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새롭게

숲에서 배우는 배려

by 남재 이진주

이른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아마도 하루 종일 내릴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비다. 간간이 비가 그치는 듯하다가도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이 연초록 풀잎위에도 소리 내어 떨어진다.

연약한 풀들이 연두연두하는 봄이다. 봄인 듯하였는데 오늘 내리는 비는 여름을 불어오고 있었다.

오늘은 숲생태학습이 있는 날이다. 비가 온다고는 했는데 오락가락하겠다는 예보에 수업을 강행하기로 결정하고 전주 낙수정마을 군경묘지에서 10시에 만나자고 알려왔다.

비가 온다고 하니 레인코트와 우산을 준비하라고 세심한 안내도 놓치지 않았다.


오늘은 동고산성 동고사에 오르는 길을 택했다고 했다. 빨갛고 진분홍의 철쭉꽃이 예쁘게 피어있다.

선생님께서는 학동들이 제일 좋아하는커피와 쑥개떡을 준비해 오셨다. 비를 피해 쉼터에서 먼저온 사람들부터 인사를 나누고 커피와 쑥개떡 하나씩을 받아 먹는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군경묘지 출입문 기와를 타고 줄이어 떨어진다.

비가 오는 이곳은 초연한 기분마저 들었다. 선생님은 먼저 철쭉과 영산홍, 연산홍에 대해 구분하는 법을 말해 주시며 정확하게 구분은 안되지만 대체로 특징만 말씀해 주셨다.

여리고 싱그러운 초록의 새잎들이 비를 맞으며 자라는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물이 튀는 시멘트길위로 발걸음은 가볍게 위쪽을 향해 걸었다. 하얀 조팝꽃이 더욱 하얗게 피어있다.


동고사는 역사와 아름다움을 품은 사찰로 시 외곽 산비탈에 자리 잡은 작은 사찰이다. 이곳은 몇 발자국 힘을 실으면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멋진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어서 세 번째 방문하는 곳이지만 숲향기와 꽃내음이 한 움큼 안아지는 행복과 여유로움이 생긴다.

앞으로 게속 오르면 후백제 전주성(동고산성)이 있었으나 지금은 발굴조사를 통하여 흔적만 겨우 유추해 볼 뿐이다. 이 성은 900년에 전주에서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웠던 견훤왕이 쌓은 산성으로 밝혀졌다.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동고사는 876년에 도선스님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당시에는 지금의 위치보다 높은 곳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빗줄기가 더욱 굵어져서 내리기 시작했다. 약간 가파른 길에 오르면서 해설사 선생님께서 비에 젖은 풀잎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꽃들이 앞다투어 피기 시작한 향기로운 요즘인데 비가 내려서 꽃보다는 풀잎에 맺혀 떨어지는 낙수소리가 더 정겹게 들렸다.


좁다란 오르막에는 색색깔의 우산들이 이마를 마주대고 새들처럼 재잘거리며 숲생태학습이 이어지고 있었다. 살갈퀴, 광나무, 꼭두서니, 긴병풀꽃, 망개나무, 국수나무, 미나리냉이, 아까시, 산뽕나무, 때죽나무 등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의 이름을 불러보기도 하고 얼굴을 익히기도 하니 새 친구를 만난 듯 기분이 좋아졌다.

뿌옇게 안개처럼 습기가 내려읹은 길에는 팥배나무가 하얀 꽃을 피워놓고 빗줄기에 향기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공기가 참 맑고 신선했다. 애기나리가 수줍게 꽃을 피웠다. 덜꿩나무는 하얀 꽃망울을 움켜쥐고 흔들어 댔다. 검정우산, 보라우산을 쓴 학동 둘이 비를 맞으며 한폭의 수채화처럼 산책길을 만끽하고 있었다. 비목나무 앞에서 우산응 비켜들고 초연하게 비를 맞으며 반겨주는 산딸나무를 사진에 담아보기도 하니 즐거움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더욱 거세지는 빗줄기를 피하여 스님이 머무는 작은 법당마루에 앉았다. 마당 한편에 작은 등 모양을 한 하얀 꽃이 예뻐 보여서 검색해 보았더니 블루베리 꽃이라고 나왔다. 오래된 푸른이끼 낀 팽나무 앞에 서니 비는 초록초록한 여름을 불러오느라 쉬지 않고 내렸다.

지배 지배 지지배 소리 내며 날던 뱁새도 비를 피해 숨어들었다. 법당 앞 길가에는 왕대밭이 있어서 빗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비 오는 날 숲 속에서 여럿이 함께 우산을 받고 걸으니또 다른 매력이 있어 더욱 좋은 날이기도 했다.

