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해서가 아니라 조건화된 행동
오늘 새삼 내가 소리 자극에 민감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속도로 운전 중에 갑작스러운 헬리콥터 소리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헬리콥터 소리가 너무 커서 놀라 당황을 한 것이다.
혹시 또 계엄을 선포했나.
운전 중이라 핸드폰을 볼 수도 없는데.
이걸 PTSD라고 하는 건가.
계속 들리는 헬리콥터 소리에 위를 올려다 보니 하늘에 군용 헬리콥터 두 대가 하늘보다 육지에 가깝게 날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소리가 더 컸구나.
저 멀리 헬리콥터가 보이지 않는데도 두근거리는 심장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친구가 계엄 당일 밤 동네에 헬리콥터가 지나가는 소리가 너무 커서 밤새 잠을 못이루었다는 얘기가 이런 느낌이었구나.
행동이론 관점에서 인류생존과 연결된, 배고픔, 추위, 큰 소리, 온도 등은 무조건 자극이다.
왓슨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내게 헬리터콥의 소리(큰 소리)는 불편한 무조건 자극이었지만 공포를 느끼게 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계엄 이후
헬리콥터 소리 + 계엄 선포 상황 – 계엄 공포(영상을 포함한 뉴스의 반복 시청)가 형성되어
헬리콥터 소리만 들어도 계엄 공포로 느끼게 된 것이다.
계엄 선포라는 중성자극에 의해 헬리콥터 소리가 곧 계엄 공포로써 조건화된 것이다.
돌아보니 내가 몰랐던 나의 청각에 대한 민감한 반응은 자주 있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큰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실내에서 누군가 너무 큰 소리로 말할 때도 깜짝 놀라고
기차 안에서 울리는 핸드폰의 큰 벨소리에도
누군가와 통화 중 상대방의 사무실 전화가 울리는 것이 들리면 통화를 금방 멈추고 싶은 충동이 생겨 상대와의 대화를 빨리 종결하고 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괴로운 청각적 자극에서 벗어나고 싶은 아주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반응이었다.
그걸 왜 반백이 넘어 알아차렸지?
과거에는 그저 자녀가 늦되려니 하고, 진단을 유보하였던 자녀를 초등학교 입학 시기가 지나 입학시키는 사례가 간혹 있었다. 이 아이가 처음 교육기관에 다니게 되었을 때, 한 달을 잠시도 쉬지 않고 울어도 다른 아이들의 수업권을 위해 평정심을 잃지 않고 유연하게 수업을 진행하던 나는 그런 특수교사였었다.
자폐성장애인의 진단 기준에 포함되는 감각의 과소, 과대 반응 특성 중 하나인 청각적 과민성은 청각 역치가 낮아서 발생한다. 역치가 낮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일반인에게 들리지 않는 소리에 더 민감하거나 역치가 높으면 소리에 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마다 소리 자극에 더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데 이는 그 사람이 별나서가 아니라 그런 감각적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또한 본인이 큰 소리를 내지만 정작 본인은 상대의 큰 소리를 불편해하는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다양한 감각 특성을 가진 학생들을 교육했던 소중한 경험 덕분에 특수교사 시절 어지간한 소음은 소음으로 느껴지지도 않았었다. 학생들은 점차 학교생활에 적응을 해나가며 성장하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에 일어 난 계엄의 후유증인가
주변에는
계엄 하루 전 아들을 군대 보낸 엄마
며칠 후 아들을 군대 보낼 예정인 엄마
얼마 전 군대에서 제대한 아들을 둔 엄마
최근 직업 군인이 된 딸을 둔 엄마들까지 이구동성으로 자식 걱정을 했다.
계엄 당일 나는 아들 예비군 나갈 때 입으려고 잘 다려서 걸어 둔 군복이 떠올랐다.
순간 스쳐가는 상상은
학생들이 학교를 가도 되나.
나는 내일 출근을 해야 하나.
독립하여 사는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 계엄 이후 계엄이라는 말만 들어도 트라우마가 생겼다.
큰 소리 자극만 피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울분과 화가 가득 찬 사람
계속 부정적 이야기만 하는 사람
거짓말이 일상화된 사람은 피하고 싶다.
분열로 먹고사는 누군가의 사익과 생존을 위한 희생양이 되기 싫다.
대신
삶에 감사가 넘치는 사람
조변석개 하지 않는 진실한 사람
농담으로 승화한 풍자와 유머를 즐기는 사람
유연하게 사고하고 늘 해결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이 좋다.
AI가 지배하는 세상과 세계의 변화가 가속화되는 시점에
어지러운 나라의 상황이 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그러했듯 대한민국의 국민은 현명하다.
지금의 조건화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나는
나를 느끼고
나에게 집중하며
내 삶을 검토하면서
내 페이스대로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