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은 나의 감사조건
누와 정에서 힐링 포인트를 담아본다.
힐링(healing)은 치유, 고치는, 회복을 뜻하는데 때론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힐링이 필요할 때가 있다. 쫓기듯 달려온 일상에서 벗어나 쉼표 하나 찍고 싶을 때 훌쩍 떠나보고 싶다. 복잡 다양한 속세를 잠시 벗어나 자연에서 마음을 쉬고 학문을 논하고 창조적 기상을 키웠던 선비들의 고고한 숨결과 흔적을 찾아서 잠시 여유와 힐링을 느끼기에는 누와 정이 제격인 듯하다.
바람과 달의 주인이 되는 곳, 산수풍경, 선비의 마음자리를 물들인 곳이다.
한국의 누각과 정자는 자연경관 감상과 휴식을 위한 공간이며 동시에 선비들이 공유한 정신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누각과 정자를 살펴보는 일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자연 속 누정을 감상하는 심미적 만족과 더불어 선비들의 사상과 문화를 읽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누각’ 혹은 ‘정자’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려지는 풍경이 있다. 고즈넉한 산수풍경 속에 자리한 단아한 목조 건물. 사방이 활연히 트인 그 모습을 떠올리면 절로 마음이 여유롭고 편안해진다. 누정은 우리에게 자연 속에 자리한 옛 선조들의 여유 있는 삶의 흔적으로 기억된다.
누와 정은 자연경관 감상과 휴식을 주된 목적으로 지어진 간소한 목조 건물이다. 하지만 어디에 어떤 용도로 지어졌는지, 이름을 갖게 된 내력이 무엇인지에 따라 누정은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을 갖는다.
산수를 울타리 삼고, 구름을 병풍 삼은 자연 속의 누정부터 개인의 별서 정원이나 사찰, 궁궐에 있는 누정까지. 누정은 이윽고 저마다의 풍경 속에서 선비들이 휴식을 취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공간으로 자리매김을 한다.
나는 직접 사대부들이 누렸던 누정 생활의 풍류를 이해하기 위해 지난 며칠 동안 전남 화순에 있는 누정을 탐방하고 있다. 청명한 달밤, 안개 낀 아침이나 눈비 오는 날에도 누정에 올라 옛 풍류객들의 마음자리를 찾아 서성이며, 누정을 통해 옛사람들의 생활철학이나 윤리관, 현실적 욕망을 읽어냈다.
2018년 6월 28일 KBS광주방송에서 방송된 <남도스페셜> 남도선비문화의 산실-화순 누정편에 화순군 문화재전문위원으로 있는 심홍섭(사촌매제)이 아들과 함께 출연한다기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태풍 솔릭이 지나가고 폭우가 국지적으로 내렸지만 정자를 찾아 떠나는 힐링을 시작했다. 마침 점심식사시간이 되어 화순군청 옆에 위치한 수림정이라는 한식당을 소개받아 찾았다. 화순에 오니 무슨무슨 정(亭)이라는 상호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남도의 맛깔나는 음식을 앞에 두니 마음마저 흡족하다. 식사를 마치니 비가 개인다. 처음으로 찾아가는 정자는 <부춘정(富春亭)>이다. 지금은 잡풀이 무성해진 지석강을 따라 마을 어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어 예전에 앞에 보이는 산과 그 강을 따라 흘렀던 물과 수려한 풍경을 만들어냈던 것과는 달리 많은 세월의 흔적들로 그 비경은 많이 퇴색되었다 하겠다. 산수가 아름다운 곳에 사람들은 누정을 세우곤 했다는 느낌을 받으며 <부춘정(富春亭)>에 오른다. 강을 바라보고 아주 좋은 곳에 지어져 있다. 자연과 벗하고자 하는 선비들에게 누정은 문학공간이자 자유로운 소통의 공간이었다. 부춘정은 여기에서 사람들이 쉬기도 하고 저런 아름다운 경치도 바라보고 모여서 회의도 하는 곳이었다고 설명해 준다. 이 정자의 주인이었던 선비들은 떠나고 없지만 이 공간에서 누리고자 했던 풍경 있는 문화의 자취와 자연의 정취는 여전히 남아있다. 아직도 후손들이 옛 경관을 보존하고 잘 정리되어 있어 찾는 이로 하여금 그 시대에 와있는 느낌을 더해주었다. 부춘정 앞 오래된 백일홍 나무는 정자를 더욱 고풍스럽게 보이게 해 주었다. 심홍섭 매제는 요즘에는 현대인에게 쉼과 도시생활에서 지친 삶에서 잠시나마 심신의 안정을 취하고 피로도 풀고 힐링도 되는 최고의 유적지가 누정이라고 소개한다.
남도에서 누정문화가 가장 발달했던 화순, 선비문화의 꽃이자 전통 건축의 꽃 누정으로 이해하며 그 시대를 살았던 선비들과 같은 향취에 젖어본다.
