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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 수의사 Mar 04. 2021

새해 소망

야생동물이 동물원으로 오는 사연







새해 첫날부터 눈이 왔다. 산에 둘러 쌓여 있는 인적 드문 동물원이라 새소리, 바람소리 외에는 사육사가 동물들에게 줄 야채를 써는 칼질 소리가 유일하다.







눈이 오면 심심한 동물원 동물들도 눈 구경을 한다. 흰색 눈이라 색을 못 보는 동물들의 불편함은 없다. 특히 겨울철 살과 털이 두터운 토종 동물들은 야외 방사장에 나와서 내리는 눈을 수염의 촉각으로 예민하게 즐기는 표정이다. 작년에 농장에서 구조된 어린 곰들은 신기한 눈송이를 빨리 만나려고 나무 위에 올라가 있고 반복에 싫증을 잘 내는 스라소니는 눈송이 개수를 세다가 새로울 게 없다는 표정이다. 따뜻한 지방에서 온 동물들은 한국의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견딜 수 없어 실내에서만 지내고 있다. 넓지 않은 실내공간이라 답답할 것이다.


새해가 되면서 광주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너구리가 왔다. 미아가 된 새끼를 시민의 신고로 센터에 들어왔고 너무 어려서 사람이 젖병을 물려 키운 너구리다. 너구리는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길들여져 결국 동물원으로 오게 된 것이다. 사육사들은 너구리를 위해 나무상자로 만든 굴을 만들어주었다. 토종 야생동물이라 별도의 난방 없이 굴 하나면 겨울을 날 수 있다. 너구리를 데려온 수의사는 너구리가 새끼 때부터 먹던 우유량, 체중 증가량, 진료기록 등을 꼼꼼히 기록한 두툼한 일지를 건네주었다. 일지의 두께만 한 책임감이 든다.

 

얼마 전 충북야생동물구조센터 수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미아로 구조된 새끼 오소리가 너무 길들여져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우리는 다시 오소리를 맞을 준비를 한다. 아마도 광주에서 온 너구리 바로 옆 사육장이 오소리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봄이 되고 동물원의 문이 열리면 너구리와 오소리는 시민들이 야생동물이 미아가 되는 원인과 대처 요령을 배우는 교육 동물이 될 것이다. 단어로는 너무나 익숙한 너구리와 오소리를 구분 못하는 사이 주변의 생명들이 위험해지고 있다.


너구리와 오소리 외에도 동물원에는 구조한 동물들이 늘어 간다. 농장에서 웅담을 채취하기 위해 길러졌던 사육곰들, 사람이 놓은 덫에 걸려 다리가 잘리거나 어미가 죽어 미아가 된 삵들, 부리 기형으로 아사 직전에 발견된 독수리, 유리창 충돌로 눈을 잃어버린 말똥가리 등이다.


오래 전 동물원에 있던 코요테가 다리를 심하게 다쳐 절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상처가 아물 때까지 한 달 정도 소독하는 과정에서 친해진 느낌마저 들었다. 그 후 코요테는 살던 전시장으로 돌아갔다. 코요테가 움직일 때는 세 다리만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물론 밥도 잘 먹고 건강했다. 코요테가 우두커니 설 때 보이는 다리의 부재에 관람객들은 안타까워했고 불편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결국 코요테는 전시장 뒤편 좁은 격리 장소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이젠 아련하지만 나에겐 형이 하나 있었다. 형은 나보다 2년 먼저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내가 4학년일 때도 여전히 4학년이었다. 4학년에만 특수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학교 형들이 우리 형을 바보라고 놀렸다. 그 당시 나의 소망은 빨리 6학년이 되어서 학교에서 우리 형을 놀리는 못된 형들을 훔씬 두들겨 패는 것이었다. 그 무렵 형은 실종됐고 다시는 찾지 못했다. 내 소망이 이룰 일도 없었다.


 그 후 우연히 노란 버스를 기다리던 학생들이 형을 닮아있었고 형이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을 알았다. 청주에 살면서도 형을 닮은 학생들은 있었다. 통학이 힘든 학생들이 노란 버스를 타고 와서 멀리 교외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마음 다친 날이면 오토바이를 몰아 교외에 있는 그 학교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오고는 했다. 얼마 전 동물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 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가 볼 생각이다.


교외에 있던 학교는 도심으로 자리를 옮겨 노란 버스는 이제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야생으로 갈 수 없는 야생동물들은 동물원으로 와서 생을 이어간다. 그들이 구조되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동물원에 온 아이들이 보고 듣게 될 것이고 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선 우리 형은 더 이상 바보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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