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술집으로 출근을 한다.
술독에 담아보는 인간의 멋과 맛
술이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우선 사전적 의미는 '알코올성분이 들어 있어 마시면 취하게 되는 음료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그럼 취한다는 의미도 찾아봤으니 '기운에 의해 정신이 몽롱해지고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마음이 쏠리고 넋을 잃게 된다.'라고 했다.
이런 술을 무엇 때문에 마시게 되고 어떤 효과를 얻으려 하는 것일까?
술은 어쩜 인간의 희로애락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음을 동서고금을 통해 알 수 있다.
술은 군신 간에 의리를 다질 때도 남녀가 사랑을 나눌 때도 어른과 한자리에 앉을 때도 오랜 친구와 만났을 때도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충이며 예이며 경이며 우정이기도 했다.
술은 영웅호걸이나 필부필부는 물론 종이나 머슴처럼 사람이라면 막론하고 즐겨마시는 음료가 아닐까 생각 한다. 그야말로 빈부귀천을 무론하고 술의 유혹은 물리칠 수 없었다고 한다.
진정한 애주가는 술 한잔을 두고 시를 짓고 악기를 연주하며 여인과 춤을추는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선비이다. 우리 조상들은 시, 서, 금, 주의 조화를 강조했으며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흥취와 여유는 문학과 그림, 음악 등 전통예술의 중요한 모태가 되기도 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시인 도연명은 특히 술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의 시 중에서 <음주>라는 시의 일부를 적어본다. "우연히 좋은 술이 생기면 저녁마다 마시지 않을 때가 없다. 내 그림자를 마주하고서 홀로 마시다 보면 갑자기 거듭 취하게 된다." 고 했다. 어느 날 지인인 태수가 지나며 2만전을 남겨 주었는데 이 돈을 모두 술집에 보내놓고 술을 조금씩 가져다 마셨다고 한다. 그는 술에 취하면 널찍한 바위에 드러누었다고하여 그 바위를 "취석"이라고 했을 정도다.
술은 즐겁다고 마시고 슬프다고 마시고 하릴없을때도, 기념할 만한 일에도 마시니 오늘날 커피보다도 더 많이 즐기던 일상의 것이었다.
음주가무로 즐거움에 취하기도 하고 때론 위로가 되어주며 슬픔을 잊기도 하고 갈증을 해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술은 때때로 몸을 상하게도 하고 악한일에 앞장서는 용기도 생기게 한다. 술은 잘못 마시면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하게 하는 쓸데없는 광기가 올라 악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취한다는 것은 어쩜 세상살이에서 활력소가 되기도 하지만 인생을 망하게도 하니 그의 양면성은 아주 명확하다 하겠다. 그래서 술은 잘 마시면 약이 되고 잘못 마시면 독이 된다고도 했다.
그래서 술은 과유불급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술은 깊은 사색이 있는 철학과도 같다. 그 깊은 의미와 맛과 향은 평생을 두고 설파하여도 끝이 없는 깊고도 찬연한 학문과도 같을 것이다.
술과 인간의 오래된 관계에서 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더불어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다. 지금까지도 모든 일상에서 지치고 힘들 때, 즐겁고 행복할 때 한잔 술로 달래 보는 유일한 자유와 평화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 보니 술의 종류 또한 수천 가지이며 술의 도수와 향미, 또 제조 방법에 따라서도 무궁무진한 술이 종류대로 소개되고 음용되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술을 조금씩이라도 다 마셔 볼 수는 없을까?. . .
나는 요즘 술교육관에서 전통술에 대해서 조금씩 배우고 있다.
감히 술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바닷물에서 소주잔 한잔 따르는 듯 하니 경솔하게 술을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모순이다.
내가 사는 전주에 안테나샵이 있는데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전통술(가양주)의 몇 가지 종류를 소개해 보려고 한다.
*전주를 대표적인 [이강주]가 있다.
