연습으로 매일 집에 늦게 가도 야단맞을 일이 없었다. 집에 도착 후, 엄마가 퇴근하시는 새벽까지 집에서 맘껏 간식을 먹어도 야단맞을 일이 없어졌다. 중학생 때 골목 구석에서 먹었던, 한가득 과자가 가득했던 검은 봉지는 귀가하는 내 손에 쥐어져 집으로 맘 편히 같이 들어가게 되었다. 한가득 가득 찬 까만 봉지는 아주 마음 편하게, 골목 구석이 아닌 집 안방에서 동생과 야무지게 또 나눠먹었다.

고등학생이 된 후, 알바도 자연스레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의 용돈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내 간식 배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핑곗거리가 많아졌다. 학급 급식비, 우유비, 참고서비 등등 조심씩 부풀려 말하고 받은 금액은 학교에 제출 후 내 배를 채워줄 간식비로 충당했다. 학교로 향하는 길에 있던 마트를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 마치고 하교하는 길, 나는 항상 친구들과 분식점에 있었다.

수업시간이 끝날 무렵, 종 치기 5분 전.

미친 듯이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1분 전, 준비태세로 내 한쪽 다리가 책상다리 밖을 향하기 시작한다.


'띵동댕동'


"수고하셨습니다"

쌤께 인사하기 무섭게, 생각보다 멀리 있었던 매점으로 매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쏜살같이 뛰어다녔다.

그렇게 나는, 당뇨환자이면서도 환자가 아닌 듯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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