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 인한 합병증으로 혈액 투석 7년 차에 접어들었고, 나를 거쳐간 합병증만 이번이 세 번 째이다.
그동안 나의 인생은 이러했다. 이 이유가 “나이 어린 네가 뭘 알아?”라고 아무도 내게 하지 못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어린 나이라도 남들이 경험하지 못할 일들을 수도 없이 경험하고 자라왔다. 내 인생은 왜 남들처럼 평범을 거부하고 살게 됐을까. 아주 어린 시절부터 “미니 인사성도 바르고 참 착하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대학 시절 동기로부터 “미니가 우리 동기 중에 제일 착한 것 같다.”라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다. 그런데 왜? 왜 난 이토록 힘겨운 인생살이를 하게 된 것일까.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이유를 찾고 싶었다. 대부분의 내 인생은 그 이유를 찾는 곳에 집중이 되어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드디어 그 이유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친구들이 나의 이야기를 사람들과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전직 PD였던 재능도 살리고, 글도 쓰고. 이런 나의 인생 경험이 분명히 다른 환자들 혹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꼭 시작해라고 한다.
7년 전 겨울, 나에게 온 세 번째 합병증으로 다니던 회사를 갑작스레 그만두게 되었다. 실업급여 신청될 거라고 서류받으러 오라는 팀장님의 연락을 받고 퇴사 후 몇 개월 만에 회사를 찾았다. 직원 전용 엘리베이터에서 타 부서 직원을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 그 직원이 그랬다.
“갑자기 그만뒀다는 이야기 듣고 진짜 너무 놀랬어요. 건강은요? 괜찮으세요? 우리 부서 사람들이 ‘해피바이러스 건강 때문에 일 그만뒀대’라면서 다들 너무 아쉬워했어요”라고 이야기를 전해줬다.
해피바이러스? 나와 같이 근무한 적도 없는 다른 부서 사람들이 나를 ‘해피바이러스’라고 부른다는 것을 처음 들은 순간이었다.
“제가요? 제가 왜 해피바이러스예요?” 웃으며 물으니,
“다들 퇴근 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힘들어서 웃지도 못하고 그러는데 미니 씨는 한 번도 힘든 내색 본 적이 없대요. 다들. 매 번 만날 때마다 밝게 웃고 그래서 다들 미니 씨를 해피바이러스라고 불렀어요.”
몰랐다. 내가 그런 줄은.
그러고 보니 항상 친구들이 고민이 생기면 꼭 나에게 전화가 왔다. 기분 나쁜 일이 생겨도 꼭 나를 찾았다. 힘들 때마다, 고민이 생길 때마다,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친구들은 늘 나를 찾았다. 그게 내가 가진 행복하고 긍정적인 기운 때문이라는 것을 이때쯤 알게 되었다.
“미니 니는 참 부럽다. 그런 지병을 안고 있으면서도 전혀 내색도 안 하고, 늘 밝고, 긍정적이고.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런 친구도 있었다.
“미니야. 니 꼭 해라. 유튜브. 니가 경험했던 것들이 분명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이 많이 될 꺼야”
“재능기부도 좋지만, 니 재능 살리는 것도 해봐”
“니 시작하면 분명 니를 좋아하는 마니아 층이 있다. 준비 다돼서 할라카지 말고 그냥 시작하는 거다. 니는 준비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다 완성해서 할라카지 말고 그냥 시작해봐 봐”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지만, 나의 극심한 귀차니즘이 매일 내 발목을 붙잡았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나의 인생은 그리 길지는 않다. 그렇다고 짧지도 않다. 어린 나이에 비해, 너무 어릴 때부터 경험해 온 그 수많은 사건들… 결코 짧은 인생은 아니었다.
그 숱한 경험이 내 글의 기반이다.
건강을 잃은 환자의 삶, 병원에서 손 쓸 수 없는 불치병에 대한 자연치유, 내가 왜 이토록 힘든 삶을 살게 됐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가게 된 나의 인생 여정, 그리고 철학.
나의 [광녀의 인생철학]은 아주 주관적인 나의 인생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러니 ‘아, 이 사람은 이런 인생을 살았고, 이렇게 깨닫고 고쳐나가고 있구나.’하고 그저 공감해주고 넘어가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