조선중기 선조 때 상류사회에서 즐겨마시던 술로 소주형태로 빚어진다. 우리나라 5대 명주로 손꼽았으며 전주의 배와 봉동의 생강으로 혼합하여 만든 고급 약소주이다.
부드럽고 숙취가 없어 '두고두고 취흥을 이야기한다'는 술이라 했다.
*인근 충남 서천에 [한산소곡주]는 백제때부터 빚어져온 술로 의자왕이 당나라에 끌려가 이 소곡주로 울적함을 달랬다고 한다. 누룩을 적게 쓰는 까닭에 소국주라 고하였으며 노르스름한 듯 맑고 깨끗한 술로 혀 끝에 감치는 맛이 특징이다. 앉아서 마실 때는 취하는 줄 모르다가 일어설 때 넋을 잃게 된다는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한다.
*[감홍로]라는 술은 평양을 중심으로 이강주, 죽력고와 함께 조선의 3대 명주로 알려졌다.
춘향전에서 춘향이가 이몽룡에게 선물한 이별주였고 별주부전에서 거북이가 토끼를 꼬실 때 사용한 술이라고 한다.
조선의 위스키라고도 전해지며 계피, 진피 등 한약재와 용안육이 들어가 단맛이 특징이기도 하다.
*[문배주]가 있는데 고려건국 초기에 태조왕건에게 진상되었다는 설이 있다.
배나무의 한 종류인 문배나무의 과실향과 비슷한 향이 난다고 해서 문배주라고 했다고 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이 만찬주로 마셨으며 2018년에도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이 만찬주로 마셨다고 한다.
*경북안동에는 [안동소주]가 있는데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아이가 고려의 수도 개성에 진출하였을 때 병참기지가 있던 안동에서 안동소주를 옆구리에 차고 다녔을 정도로 많이 마셨다고 한다.
안동지방의 좋은 물과 쌀로 빚어 오랜 시간 숙성시킨 순곡 증류주로 향과 감칠맛이 일품이며 뒤끗이 깨끗한 것이 특징이다. 안동소주는 약용으로도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죽력고]란 술은 전북특별자치도 태인의 송명섭 명인이 만드는 술로 대나무를 이용해서 증류한 소주로 녹두장군 전봉준이 관원에게 잡혀 모진고문을 당하여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죽력고 3잔을 마시고 몸이 나았다는 기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간, 심장, 위, 폐 등의 질환에 작용하여 치료제로도 사용되고 혈관관계의 질병과 뇌졸중으로 인한 언어장애와 해열작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송화백일주]는 신라 진덕여왕 때 도반승인 영희와 영조가 함께 수행정진하다가 헤어지면서 그리운 정을 달래며 송화곡차를 들었다는 기록이 전해져 온다.
경주교동법주와 함께 사찰에 기원을 둔 술로 송홧가루를 주로 하여 다양한 약재를 혼합하여 빚은 술이다.
증류식 소주에 산수유, 구기자, 오미자, 솔잎을 첨가하여 100일간 침출하고 저장하면 완성된다.
송화향과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진도홍주]는 조선 성종 때 윤비가 허종에게 독한 홍주를 권해 취하게 하여 출사가 사직교에서
낙마하여 입궐하지 못하였다. 그 때문에 훗날 갑자사화에서 화를 면하게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그 후 허 씨 집안에서부터 진도 홍주를 빚어 왔다고 한다. 쌀, 보리와 선약인 지초가 만나 미, 색, 향을 고루 갖춘 고품격 명주로 유일하게 진도에서만 전승 제조되고 있다.
*[솔송주]는 선비의 고장인 함양에서 조선 5현 중의 한 사람인 일두 정여창 선생께서 500여 년 동안 빚어먹던 가양주이다. 원래 이릉은 송순주이나 다른 지역에 같은 이름이 있어 1996년에 솔송주라 이름을 바뀠다.
