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뇌전증, 그 첫 번째 기적의 기록

첫 번째 기적의 기록

by 광녀의 인생철학


이런 뇌전증의 현상이 계속되면서, 동생은 불 꺼진 방에 혼자 자지 못하게 되었다. 늘 엄마 품에 안겨야만 겨우 잠을 잘 수 있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머지않아, 우연히 엄마의 원망으로 가득 찬 나의 일기장을 보게 된 엄마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한 번도 나에게 섭섭함을 표현하지 않았던 엄마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어쩜 이렇게도 엄마에게 험한 욕을 할 수 있냐"라고

나를 원망하며 우셨다. 엄마 옆에 찢어진 종이 조각이 보였다. 조심스레 들어 찢어진 종이 조각에 적힌 내용을 살펴봤다. 충격이다. 내가 쓰긴 했지만, 그때 내 심정이야 어쨌든 다시 봐도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때 일기장을 쓰면서 내 감정도 사그라들었는가. 왜 이토록 심한 욕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 그저 찢어진 일기장 조각을 집어 든 내 양심이 미친 듯이 찔렸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봐도 충격이었으니까.


엄마는 밥도 차려주지 않고 이불속에 드러누워 계시기만 했다. 너무 미안했다.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셨던 엄마였기에 지금 보여주는 엄마의 행동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그동안 나도 엄마 때문에 힘들었잖아?'

그냥 내 행동이 어쩔 수 없었다며 합리화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가 너무 충격받은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누워있는 엄마 머리맡으로 가서 아주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미안…”

머지않아 엄마는 다시 기운을 차리셨다. 그 충격을 어떻게 헤쳐 나가셨는지 모르겠다. 그냥 이 상황이 길어지지 않아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이후로 엄마도, 나도 그 일기장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나의 발작도 종종 중환자실에서 눈 뜨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고, 가족들도 나도, 그 발작 증상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어느 날, 학교를 갔다.

친구가 나를 찾았다.

“미니야, 학교에 연극부가 생겼다는데 같이 가볼래?”

“연극부?”


어릴 때부터 선머슴 같은 성격에 골목대장을 도맡아 하고 있었지만,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건 젬병이었다. 음악시간, 친구들 앞에서 노래 부를 때는 여김 없이 내 목소리에 지진이 났다. 수업시간, 쌤이 일어나서 책 읽어라고 시키셔도 내 목소리는 강진이 났다. 기어가는 목소리 때문에 제발 큰 소리로 읽어라고 야단맞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었을까? 친구가 연극부 가보자는 이야기에 거부감이 없었다. 그냥 뭔가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친구가 가자는 말에 1초의 망설임 없이 친구를 따라나섰다.(인연이란 게 참 재미있다. 20년이 지난 후, 이 친구는 나의 인생의 고난에 엄청난 도움을 주는 인연이 되어있다) 연극부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모였다. 곧 있을 연극 발표회에서 난타극을 한다고 한다. 아직 교내에서 연극부 담당 쌤이 지정되지 않아 배역을 정하기 위한 오디션을 우리끼리 진행했다.

세상에나, 이럴 수가.

내가 주인공이 되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째지는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와, 친구들이 주목받는 상황에 책을 읽어라 시켜도, 노래를 시켜도, 나에게 주목되는 상황을 견딜 수 없을 만큼 떨었던 내가 연극부라는 생소한 동아리 대회에서 첫 주인공역을 맡게 된 것이다. 진짜 내 생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동아리 활동이 시작이 되었다.

아직 교내 연극부를 담당해주실 쌤이 지정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부 강사님이 투입되셨다. 우리 연극 연습 진행상황에 대해 잘 몰랐던 외부 강사께서 대본을 보시자마자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좀 잘 노는 사람이 누구야?”

라고 여쭤보셨다. ​

평소 장난을 잘 치던 친구 한 명에게 다들 손가락이 향했다.


“이 친구요”

“그럼 이 친구가 주인공 하구…”

한 순간에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이 생겨 버렸다. 순간 멈칫하던 친구들이 내 눈치를 봤다. 그냥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극부를 담당하러 오신 강사분의 말을 따르는 게 순리인 것 같았다. 좀 어이없긴 했지만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난타극이지 않은가. 난타극이면 잘 노는 친구가 주인공 하는 게 맞는 거 같았다. 허무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그리 기분 나쁘진 않았다.

