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여전히 초록이다.

끊임없이 학습하는 습관

by 남재 이진주

"學而時習之면 不亦悅乎아"라

며칠 전 심술궂은 바람이 꽃향기를 데려가더니 오늘은 온 세상을 연초록 물감으로 칠해 놓았다. 싫지 않는 바람이 내 손을 잡아 이끈다.

완산동 꽃동산에는 철쭉꽃이 동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겠지.

새벽에 고난주간 새벽예배에 찬양대로 참여하고 와서 잠깐 눈을 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고 피곤함이 온몸을 누르고 있다. 아홉 시에 시작되는 영화 인문학 수업이 있는 날이다. 아내의 출근도 도와야 하기에 아침 이른 시간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일어나 간편한 아침식사를 마쳤다.

매일 일상적이기는 하지만 양치를 하고 면도를 하고 머리를 감고 스쾃 50여 회를 하고 나면 나에게는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할 준비가 시작된다.

집을 나와 아내를 내려주고 오늘 수업이 있는 j대학교 캠퍼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였다. 싱그러운 유채꽃 향기가 온통 가득한 스타동산을 지나게 된다. 여기저기에 꽃 들이 피기 시작하고 봄은 때론 바람으로 우리에게 소망과 꿈을 실어다 준다.

아직 수업이 시작하기까지 여유가 있어서 나는 대학 본관뒤 산책로로 올라섰다. 천잠산 풀냄새가 흙냄새와 섞여오니 산림욕을 하기에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예쁘던 벚꽃이 지고 나니 연초록 나뭇잎들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조팝나무꽃이 하얗게 뿌려져 있는 사이를 토박이가 되어 살아가는 직박구리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촐싹대듯 날아간다. 혼자서 걷는 낮은 산책길은 힐링 코스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숲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얼마나 행복인지 모른다. 얼마 전까지 몇 걸음 걸을 수 없어서 주저 앉아야만 했던 척추관협착증으로 심한 고통의 시간이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내가 지금 이 시간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이 허리통증이 사라진 이후의 나에게는 최고로 감사의 걸음걸이가 되었다.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산책로를 편안함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날은 나에게 완전한 최고의 초록이다.

“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좋아하는 일에 푹 빠질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따라 마음 건강이 크게 좌우된다.”-한스셀라의 말을 인용해 본다.

“놀이는 좋아서 하는 것이고 일은 해야만 하는 것”이라 했다.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늘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새봄이 시작되고 난 또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깊은 고민에 가끔은 빠지기도 한다. 생산적인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 놀이만 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없는지 난 알고 있다. 시간 나는 대로 해답없는 여러 가지 궁리를 하게 된다. 어제와 같은 듯한 오늘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영화 인문학 수업을 들으러 간다. 근처 대학교에서 비학위 프로그램으로 열리는 수업으로 나에게는 흥미를 유발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느날인가 시를 쓰는 경제학자라는 짧은 어필이 마음을 이끌었다. 나도 시를 쓰는 일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시를 읽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이끄는 대로 이 교수님의 수업에 참여하기로 하고 벌써 몇 번째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시 쓰는 경제학자의 유쾌하고 뭉클한 인문학 수업이 바로 “영화인문학‘이라는 과목이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서 이야깃거리를 찾아 발표도 하고 인문학적으로 접근해 보는 감성을 익히는 것이었다. 자기가 느끼는 감성을 정형시로 표현해 보기도 하고 다른 시인들의 시를 감상해 보기도 하니 좋았다. 특히 수업을 담당하시는 교수님의 시는 새롭게 다가오는 초록의 신선 함이었다.

”시가 내 인생에 들어왔다. “는 책을 학동들에게 한 권씩 건네어주시기도 했다. 분명 그는 제법 유명한 경제학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분은 딱딱하고 재미없는 경제학을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수없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직접 시를 쓰고 발표하면서 자연스럽게 학생들과 재미를 만들어 갔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교수님은 간결하면서도 기발하고 감동적인 시를 꾸준히 발표하셨으며 꽤나 인기를 얻으셔서 강의실 밖의 시민들과도 시로 소통하시고 있다고 했다. 시는 어쩌면 감성치료와 관계회복에 아주 잘 듣는 명약임에 틀림없다.

교수님께 허락을 받지는 않았지만 내가 여기에 이 시를 소개하는 것을 저작권 위반이라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실 줄 믿고 소개해본다.

이 시는 처음 수업에 참여했을 때 교수님께서 소개해 주셨던 시인데 간결하면서도 재미가 있는 시였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도 자세히 한 시간만 바라보면 시가 된다는 말씀도 기억에 남는다.


<시계탑> -이경재

눈을

열두 개나 가지고 있으면서

넌, 참 거만하구나

올려다 보아야만 아는 체를 하니


무슨 소리야

눈 마주치자마자

넌, 늦었다며

총총걸음으로 가 버리잖아


이 시를 처음 접하고 나는 신선한 초록의 빛에 잠시 멍해져 버렸다.

