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의 쨍한 햇살의 느껴졌다. 둘러보니 집은 아니다. 휴지인지 거즈인지 모를 무언가가내 입에 물려 있다. 입 안이 너무 얼얼했다.
‘뭐지? 이 상황은?’
뭐가 불그스름한 게 눈에 보였다. 고개를 숙여 상의를 보았다. 온통 피범벅이다.
‘이 피는 또 뭐야?’
갈증이 너무 났다. 목이 타 들어갈 것만 같았다.
상황을 보니 병원이다.
간호사 쌤들이 바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상황을 알아보기 이전에 이 미칠 듯한 갈증부터 해결해야만 했다. 간호사 쌤을 불렀다.
“언니. 저 물 좀 주세요. 목이 너무 말라요.”
“깨어났어요? 정신 좀 들어요?”
간호사 쌤이 나의 안부를 물은 후, 물이 든 컵이 아닌 물을 묻힌 거즈를 들고 왔다.
“지금 물 마시면 안 돼요. 거즈에 물 묻혀 줄 테니깐 목만 살짝 축여요.” 그렇게 물 거즈를 입에 물려준다.
“여기 어디예요? 엄마는요? 엄마 좀 불러주세요.”
“여기 중환자실이라 지금은 안돼요. 보호자 면회시간이 따로 있어서 면회시간에 어머니 불러드릴게요.”
중환자실? 병원에는 자주 입원을 했던 터라 입원실은 익숙했지만, 중환자실이라고? 내가 왜?
또다시 내 눈에 피범벅이 되어 있는 상의가 보였다.
‘이 피는 뭐지?’
이 피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아파트에서 뛰어내리지 않았다.
죽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간이 클 데로 컸던 나는 무서움이란 게 없었다.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이 힘든 인생을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뛰어내리지 않았던 이유는 죽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운이 아주 좋아 뛰어내린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리면 다행인데, 혹시나 지독 시리 운이 안 좋아 뛰어내렸는데 죽지 못하고 한 평생 불구로 살아가게 될까 봐 …
그게 싫었다.
내가 왜 피가 묻은 옷과 함께 중환자실에서 눈을 뜨게 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상황 판단하고 있기에는 미친 듯이 타 들어가는 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간호사 언니를 다시 불렀다.
“언니. 저 갈증 너무 심해요. 물 좀 주세요. 제발.”
나의 이야기를 들은 간호사 쌤이 또다시 물이 묻힌 거즈를 입에 물려줬다.
“미니 씨, 갈증 나도 참아야 돼요. 지금 물도 마시면 안 돼요. 조금만 견뎌요.”
어쩔 수 없이 입에 물린 거즈를 쥐어짜 듯 쪽쪽 빨아 당겼다. 그러나 나의 갈증은 없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생떼를 쓰면 못 견디고 주지 않을까?
미친 듯이 울부 짓기 시작했다.
“목이 타 들어갈 것 같다고요!!! 물 좀 달라고요”
잠시 후 눈을 떴다. 그렇게 울부 짓다 지쳐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눈을 뜨니 엄마 얼굴이 보였다. 엄마 얼굴이 근심 걱정으로 가득하면서도 깨어난 나를 보고 살짝 안심도 하는 듯한 표정이다.
“미니야, 괜찮나?”
“어 괜찮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중환자실에 물도 못 마시고 누워있어야 되는지 너무나도 궁금했지만, 또 엄마 걱정시키고 이렇게 병원에 오게 만들었다는 자체가 미안해서 물어보지도 못했다.
엄마 잠깐 보고,
아빠 잠깐 보고,
동생은 당시 너무 어려 동생은 못 본 것 같다. 내 기억엔.
그렇게 짧은 면회 시간이 끝나고 혼자 다시 중환자실에 남겨졌다. 중환자실이란 게 참 희한했다. 내 정신은 이미 멀쩡한데, 중환자실이라는 이유로 화장실도 보내주지 않았다. 똥이고 오줌이고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하면 환자용 소변기를 가져다주면서 침대 위에서 해결하면 된다면서 커튼을 쳐줬다. 세상에나. 똥오줌을 침대 위에서? 처음에는 그 상황이 익숙하지 않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익숙해지니 술술 잘 나왔다. 이 미친 적응력이란.
얼마나 지났을까. 중환자실에서 입원실로 옮겨졌다. 침대에 누워 중환자실에서 나오는 나를 따라 엄마, 아빠, 동생이 따라붙었다. 다들 엄청 근심으로 가득한 얼굴이다. 그냥 가족들 얼굴 보기가 무안했다. 고개를 얼른 돌렸다.
몇 시간인지, 며칠인지.(입원 횟수가 워낙 많아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지난 후, 퇴원하면서 약을 쥐어주던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다.
“밥은 굶어도 이 약은 절대 빼뜨리면 안 됩니다.”하시며 새끼손톱보다 조금 더 작은 알약을 한 뭉탱이 챙겨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