그렇게 주인공 자리를 내어주고 난타극 연극 연습이 시작되었다. 첫 오디션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아서 그랬을까. 아님 연극 연습 자체가 재미있어서였을까. 이 연극부 활동이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연극 대회 날짜가 다가올수록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자연히 늦어졌다. 밤 10시, 해가 다 진 어두컴컴한 밤이 되어서야 집에 가게 되는 상황이 잦아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에게 참말로 감사하다. 엄마는 당시 내가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반대하시지 않으셨다. 공부하라 잔소리 하시지도 않으셨다.


소아당뇨 걸리기 전, 초등학생 시절엔 다르셨다. 학원을 보내셨다. 시험 성적이 나오면 성적표를 항상 찾으셨고, 성적이 떨어지면 야단도 치셨다. 엄마한테 들킬까 봐 성적표를 찢어 버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소아당뇨라는 친구와 함께 지내게 되면서 엄마로부터 공부에 대한 잔소리가 사라졌다. 이때부터 인 것 같다.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반대하시지 않고 그저 말없이 다 하도록 지원해주신 것, 이때 연극부 활동을 시작하면서 인 것 같다. 연극 연습 끝나고 밤늦게 귀가해도 야단 한 번 치신 적이 없었다. 엄마의 잔소리 없이 밤늦게 까지 진행된 난타극 연극 연습이 너무나도 씬나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1년 즈음 지나 중3이 되었다. 그리고 2학기가 되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중환자실에서 눈을 뜨는 현상도 지난 1년간 없었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엄마, 내 간질 안 한 지 좀 오래되지 않았나?"


"어? 그러네?"

절대 빠뜨리면 안 된다는 그 약을 먹은 기억이 없다. 약을 먹지 않고 내가 가진 이 병과 이 고통에 시달리며 엄마 탓, 당뇨 탓, 이 모든 상황을 탓하며 극도로 치솟는 스트레스를 버티며 살아왔다.

그 스트레스의 크기만큼 심했던 발작 증세가 동아리 활동과 동시에 함께 자연스레 사라진 것이다.


나는 약을 먹은 것이 아니다. 치료받는다고 어딜 다닌 적도 없었다. 그저 씬나게 동아리 활동에 빠져 지내면서 '나는 당뇨환자다’라는 생각이 없어졌을 뿐이다. 아니다. 없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냥 연극부 활동이 재미있어 내가 불행하다 는 인식을 할 시간이 없었던 것.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상황이 나에게서 간질(뇌전증)이라는 친구를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몇 년 뒤, 당뇨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게 됐을 때, 뇌파검사를 한 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쌤. 저 중학생 때 간질을 좀 심하게 했었어요. 요즘 안 한 지 좀 됐는데 뇌파검사 한번 해볼 수 있어요?”


그렇게 뇌파검사가 진행되었다. 결과가 나왔다.

“와. 기적이네요. 약도 안 먹었다 그랬죠? 간질은 원래 치유법이 없어요. 낫는 병이 아닌데 뇌파 정상이 나왔어요. 기적이네요”

내가 첫 번째로 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은 순간이었다.


엄마는 나의 발작 순간의 충격이 엄청나게 컸던 모양이다. 당시 뇌파검사 정상이라는 진단서가 버젓이 있는데도 내가 의사 쌤으로부터 "기적이다. 나았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고 한다. 내가 스무 살인 성인이 된 이후에도 늘 뇌전증 걱정을 하시고 계셨다는 것을 이십 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나도 이 사건 이후 알게 된 것 같다.

나의 첫 번째 합병증인 간질(뇌전증)의 원인을.


스트레스!


발작이 심했던 당시 나의 스트레스는 엄청났다.

내가 당뇨환자라는 사실도. 당뇨 때문에 피곤함에 찌들어 사는 하루하루도. 엄마와 부딪히는 모든 상황도.

우리 집안에 사촌 언니, 오빠, 동생들을 통틀어 후손이 이렇게도 많은데 왜 굳이 내가 이 병에 걸려서?


늘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 스트레스라는 놈이 얼마나 무서운 놈이었는지를 간질을 경험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치료법이 없는 불치병의 치료법은

마음이 최고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병원이나 한의원을 가면

"만병의 원인은 스트레스입니다."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다.

"병원 가면 맨날 스트레스 때문이라 칸다."


그러나 나는 이 내 생각과 마음이 내 몸을 얼마나 지배하는지.

정말 뼈저리게, 아주 큰 대가를 치르고서 알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이다.


‘나는 환자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해피바이러스’라는 별명을 지닐 정도로 초 긍정적인 에너지를 지닌 사람으로 나는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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