찹쌀, 밀누룩, 솔잎, 송순, 엿기름을 재료로 하며 흰머리가 검은 머리로 만든다는 솔송주 맛은 두텁고
묵직하다.
*[담솔]은 솔송주를 정성스레 증류하여 내린 술로써 2년간 저온 숙성시켜 꿀로 뒷맛을 잡아낸 고급 증류주이다.
은은히 감싸는 소나무 순의 향과 솔잎의 신선한 느낌, 목 넘김이 부드러운 단맛을 느낄 수 있다.
*익산에는 유명한 <호산춘>이라는 청주가 있다.
여산 송 씨의 명가명주 제법으로 알려져 춘주로 봄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술이라고 한다.
여산지방의 옛 이름"호산"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조선 4대 멍주로 알려져 온다.
궁중의 임금이 드시던 술이기도 하며 시조시인이자 국문학자이신 가람이병기 선생께서 즐겨 드셨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익산의 전통향토 주로 소개되어 널리 알려지고 있다.
*정읍내장산을 담은 <복분자주>와 <복분자 와인>은 양기를 북돋아 주는 효능이 있다.
또한 목 넘김이 깔끔한 귀리귀인 증류식 소주 동학혁명 정읍의 특산물 귀리를 사용해서 증류한 <1894혁명>이 있다.
*남원의 <황진이>는 청정남원에서 생산된 쌀과 지리산 자락의 오미자와 산수유를 원료로 전통기법을 통해 빚어지는 민속주이다.
황진이는 숙취가 없고 부드럽고 청량감이 풍부하다. 2007년 전통주 품평회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2016년에는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에서 약주청주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순창에는 <지란지교>라는 술이 있는데 전통누룩을 이용한 탁주이다. 쌀로 만든 종류와 무화과청이 들어간 종류가 있다. 달달하고 약간의 시큼한 향이 있어 묵직하지만 깔끔한 마무리가 있다. 2016년 대한민국 명주대상에서 최고상을 받기도 했다.
*<진심홍삼주>는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의 제1호 진안식품으로 지정되었으며 진안의 인삼과 홍삼의 인증마크도 가지고 있다.
우리 술 품평회에서 3년 연속 입상을 하였고 미세한 단맛에 은은하게 감도는 쓴맛이 입안을 가득 채우니 그 감미로운 뒤끝이 오래 기억된다.
*무주의 <머루주>와 <머루와인>은 향이 독특한 산과일로 머루에 소주를 부어 포도주 이상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머루와인은 2년간 숙성시켜 알코올 도수가 낮아 부드럽게 취하니 술에 약한 사람들도 마시기에 부담이 없다.
*부안의 <뽕주>와 <오디와인>은 오디의 생산환경이 최적인 고장에서 생산되는 과일주로 오디의 달콤함과 강정효과가 있어 지역 특산주로 유명하다.
*장수를 대표하는 <오미자주>는 5가지 맛 (신맛, 쓴맛, 매운맛, 단맛, 짠맛)을 그대로 담아내는 감각적인 기법으로 생산하고 있는 과실주이다. 오미자 향이 일품인 장수 오미자의 풍미와 청정자연을 그대로 담아서 오감을 살아나게 하는 느낌을 받는다.
여기에 소개한 술은 화학주와 막걸리를 제외한 전북특별자치도를 중심으로 아주 조금이지만 소개해 보았다.
더 많은 소개를 위해서는 전문가의 수준에서 발품을 팔고 역사를 탐방하며 더 많은 이야기와 사료를 수집해 보면 더없는 재미를 더 할 것 같다. 지금은 세월 속에 사라져 간 전통주의 향미를 그리워해 볼 뿐이다.
술에는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며 취하여 왔다. 술은 인간의 삶의 여정에서 재미있고 짠한 에피소드도 많아서 수백 권의 책으로도 부족함이 있으리라 믿어 짐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