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마음을 열어라!
그 마음속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
지금 그대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 중간에 위치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얻은 것처럼 행복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고통스럽다.
세상, 그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그대의 마음이 천국으로 가는지 혹은 지옥으로 가는지에 따라 세상의 모습이 달리 보이는 것이다.
그대의 삶은 천국에 대한 동경과 지옥에 대한 공포에 의해 이루어진다.
점차 성장하면서 그대는 인생의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그대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일에 동요하지 않은 것이 지혜라는 사실을 배운다.
시간이 갈수록 인생은 더욱 복잡하게 되지만 마치 산의 정상에 서면 계곡과 구름이 발아래 보이듯이 세상을 보는 지혜도 한층 크고 깊어진다.
지혜라는 작은 그릇에 세상을 담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삶이 그대에게 주는 지혜를 통해 항상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다면 반드시 행복을 찾게 될 것이다.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에서의 천국과 지옥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지옥이 싫지만 연속되었던 것은 나 스스로 그 굴속으로 걸어 들어갔기 때문이다.
생각이 다 생각은 아닌 것이라는 뜻인 것 같다.
생각 끝에 있는 감정에 매달려 그것이 생각이라 부여잡아 끝을 달리고 있었다. 그것은 사유가 아니다.
사유하는 것은 나를 좋은 방향으로 성장시키는 ‘선’으로 가는 것이다. 그쪽으로 생각하고 답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그냥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이 사유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뉴스에 나오는 사건, 아님 나와 상관없는 사건을 본다면, 처음은 마음 아파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생각 안 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랑 연관된 사건이라면 나의 감정이 들어가게 된다. 나의 생각이 어디로 흘러가냐에 따라 나의 삶의 질도 달라진다.
천국에 대한 동경이 너무 커서 괴로울 수도 지옥에 대한 공포를 잘 이겨내 좋은 방향으로 바뀌게 만들 수도 있다. 아마 나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나를 보면서 동경하는 것이 괴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공포와 두려움은 처음 시도하는 것만 잘 넘기면 그런 감정이 사라지고 뿌듯함이 남는다는 것도 알았다.
책을 읽으며 글을 쓰며 나는 성장하고 있다. 그래서 좋다.
그다음은 어떤 꿈을 키울까?
내 성장과 동시에 세상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분명 내가 해내야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가만히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며 기다려 보기로 한다.
‘지혜’는 너무 광범위해서 나에게는 너무 큰 산 같은 느낌이다.
평생을 파도 파도 다 못 알아보고 죽을 것 같은 느낌.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해!’라는 말에는 너무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상황을 다각적으로 볼 수 있는 눈도 있어야 하고, 선으로 향한 방향이 어디인지 생각해야 하고 자연스럽게 가는 방향인지 뭔가 부자연스럽지 않은지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잘 이야기하는 ‘무난하게 잘 처리한다’는 것은 어떤 일이 소란 없이 처리된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지혜롭지 못한 방향인 ‘악’으로 가는 방향으로 처리되는 과정일 수도 있다.
인생이 다층 다각적으로 하나하나 세세하게 연결되어 복잡해 보이지만 떨어져서 보면 복잡함은 사라지고 성냥갑같이 단순함만 남는다.
그 단순함, 복잡함에서 다 떨어지고 남은 알맹이만 잘 이해해서 실천한다면 그것이 지혜이다.
단순한 한 가지의 반복 속에 넓이도 깊이도 다 들어있다.
나는 나를 작은 종지그릇에 매번 비유했다. 그런데 이 문구에는 지혜가 작은 그릇이다. 근데 다 세상을 다 담을 수 있단다.
작은 그릇에 세상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세상이 작은 그릇 안에 들어오게 작아지는 걸까?
아니 지혜가 ‘나’이고 ‘나’가 지혜가 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지혜와 내가 일치되는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지혜와 내가 일치되는 순간, 그 순간이 연속적으로 계속된다면 불행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아님 그런 것이 무관해지는 마음이 되는 것일까?
아직 지혜를 갖추지 않았기에 일어날 일을 상상에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