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셔 정신은 잠에서 깨어났지만 내 육신은 깨어나지 못한 듯하다. 입이 쩍쩍 갈라지고 온 몸은 뻗뻗하게 굳어 움직이기가 너무 힘들다. 고혈당이 분명하다. 밤새 높은 혈당치로 몸이 해독도 못한 채 엄청 고생을 한 모양이다. 당뇨로 고생한 지 18년째, 이제는 너무 익숙한 환경이라 싫고 말고도 없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일어나 양치하고 물 한 컵 벌컥 마시고 혈당을 쟀다. 521… 역시다. 갈증이 심해 입맛도 없다. 얼른 냉장고에서 에피드라 인슐린 주사를 챙겨 와 맞았다. ‘15 ‘단위.
이것도 소아당뇨 환자일 때 일이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똑같은 상황에서 갈증이 아무리 심하게 나도 이제는 물도 못 마시는 상황이 되었다. 소아당뇨 25년째, 소아당뇨와 친구처럼 딸려 온 만성신부전으로 혈액투석 7년 차. 이제는 고혈당에 갈증 나고 몸이 굳더라도 물을 마시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살짝 목만 젖을 정도로 수분 보충하고 얼른 인슐린 주사를 맞는다. 인슐린 액이 나의 혈당을 어느 정도 내려줄 때까지 극도로 심한 갈증을 참고 또 참아내야 한다. 인내심 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던 내가 이 두 녀석들 덕에 엄청난 인내심이 생긴 건 아이러니하다.
그렇다.
나는 환자다.
어려서부터 겪어온 소아당뇨와 만성신부전으로 주 3회 혈액투석을 받고 있는 환자다.
지금은 현대병이라 많이 알려져 있지만, 1996년 당시, 당뇨는 아주 생소한 단어였다.
날씨가 추워지던 어느 날, 갑자기 갈증이 너무 나기 시작했다. 물을 엄청 마시기 시작했고, 소변이 너무 자주 내려워 30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가기 시작했다.
실제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병마와 많이 싸워왔다. 그 병마들 중에 오줌소태라는 친구도 있었다. 그때 내 나이 5살. 오줌소태는 금방이라도 나올 것 마냥 엄청나게 급해 막상 화장실을 가면 아주 찌릿한 통증과 함께 소변은 1방울 정도만 나오는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놈이었다. 이렇듯 엄마는 내 친구로 와 있는 수많은 병마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셨다. 그러나 이번 건은 확실히 달랐다. 오줌소태의 증상이 아닌 실제로 소변이 많이 나오면서 30분에 한 번꼴로 화장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상함을 느낀 엄마의 손을 잡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의사 쌤이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거리시며 말을 이어 가셨다.
“소아당뇨인 것 같습니다.”
‘소아당뇨? 소아당뇨가 뭐지?’
처음 들어본 생소한 단어라 이게 뭔지 궁금했다. 엄마를 슬쩍 봤는데 엄마는 이게 뭔지 짐작을 하는 눈치였다. 뒤늦게 들은 이야기이지만, 얼마 전 테레비에서 당뇨에 대해 방영한 프로그램을 보셔서 알고 계셨다 하셨다.
“가족력도 없는데, 왜 이 아이한테 이런 병이 생겼는지 잘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이 아이로 인해 발병이 된 것 같습니다. 진단서를 써 드릴 테니 큰 병원에 가보셔야겠어요.”
엄마와 진단서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당뇨?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저 감기처럼 잠깐 앓다 괜찮아지는 병인 줄 알았다.
‘앗싸. 당분간 당뇨 덕에 엄마의 사랑을 또 받을 수 있겠구나. 오예’
몰랐다. 이 당뇨라는 녀석이 나의 인생을 완전 뒤바뀌게 만들 줄은 이때는 몰랐다. 이게 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아플 때마다 엄마의 간호를 받던 게 엄마가 나를 사랑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엄마의 속도 모른 채 마냥 좋았다. 이번에도 그냥 그렇게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받다가 끝날 일일 줄로만 알았다.
진단서를 받고 들어온 엄마가 이상했다. 집에 있던 내가 좋아하는 간식과 과자들을 모조리 치우기 시작했다.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과자를 모조리 치우고 있는 엄마에게 감자 샐러드 먹고 싶다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엄마가 먹지 못하게 막았다. 이상하다는 느낌이 계속 들긴 했지만, ‘당뇨 때문인갑따’ 싶어 낫고 나서 먹지 뭐, 하고 참았다.
부산대학병원에 입원을 했다. 태어나서 많이 아파봤지만 입원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8인실 쯤 되는 소아청소년 병실이었다. 국민학교(나는 국민학교 입학생, 초등학교 졸업생이다) 입학 후, 상복이 없는 나는 졸업할 때 개근상이라도 꼭 받고 싶어 한 번도 학교를 빠진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학교를 빠진 셈이다. 학교도 안 가고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2주를 지냈다. 그렇게 학교를 가지 않고 지내는 게 익숙하지 않았지만 금세 적응이 되었다. 그렇게 2주를 보내고 퇴원할 때가 되었다. 간호사 쌤이 엄마와 나를 간호실로 불렀다. 어리둥절하며 간호실에 들어서니 대뜸 나보고 의자에 앉아란다. 시키는 대로 의자에 앉았다. 2주간 간호사 쌤들이 놓아주었던 인슐린 주사기를 엄마 손에 쥐어준다.
“이제 퇴원하시고 나면 어머니께서 주사 놔주셔야 돼요. 저희가 봐 드릴 테니 한번 놔 보시겠어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덜컹 겁이 났다. 주사기를 받아 드는 엄마의 손이 수전증 마냥 벌벌벌 떠는 게 느껴졌다. 엄마는 벌벌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키고 나의 오른쪽 허벅지에 침을 넣었다. 인슐린 액이 다 들어간 주사침과 함께 피가 흘러나왔다. 엄마와 나는 참던 울음을 동시에 터뜨렸다.
“간호사 쌤들이 놓을 땐 피 안 났는데, 잘못된 거 아니가”
울고 불고 난리를 피웠다. 엄마도 놀라 덩달아 소리 내어 울었다. 아마 간호사 쌤들이 우리 둘 진정시킨다고 식겁하지 않았을까. 잘못된 거 아니라고 피가 나기도 한다는 간호사 쌤 이야기에 겨우 진정했다. 그렇게 나는 감기와 같은 병인 줄만 알았던 당뇨라는 친구와 인슐린 주사와 함께 퇴원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