시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생각하며 새로운 관점의 발견에 가슴이 뛰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꼭 한번 다른 시인의 시를 쓰는 방법을 배우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서 시를 쓰고 글을 쓰는 일에 깊이 빠질 수 있다면 지금의 힘든 마음 건강이 회복될 수 있을까? 기대해 보기도 한다. 때론 “여기에 와서 이런 수업을 들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처음에는 갖기도 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흥미를 유발하는 재미가 있다면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고 노년의 길에서 무미하게 살아가는 나에게 최고의 즐거움이고 행복한 시간들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도 “세 얼간이”라는 인도 영화를 보았다. 영화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자.

늘 그랬듯이 영화 시작하기 전 몇 편의 시를 소개해 주시는 교수님의 센스 있는 강의는 이 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특별한 이유로 다가왔다.

요즘에 유행하는 디카시에 대해서 소개해 주셨을 대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디카시는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 위에 간략한 감성글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특히 오늘은 일본 전통 시의 형태인 하이쿠(575)가 너무 마음에 와닿았다.

얼마 전에 소개해주신 우리나라 정형시(34 34 3543)도 책을 읽으며 참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지난주에 나는 교수님께서 주신 “시가 내 인생에 들어왔다”라는 책을 들고 사촌 동생 딸 결혼식이 있는 파주에 가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차에 올라 자리를 찾아 앉아서 책을 펼쳤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잠시도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신기한 광경을 보는 듯이 시와 더불어 써 내려간 글에 흠뻑 취해 목적지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도착했다. 지금 까보아 온 시와는 분명 달랐다. 오늘도 교수님의 영화인문학 수업은 나에게 온통 초록빛이었다.

나는 날마다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노인이 무슨 꿈이냐고 하겠지만 새로운 도전에 결코 젊은이 못지 않다고 자부하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가 나에게는 중요한 관점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소중한 가치로 삼고 있는 가치는 “끊임없이 학습하는 습관”이다. 이제부터는 나만의 시간 속에서 나만의 가치를 쌓으며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다가 가려고 한다.

그래도 꼭 해야 하는 당위성을 하나 둔다면 두어 가지가 있다.

매일아침이나 시간이 나면 제일 먼저 잊지 않고 기도 하는 것이다. 나를 기다리는 어머니를 찾아뵙는 일과 아내와 두 딸과 사위들, 그리고 사랑스러운 다섯 손주들이 건강하고 무탈하기만을 위해 기도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다.

새해가 되면 꼭 하려고 하는 “성경일독 90일” 운동에 참여하여 읽어가는 것이다. “말씀에서 성도와 교회가 가야 할 길을 묻다.”는 타이틀을 주축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읽어가야 한다. 3개월 과정이지만 성경을 읽을 때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느끼게 되고 내 영성도 더욱 굳건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점차로 신앙의 깊이를 더하게 하고 내 삶에서 종교의 힘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이 또한 평생을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나에게는 초록빛으로 피어나고 있다.


해야 할 일들은 많지만 무엇을 먼저 하고 나중에 무엇을 할까는 개의치 않는다. 내 생활이 아직 무엇을 질서 있게 하기에는 준비되지 않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하루가 “여삼추”같고 어떤 날은 “백수가 과로사한다”라고 하는 것처럼 바쁘기도 하다.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기다리는 시간이 길기만 하고 하기 싫은 일을 당하게 되면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이나 짧게도 느껴진다.

요즘 들어 여전히 피곤하고 지루한 시간들이 많다. 바람은 여전히 차갑게 옷깃을 파고들고 몸은 점점 게을러지니 어디 마음 편히 쉴 곳이 없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책을 읽고 감성에 빠져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보고 싶기도 하고 마음으로는 이끌어 보고 시를 쓰거나 수필을 써 보기도 한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불성실한 자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쉽게 피곤을 느끼게 된다. 잠시 그러다가도 나름 더 재미있는 일을 만날 때는 마음이 평화롭기도 한다.

퇴색되어 낙엽으로 떨어지지 않고 초록으로 새롭게 피어날 수만 있다면 고목에서 피는 꽃이 더 아름답듯이 인생의 노년기에 발견하게 되는 초록빛은 유레카 일 것이다.

매일같이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만보 걷기로 건강을 챙기고, 시를 읽고, 글을 쓰고, 새로운 공부를 하기도 하니 난 어쩜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다.

“행복보다 한수 위는 쾌족”이라 했다. 행복은 운이 좋아 나에게 복이 온다는 뜻이고 쾌족은 마음이 상쾌해지고 만족스러운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좋은 분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좋은 생각으로 살아가는 늘 마음이 상쾌하고 쾌족 한 “초록의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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