학동들이 뽑은 회장님의 배려로 꽤나 오래된 노래인 루비나의 “비 오는 공원”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걷는 그 시간만큼은 행복에 흠뻑 젖어버린 시간이었다. 이런 날은 이노래가 안성맞춤이다.

김정숙 해설사 선생님과 벌써 4년째 숲 생태학습을 하고 있다. 퇴직 이후에 여러 가지 수업을 해 보았지만 이 수업만큼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은 없었다. 먼저 좋았던 것은 여러분의 다양한 수준의 학동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냥 밟고 지나치던 풀들의 이름을 불러보기도 하고 아주 작고 보일 듯 말듯한 꽃의 이름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전주천변에 그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있음도 새롭게 알게 되었으니 큰 즐거움이었다.

또한 전주에 수십 년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역사가 있는 유적지를 방문하고 자생하고 있는 식물들과 나무의 이야기를 들을 때 다시, 또 새로움이 감격스럽기도 했다.


전주 수목원은 그중에서도 나무와 꽃과 정원을 함께 즐겨볼 수 있는곳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조화롭게 꾸며 두어서 이곳에 올 때마다 마음의 평화를 얻어가곤 한다. 사계절 틀림없는 아름다운 수목원임에 틀림없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힐링과 치유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곳이기도 했다.

숲은 사람들에게 치유와 생명의 소중함을 전해주는 곳이다. 숲에는 새들이 살아가고 온갖 작은 생명체들이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니 인간세상의 인심에 비할 수가 없다.


봄은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 것일까?

봄은 남쪽에서 따뜻한 바람에 실어 온다. 봄은 “배려”라고 선생님께서 설명해 주셨다. 봄이 오면 가장 낮은 곳 풀잎들이 피어나고 작은 꽃을 피우면 다음에는 작은 나무들이 앞다투어 꽃을 피웁니다. 산 위에 있는 큰 나무들은 묵묵히 기다려 주면서 맨 나중으로 봄의 잎을 싹 틔우고 꽃도 핀다고 했다. "우리는 자연에서 숲의 배려를 배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가 생각해 봅니다. 개인 이기주의 사고로 서로 다투고 미워하며 관계를 파괴하는 모습들이 참으로 볼쌍사나웁기도 합니다. "

선생님은 이어서 말씀해 주셨다.

여름은 초록초록하면서 같이 열심히 숲을 만들어가니 “공존”이지요.ㅎㅎㅎ

가을은 봄과 반대로 단풍이 들면서 남으로 내려오니 “양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겨울은 하얀 눈으로 세상을 덮어두고 “쉼”이라고 하셨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숲의 생태계는 사람들의 사회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하지요.

맞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방식이 모순덩어리 이다. 존중과 배려, 신뢰와 섬김은 입으로만 하는 이야기 일 뿐이다. 온갖 권모술수와 거짓과 가증스러움을 아무렇지 않는 듯이 행사하고 있다. 입으로는 더불어 사는 공존하는 공동체를 말하면서 스스로 차별과 불공평을 자행하고 있다. 실천하지 않는 양심은 끝이 없는 수렁으로 서로를 밀어뜨리는 양상이 될 것이다.


비는 하루 종일 내렸다. 그동안 가물었던 논밭에는 단비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자연이 주는지혜와 배려를 잊어서는 안 된다. 허물고 부서지는 생태계를 우리 모두의 생명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켜 나가야 한다. 자연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값없이 거저 내어준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뜨거운 여름이 오면 그늘을 만들어 주고 비가 이렇게 내리면 계곡에 물을 흘려보내 작은 생물들이 살게 하고 새들이 둥지를 틀고 노래를 하게 하니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자연은 우리가 함께 지켜가야 할 소중한 자산일 것이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도 해가 쨍하게 뜨는 날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면서 삶의 지혜와 교훈을 전해주는 고마운 자연의 생태계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알아가게 된다.

동고사에 오르면 꼭 찾아보아야 하는 명소가 하나 또 있다. 바로 마리아 바위인데 바위를 옆에서 바라보면 신기하게도 영락없는 마리아 모습이다.

이곳에 올라서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저녁노을이 장관이기도 하다. 동고사길은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배우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순례길이기도 하다. 빗길에 미끄럽기에 오늘은 그냥 내려왔다.


다시, 또 새롭게

이 길에서 배려와 공존, 양보와 쉼을 배우고 내려왔다.

숲 생태학습에 나서며 비가 오면 우산을 받고 날이 더우면 그늘을 찾아 맑고 상쾌한 쉼을 얻을 수 있으니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최고의 선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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