지석강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또 하나의 정자를 만나는데 바로 <송석정(松石亭)>이다. 송석정은 강을 내려다보며 산수화를 그려놓은 듯 풍경을 빨아드리는 분위기다. 농로를 따라 정자 앞에 서니 그 위용은 대궐을 보는 듯했다. 다른 정자에 비해 기와지붕의 곡선미와 하늘을 나는 새의 날개처럼 그 당시 선비의 위상을 보는 듯했다. 송석정은 그 이름처럼 세월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오래된 소나무 숲과 수려한 암벽들 사이에 터를 잡고 있다. 지금도 잘 정리되고 보호하고 있다는 정자 앞 후손을 만나 보니 선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송석정에는 이곳을 찾았던 30여명 선비들의 시와 글이 현판에 쓰여 있다. 되돌아 나와 도로에 오르니 비가 더 심하게 폭우로 내린다. 정자를 탐방하는 순간은 이 비도 정겹다. 화순의 모든 도로 양옆으로는 가로수가 특색이 있다. 모든 도로에 가로수는 백일홍이다. 백일홍 가로수를 즐기며 찾아간 곳은 강을 거슬러 상류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풍광이 멋들어진 유원지를 만날 수 있다. 건축양식은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로 비슷한 모습으로 지어져 있었고 가운데에 사각으로 문을 달아 방처럼 되어있고 사면으로는 터있는 마루형식을 갖추고 있다. 비슷한 양식이지만 이층으로 지어진 누정 <영벽정(映碧亭)>을 만날 수 있다. 다시 차를 몰아 한참이나 달려서 도착한 사평에 위치한 정자는 <임대정(臨對亭)>원림이다. 바로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울창한 원림 속에 감춰져 있는 공간에 정자 한 채가 고고한 선비처럼 서있다. 임대정은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를 뛰어넘는다. 정자 앞으로는 작은 규모의 사각형 연못(방지)이 조성되어 있다. 이 방지에는 한가운데 둥근 섬(원도)이 있는데 이 지당은 우리 선인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음양의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방지 안의 섬 정면에는 조그마한 입석이 세워져 있고 ‘세심(洗心)’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자 한 선비의 정신이 깃든 글이다. 이처럼 시대의 변화를 꿈꿨던 선비들에게 누정은 소통과 교류의 거점이기도 했다.
임대정 원림을 나와 사평천 근처 찻집에 잠시 들렀다. 잠시 차 한 잔 시키면서 찻집 주인에게 화순의 정자에 대해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 해서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사장님, 그럼 사평에서 소개할 만한 곳이 있습니까?” 했더니 그러면서 소개해준 곳은 “사평 기정떡집”이었다.
출출하기도 한 터라 기정떡 한 상자를 사고 동생이 가보라는 물염정을 찾아 나섰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물염정을 찾아가는 길에 삼국지에서 나온 듯한 적벽을 만나게 되었다. 길가에서 적벽을 바라볼 수 있는 관람 장소를 마련해 놓고 화순적벽을 소개해주는 안내문도 게시되어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화순군 이서면 깎아지른 절벽인 화순적벽은 1억년 전후로 퇴적되어 시루떡처럼 쌓여서 생긴 적벽이다. 적벽 위에서 꽃을 떨어뜨려 노는 낙화놀이가 있었다고 한다. 화순 적벽에서 바라본 산 풍경은 물안개가 산허리를 감아 흐르는 유명한 화가의 한 폭 산수화가 틀림없었다. 그 물줄기를 따라 적벽은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져 있고 그 풍경을 다르게 펼쳐져 보였다. 화순의 천하제일경이라는 물염 적벽을 마주하고 터를 잡은 정자 <물염정(勿染亭)>은 460여 년 전 정자가 처음 지어질 당시에는 소박한 초가집이었다고 한다. 광주전남 8대 정자 중 으뜸으로 꼽히는 물염정은 화려함보다 단정하고 정갈함을 추구하고 있는 선비 정신이 담겨져 있다. 속세에 물들지 않는다는 뜻으로 정자의 당호를 지었을 것이라고 소개한다. 당대의 최고의 내로라하는 김삿갓을 비롯하여 시인 묵객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과도 인연이 깊다고 한다. 소년 다산은 부모님을 따라 이곳에 와서 적벽을 바라보고 호연지기를 기르고 그 감회를 물염전기라는 기행문으로 남겼다 한다.
호남 사림문학을 품고 있는 화순의 누정에서 선비로서의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모색하기도 했다고 한다.
자연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 그대로 표현돼 있는 아름다움을 지금까지 유지한 정원이 아름다운 정자이기도 하다.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정진하고 때론 휴식을 취하면서 역사를 이끌었던 쉼과 열정의 산실이기에 오늘에서 그냥 오래된 건축물로 볼 것이 아니라 고고한 선비정신의 계승과 전통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누와 정은 우리가 간직해야 할 소중한 무화유산임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이처럼 누와 정을 새삼 되돌아보게 된 것은 이 시대의 삶이 피곤하며 바쁜 일상에서 지쳐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직접 찾아보지 못한 정자가 몇 개 더 있다고 하여 다음기회에는 맛과 멋을 담은 더 깊이 있는 힐링 여행으로 만들어봐야겠다. 특히 화순에 살고 있는 사촌 여동생의 안내로 화순의 정자를 찾아보는데 도움이 되었고 매제의 전통문화재 보존과 연구에 특별한 노력을 하고 있고 관련 서적을 출판하였다고 하니 가상하기도 했다.
내가 사는 전주에도 유명한 한벽루가 있고 남원에는 광한루가 있다. 그동안은 관심밖에 있었으나 정자를 탐방하면서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지금은 한옥마을 뒤편에 초라하게 숨겨져 있어 찾는 이가 거의 없는 한벽당은 조선왕조 태조의 개국을 도운 공신이며, 집현전 직제학을 지낸 월당 최담 선생이 태종 4년에 별장으로 건립하였다 한다. 당시 한벽당은 전주뿐만 아니라 호남의 명승으로 알려져 시인 묵객들이 그칠 새 없이 찾던 곳으로 원래 옥처럼 항시 맑은 물이 흘러 바윗돌에 부딪혀 정경이 마치 벽옥한류 같다 해서 한벽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전해지는데 한벽루 밑에 천에서 많은 사람들이 멱 감고 놀았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기도 한다. 전국에는 많은 누와 정이 산재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을 내서 전국의 누와 정을 계속 탐방하며 옛 선비의 고고한 정신을 담고 여백의 정취로 마음을 채우는 힐링포인트로 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